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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키뉴 Aug 15. 2023

경찰서

뭐하십니까, 형님? 아직 사무실입니까?


야야, 나 방금 경찰서 갔다 옴.


뭔 일로요?


폭풍과도 같은 일이 있었더랬지.


맞았어요?


야, 하하. 너무하네. 사실… 맞아.


진짜요? 어쩌다가요?


삼대일이었다. 내가 일이었지, 암 그렇고 말고.


길 가다 시비 붙었어요?


뻥이야. 에헤헤. 사실은 말이야….


여자친구 바래다 주려고 역에 다녀 왔거든. 카드 찍는 곳에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우리 쪽으로 오더라고. 뭐라 뭐라  말하면서.


"네?"


궁시렁 궁시렁 하더라고. 뭐라는 건가 싶었는데, 보니까, 비닐 가방 같은 걸 들고 있었는데, 그거 한 손으로 뒤적거리면서 다가오더라고. 뭐 파는 사람인가 했지. 요즘 그런 사람 보는 거 쉽지 않은데, 난 왜 그게 그거라 생각했을까? 아무튼. 


"괜찮아요. 예~ 죄송합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크크. 그냥 괜찮다 하고 그냥 쌩까려고 했어, 흐흐. 그러면 그냥 지나 가잖아. 옆에 여자친구 있는데 괜히 얼굴 붉힐 거 같더라고. 마음 불편하기도 싫고 말이야. 그래서 그냥 가시라고 그렇게 말한 거거든. 쌩깠더니 진짜 그냥 가시더라고. 


간 줄도 몰랐어. 여자친구 보내고 나도 집 가려고 역 밖으로 가고 있었거든? 근데 1출이랑 2출 사이에 갈림길이 하나 있는데, 그기에 아까 그 할머니가 서 있는 거야. 그냥 지나쳤지. 근데 기분이 좀 안 좋더라고. 잡상인 아니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잡상인 취급하면서 내가 쌩깐 거잖아. 다시 갔어. 꽤 올라 왔는데, 그냥 다시 내려 갔지.


"뭐, 도와드릴까요, 할머니?"


어디로 가면 서대문역이녜. 내가 지금 서대문역 안에 있는데, 그렇다면 서대문역은 과연 어디인가? 내가 밟은 이 땅은 서대문역의 땅이라 할 수 있는가? 뭐,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거든? 아찔하더라고, 흐흐. 는 개드립이고, 여기가 서대문역인데, 여기 서대문역이라고, 어디 가시냐고 내가 다시 물었거든? 집에 간대. 그래서 집은 어디냐고 다시 물었어. 


"공덕동."

"네? 공덕동요?!"


공덕동이라는 거야. 공덕동에서 공덕이 공덕역 할 때 그 공덕 맞지? 설마 하면서 다시 물었더니, 공덕동은 자기 옛날에 살던 집이래. 그래서 지금 댁은 어디냐고 다시 물었거든?


"…"


말을 못하는 거야. 댁 어딘지 기억 안 나냐고, 연락할 사람 없냐고 물었어. 아들이나 딸 있냐고도 하고. 아들 있다 하더라고. 아들한테 전화할 수 있냐고, 핸드폰 가지고 있냐고 물었어. 핸드폰 있더라고. 주섬주섬 하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어. 핸드폰 켜길래 내가 옆에 서서, 막, 전화해 보시라고 그랬지. 근데 그냥 가만히 있는 거야. 멍~ 하고 있는 뭐, 그런 느낌? 뭔가 쎄하더라고. 사실 진작부터 쎄했어야 하는 게 맞는데.


"저, 저, 저 잠깐만 줘 보실래요?"


핸드폰 나한테 줘 보라고 했지. 주시더라고. 내가 그래서 아드님 성함 어떻게 되냐고 하는데, 또 잠깐 렉 걸린 것처럼 멍~ 하고 있는 거야. 짜증낸 건 아닌데, 짜증난 거도 아니고, 근데 좀 다그친 거 같아. "아드님 이름요, 이름! 이름이 뭐예요?" 막, 이러면서.


"김성일."


할머니 갤럭시 쓰시더라고. 아, 나 갤럭시 처음 쓰는데. 근데 전화기 버튼 바로 보이더라고. 그거 눌러 가지고 "김성일" 검색해 봤지. 근데 없는 거야. "김성일"이란 이름 없다고, 아들 이름 "김성일" 맞냐고 물었거든? 근데 또 말을 못하는 거야. 아, 아들 이름 까먹었구나. 아니면 애초에 아들이 없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들 이름이 진짜 "김성일"인데 저장이 안 되어 있다거나. 뭐, 아무튼, 그런 게 그땐 생각이 안 나고, 그냥 아들 이름 기억 못하네 싶어서, 막, 다른 사람, 연락할 다른 사람 없냐고 막 그랬거든? 그거도 대답은 안 해. 


"이 중에 아드님 이름 없어요?"

"…"


아들은 있는데 이름이 "김성일"이 아닌 건가 싶어서, 통화 기록에 나와 있는 이름들 보여주면서, 여기에 아들 이름 있냐고 물었어. 또 대답 못하시는 거 같아서, 아님 다른 가족분 없냐고, 아니면 이 중에 친한 사람 없냐고, 막 그렇게 물었거든? 아, 그때 뭔가 알아챘다는 눈치인 거야. 


"어, 나 이 사람이랑 친해요."


아, 이제 좀 풀리나 싶었지. 이 분 맞냐고 하면서 바로 그 번호로 전화했거든? 그쪽에서 다행히 받더라고.


"여기 서대문역인데요. 할머니께서 댁을 기억 못하셔서요. 아는 분이라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네, 파출소 데려다 주세요."


그냥 파출소 데려다 주라 하더라고? 뭔가 흔한 일이라는 듯. 근데, 웃긴 건, 나도 그냥 그게 납득이 가더라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냥 "네에~" 하고 바로 끊었지.


"친구분이 파출소 데려다 주라 하시네요?"

"…"

"흠… 같이 가시죠."


내가 살면서 파출소 근처에 살아 본 적이 없거든? 너 있냐? 이번에 살게 된 이 동네도 파출소는 없더라고. 근데 파출소 말고 더 큰 게 있지. 서대문 경찰서. 흐흐. 아, 그 옆에 경찰청도 있다. 아, 근데 이게 역에서 걸어 가긴 은근 귀찮은 거리거든. 아 근데, 이걸 몇 번 출구로 나가서 어디서 꺾니 마니, 그래서 쭈욱 가니 마니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같은 거야. 길 찾기는 남녀노소 모두한테 어려운 일이거든. 보통 해외 여행 갔을 때 길 물어 보는 거 어려워 하잖아. 들어도 잘 모르겠고. 근데 그게 내가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야. 그냥 길을 말로 설명하는 건 졸래 어려운 일인 거야. 길 물어보고 길 안내 받는 거, 한국말로도 만만찮을 걸? 아무튼.


"아이고, 괜찮아요. 제가 혼자서 갈게요."

"그냥 같이 가시죠. 저도 좀 걷죠, 뭐."

"아이, 미안해서 어쩌나."

"괜찮아요, 할머니. 그거 제가 들게요. 주세요."


야, 근데 오늘 개 추웠는데, 지금도 개추운데, 나 내복도 안 입고 달랑 항공 점퍼 하나 입고 나갔거든? 여자친구 잠깐 보러 나간다고 양말도 안 신고 나갔다이씨. 금방 올 줄 알고 크록스 신고 나갔는데. 하나도 안 괜찮았는데. 오늘 한파주의보라는데. 근데 막 괜찮다고 개 쿨한 척하면서 앞장 서서 갔지. 따라오시라 하고. 난 왜 안 괜찮으면서 맨날 괜찮다 할까? 흐흐.


또 괜히 이런 거 하면 친한 척하게 되던데. 그래서 앞장 서다가 이게 좀 무심한 건 아닌가 싶어서, 다시 옆에서 발 맞춰 걸었거든? 근데 할머니는 주머니에 손 넣고 고개는 푹 숙이고 땅만 보면서 걷더라고. 잘 걷지도 못하셔. 뒤뚱뒤뚱 하시더라고.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이랑 부딪힐 듯 말 듯. 아니 왜 다 큰 어른들이 3열 종대로 걸어 가냐, 인도에서. 옆에서 좀 마음이 안 좋더라고. 부딪힐 거 같으면 이쪽으로 팔 잡아 끌고 뭐 그러긴 했지만. 말을 좀 걸어 볼까도 했는데, 괜한 소리 늘어 놓을 거 같아서 걍 입 닫고 걷기만 했다. 속으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이러면서 그냥 발 맞춰 걸었음. 크크.


그러고 서대문 경찰서 정문에 갔거든? 초소에 한 놈 앉아 있더라고. 근데 뭔가 좀 쭈뼛쭈뼛해. 뭔 일이냐고 물으려는 거 같길래, 내가 먼저 가서 문 열고 말했지. 할머니 길 헤메는 거 같아서 모셔 왔다고, 댁 어딘지 기억 못하시는 거 같다고. 근데 걔가 뭐래는 줄 아냐?


"아, 네…."


"아, 네" 하고 앉아 있다, 참.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 의경인가 싶었지. 의경도 서에서 초소 근무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크크. 아무튼 의무 경찰이면 모를 법하잖아. 그러고는 할머니 댁이 어디냐고 묻더라고. 뭔가 어색해. 또, 방금 댁이 어딘지 기억 못한다고 말했는데, 뭘 또 묻나 싶더라고. 살짝 짜증이 올라 왔는데, 아니, 인간 모두가 인생 1회차라 '카던데~' 하면서 그냥 말았지. 근데 경찰한테 짜증내면 잡혀 가냐?


그기 밖에서 계속 스무고개 할 순 없잖아. 한파주의보라고, 스벌. 여기 있으면 할머니 춥다고, 저기 안에 민원실에라도 모시고 가시라 말했지. 할머니 짐 여깄으니까 이거도 같이 챙기라고. 걔가 알겠다고 초소에서 나오려 하더라고. 그러고 나는 뭐 할머니한테 저 아저씨가 집 찾아 줄 거라 하고 휘리릭 가려 했지. 쿨하잖아. 근데, 할머니가 고맙대. 미안하대. 배꼽인사까지 하시더라고. 집에 조심히 가시라고, 여기 짐 잘 챙기시라 하고 다시 쿨한 척 떠나려 했지. 크흐. 쿨하다. 춥다. 추웠다.


"연락처라도…."


할머니가 나한테 연락처를 달래. 야, 그때 내가 무슨 생각했는 줄 알아? 막, '이태원클라쓰'에서 나온 것처럼, 백발의 할머니가 알고 보니 어마어마한 부자야. 막 그런데 그런 할머니가 고맙다고 나한테 연락을 하는 거지. 이 돈은 보답으로 생각하게. 뭐, 이런, 으흐흐. 그러고 또 무슨 생각했게? 내가 또 개 붕신 같은 생각을 하고 자빠졌구나, 지금. 이런 생각? 히히. 다행히 정신 차렸어. 아니라고, 괜찮다고, 막 이러면서 그냥 사양했지. 이거 봐, 그 할머니가 나한테 무슨 사례를 하려 한 거도 아닌데, 난 벌써 이걸 사양이라 말하고 있다, 흐흐. 웃기지 않냐?


"아니, 그래도…."

“아, 괜찮아요. 정말. 저 갑니다. 갈게요. 안녕히 가세요.”


막, 이렇게 한파보다도 더욱 차가운 느낌으로다가 훌쩍 떠나 왔더랬지. 댓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도움이었다고, 뭐 이런 자랑스러운 기분 만끽하면서 말이야. 야, 또 내가 무슨 생각한 줄 아냐? "경찰서 다녀 온 썰" 뭐 이런 걸로 썰 풀면 되겠다, 뭐 이런 생각? '나 경찰서에서 오는 길이야.' 이렇게 이야길 시작하는 거지. 뭔가 큰 사건에 휘말린 그런 쎈 사람 느낌 나지 않냐? 그러고, 그냥 말을 더 안 하는 거지. 궁금하게 말이야. 쎈 사람으로 그냥 남는 거, 흐흐. 근데 마침 딱 너한테 연락이 왔네, 흐흐. 넌 나의 희생양이었다, 흐흐.


좋은 일 하셨네요.


야 근데 아까부터 나 기침한다? 아씨, 아까 그 할머니 짐 들어준 손으로 얼굴 만졌는데. 코로나 옮은 거 아니겠지?


주무세요, 형님.


농담 농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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