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CPR 할 줄 아냐?
군대에서 배우잖아요.
언제 해야 되는지도 아냐?
그거 3분인가 4분인가, 뭐 아무튼 빨리 해야 한다던데요.
맞아, 4분이래. 근데 나 그거 며칠 전까지 몰랐어. 안 배운 건지 까먹은 건지…. 회사에서 며칠 전에 산업안전 교육? 뭐 그런 거라면서 누가 와서 가르쳐 주던데, 그때 그러더라. 1분이면 살 확률이 97%고, 4분이어도 80%대였던 거 같은데. 그러고 4분 넘어가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나 뭐라나. “살아도 사는 게 아니”란 그 강사 드립에 좀 짜증나긴 했지만, 뭐, 어쨌든.
근데, 갑자기 CPR, 왜요?
너, 살면서 CPR 해야 하는 상황 경험해 봤어?
아니요? 흠… 네, 없는 거 같네요.
난 있어. 와, 그게 벌써 10년 전이네. 그러니까 2013년에. 그때 학교 친구랑, 과 후배긴 한데 난 친구라 생각해서 친구라 말하는데 아무튼, 그 친구랑 일요일에 밥 먹고 커피 한 잔 하러 가는데, 학교 앞에 지나고 있는데, 사람들 몇 명이 길에 서 있는 거야. 몰려 있다 해야 하나? 많이 몰려 있던 건 아니고. 사실 갈 사람은 가고, 구경할 사람은 구경하는 뭐 그런 드문드문 있는 정도? 막, 친구보고 “야, 뭐야, 뭐야?” 하면서 그쪽으로 점점 가까이 가고 있는데, 우리가 가려던 카페를 가려면 아무튼 그 길을 지나가야 했거든, 근데, 그기에 사람이 쓰러져 있는 거야. 그냥 바닥에. 횡단보도 건너려고 신호 기다리는 중에 쓰러진 거 같던데. 그 인도도 아니고 차도도 아닌 그 애매한 위치에 쓰러져 있더라고.
근데 그냥 지나가기 좀 그렇더라고. 아까 말했잖아. 갈 사람은 가고, 구경할 사람은 구경하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누구 하나 나서서 뭘 어떻게 하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 짜증나잖아. 그래서 친구보고, “야, 와 봐” 하고 앞장 서서 갔지. 사람이 차도 쪽에 걸쳐서 누워 있는 게, 그 옆에 차들도 갈 길 그냥 가는 거라, 좀 위험해 보이더라고. 다리 밟고 지나가면 어떡해. “네가 다리 잡아. 자, 하나, 둘, 셋!” 막, 이러면서, 걘 다리 잡고, 난 팔 잡고 해서 들어가지고 인도로 옮겨 놨지.
옆에 우리 학교 학생처럼 보이는 여자애가 있더라고. 내가 막, 친구냐 물어보고 친구라 하니까, 얼른 신고하시라고. 내가 신고하라 할 때까진 걔도 뭘 하고 있는 거 같진 않았거든. 그냥 울먹이고 있는? 내가 말해서 정신차린? 뭐, 그런….
구급차가 오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릴 거 아냐? 막, 그때 기도 확보? 뭐 그런 거 해야 할 거 같아가지고, 그 쓰러진 사람 뒷목을 잡았지. 그리고 들어올렸거든? 턱이 하늘 쪽으로 우뚝 서도록. 이야…. 그게 사람이 그냥 기절했나 봐. 그러고 먼저 턱이 떨어진 거지, 땅에. 내가 그 사람 고개 들었을 때, 이미 피가 턱에, 아오….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그때 해가 쨍쨍한 날이었는데 햇빛이 반사되서 그게 더 빨개 보이는 거 있잖아. 그게 아직도 기억나네, 허허.
그러고 또 내가 뭐 봤게? 그거 열대과일 중에, 빨간 껍데기 비틀어 까면 안에 하얗게 속살이 나오는 거 있잖아, 씹으면 안에 껍질 있는 씨가 크게 있는. 단 건데, 이름은 까먹었어. 아무튼. 그런 거처럼, 턱에 빨간 속살 사이로 하얗게 뭐가 보이는 거야. 뼈인 거 같던데. 뼈일 걸?
으…. 어쩌면 정신은 멀쩡한데 넘어지다가 턱이 먼저 땅에 닿아서 기절한 걸 수도 있겠네요.
어? 그렇네. 흠, 그렇네. 뭐 아무튼, 그렇게 둘 중 하나인 거지. 근데, 그래서 내가 그 사람 뒷목을 잡은 게 기도를 확보하려고 한 거라 했잖아? 그러고 나서 내가 CPR을 바로 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걸 안 했어. 그러고 옆에 그 친구라는 사람한테 물었지. “언제 온대요?” 하고. 곧 온대. 아, 그러면 이거 좀 잡고 계시라 하고 친구보고 이제 가자 하고 그러고 그 자리 바로 떴어. 그땐, 딱 할 거만 하고 바로 뜨는 용감한 시민? 뭐 그러면서도 어딘가 좀 쿨한? 뭐 그런 허세로 바로 뜬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무 도움도 안 된 거잖아? 그냥 달려가서 CPR을 해야 그 사람이 살 수 있는 건데. 며칠 전에 교육 듣다가 그때 생각이 났는데 그때 난 진짜 등신이었더라고. 기도 확보랍시고 그렇게 했어도 막상 숨을 쉬는지 확인도 안 한 거 같은데. 나 뭐 한 거니, 쓰벌.
엥? 그래도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남인데, 그거도 길에서. 먼저 나서서 뭔가 하려고 한 거면 대단한 거 아니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흠…. 그게 그렇더라고. 그런 게 딱 어느 수준까지만, 그러니까 내 기분 편하게 되는 바로 그 수준까지만 하는 거더라고. 아, 이렇게 말하니까 더 한심해 보이네. 근데 사실 사람이 그렇거든. 아니, 그냥 나는 그렇더라고. 내 기분이 풀릴 때까지 하는 것이 바로 복수, 뭐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려나?
에이, 그래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복수랑은 또 다른 거고. 형은 사람들이랑 엮이는 거 엄청 싫어하는 거 같던데. 그래 놓고 그럴 땐 또 그렇게 선행을 베풀고 그러네. 보기보단 착하시네요, 형님.
야, 근데, 요즘 CPR에 인공호흡 안 가르친다고 하던데, 맞냐?
전 모르죠. 형이랑 차이 얼마나 난다고….
그렇대. 그렇다고 들었어. 사실 그게 없다고 사람 못 살리고 그러는 게 아니라던데. 근데, 그때 내가 턱에 뼈 같은 거 보였다 했잖아? 턱에 난 피가 흘러가지고 입이랑 뺨까지 주르륵. 그러면서 그 사람 얼굴도 봤거든? 야, 근데 예뻤어. 진짜 예뻤어. 그때 막, 어? 인공호흡? 인공호흡!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역시나 쓰레기시네요,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