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키뉴 Oct 22. 2023

먹태

나: 이 동네는 맥주에 노가리 파는 곳이 많네요.


제이: 맥주에 보통 노가리 아니에요?


나: 맥주엔 먹태 아님?


제이: 뭐, 먹태도 많이들 먹죠.


나: 제가 이 얘기 했었나요? 먹태 처음 먹은 날 얘기.


제이: 아뇨.


나: 이거 좀 웃김. 들어 보실래요?


제이: 아뇨.


나: 네.


제이: 하하하. 해 보세요.


나: 이것도 꽤 오래된 얘기네요. 육 년 전쯤인가. 친하게 지내는 형이 하나 있는데. 그 형이 노량진에 살아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노량진에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노량진 하면 뭐가 생각나요?


제이: 수산시장?


나: 네. 수산시장도 있네요. 저는 ‘공시촌’이 생각나요.


제이: 아, 그기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 많다고 들었는데.


나: 적어도 그때는 그랬어요.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네요. 그때 그 형 보러 노량진에 갈 일이 많았는데, 공시촌이라는 인상? 편견? 뭐 그런 게 그때 생긴 거 같아요. 그때는 ‘공무원이 꿈인 나라’라는 말도 썼고.  누군가가 한국 세태를 꼬아 부를 때 말이죠. 제가 전에 강릉 살 때 알게 된 공무원이 있거든요? 그 사람, 서울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거든요? 근데 그 사람도 노량진에는 가 봤대요. 시험을 그기서 준비했대요.


노량진 하면, 단풍이 생각나요.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는 그런 단풍. 노량진 독서실에서 있는 일이래요. 


제이: 독서실에서 단풍?


나: 독서실 책상에 포스트잇을 붙인 거죠. 그게 모여서 단풍잎처럼 보이는 거고. 포스트잇으로 뭐 사랑을 전하고 그러는 건 아니고.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너무 커요, 의자 빼는 소리가 너무 커요, 숨소리가 너무 거칠어요, 기침하지 마세요, 필통과 가방은 밖에서 열고 들어오세요, 뭐, 이런 것들. 아, 삼색볼펜은 안 된다고 아예 규칙으로 정해 놓은 독서실도 있대요. 


제이: 와, 숨 막히네요.


나: 그쵸. 아! 이것도 노량진 독서실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스타벅스 커피를 매일 사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 사람 자리에 포스트잇이 붙었대요. 상대적 박탈감 느끼니까, 스타벅스 커피 자제해 달라고.


제이: 에이, 그냥 그거 괴담 아니에요?


나: 분명 인터넷 어디 댓글로 본 기억이 나는데. 틀렸을지도 몰라요, 헤헤. 아무튼. 그리고 노량진 하면 생각나는 게, 컵밥거리. 최소한의 시간에 끼니를 그저 때워야 하는 그런 수험생이 많았던 거죠, 노량진엔. 요즘도 컵밥거리가 있으려나?


제이: 코로나 후로 없어지지 않았을까요?


나: 그럴 거 같아요. 아, 또 생각나는 거 있다. 헬스장은 보통 ‘헬스장’, ‘짐’, ‘휘트니스센터’, 뭐 보통 이런 이름이잖아요? 저기도 헬스장도 ‘휘트니스’라 되어 있네요. 근데 노량진은 안 그래요. 뭐라 되어 있게요?


제이: 크로스핏…?


나: 하하. 아, 맞네, 맞아. 요즘은 그런 이름도 쓰네. 근데 노량진에서는 안 그래요. 체력 검사 대비. 괄호 치고 경찰, 소방, 교정직공무원, 괄호 닫고. 이런 게 많았어요. 다 수험으로 맞춰져 있는 거지. 이것도 요즘은 아니려나? 그때는 그게 좀 우스꽝스럽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뭐, 어딜 가나 저마다의 색은 묻어 있기 마련이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려 해요. 며칠 전에 갔던 식당에서는 그러더라고요. “영수증 내역 나오게 드릴까요?” 그 식당에는 자기 돈 말고 회사 돈으로 밥 먹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죠. 크크. 시벌.


그 먹태 처음 먹었을 때도 노량진이었어요. 그 형을 그기서 만나기로 한 거죠. 당시 우리가 자주 가던 아귀찜집이 있거든요? 맛도 괜찮은데, 그때는 백세주 두 병을 시키면 한 병을 더 주는, 투플러스원 같은 행사를 했어요, 그 식당이. 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 식당에 서너 번은 더 간 거 같은데 갈 때마다 그렇게 먹은 거 같아요. 그날도 그렇게 먹었고요.


제이: 아니, 백세주를 밖에서 마시는 사람 처음 보네.


나: 에이. 마시는 사람 많아요. 맛있어. 아무튼. 아귀찜 다 먹고 이제 배부른데, 아니, 치킨이 먹고 싶대요, 그 형이. 그래서 가자 했죠, 치킨집. 형은 계속 치킨 뜯고 있고, 저는 말하고. 저야 뭐 아까도 말했듯 배가 터질 거 같아서 별로 안 먹고 싶고.


제가 무슨 말을 꽤나 길게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옆자리 사람들이 일어서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근데, 뭐,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계속 말했죠. 그 형 보면서. 근데 그 형은 제 이야길 안 듣고 있더라고요? 그런 눈치였어요. 어딜 보고 있나 해서 봤더니 옆 테이블에 아까 손님이 안주 남긴 거, 그걸 보고 있더라고요. 참, 나.


많이도 남겼더라고요. 죄다 마른 안주인 거 같던데. 뭐, 술자리 하다 말고 급한 일이 생겨 떠났나 싶었죠. 그런 거 있잖아요. 영화에서 보면 형사들이 이제 막 국밥 한 숟갈 떴는데, 범인 떴다는 무전에 ‘에이씨!’ 하면서 그 자리 박차고 나가는 거. 뭐, 그 사람들이 형사는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어차피 남긴 거잖아요? 제가 손을 뻗어 그기 안주를 한 움큼 쥐어 가져왔어요. 우리 접시로. 뭘 그리 처연한 눈빛으로 그러고 계시냐, 그냥 가져오면 되지, 막 이러면서. 크크. 그게 북언지, 황탠지, 명탠지, 그게 뭔지는 몰랐거든요? 근데 맛있더라고요. 배불렀지만, 그런 마른 안주는 잘 들어가잖아요. 금방 먹었어요. 그러고 또 저쪽 테이블 보고 있더라고요, 그 형. 또 내 말 안 듣고. 그래서, 아오, 망설이지 마시라고요 하면서 제가 다시 그쪽 테이플에서 한 웅큼 가져왔어요. 가져온 거 하나 집어서 내 입에 가져가는데, 그때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뒤에서. 그게 뭐게요?


제이: 아, 안 갔구나, 옆 테이블.


나: 네. 크크크. 맞아요. 크크크. 잠깐 끽연하러 갔던 거임. 그때는 그럴 거라 전혀 생각을 못했는데. 뒤에서 누가 “동작 그만!” 이러는 거예요.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테이블엔 사람만 없었지 있을 건 다 있었네요. 크크.


제이: 헐…. 어떻게 됐어요?


나: 40대 초반쯤 되려나? 아저씨 둘이 이미 제 바로 뒤에 서 있더라고요. 난 멱살 잡히는 줄 알고. 살짝 어지럼증을 느낀 거도 같고. 웃긴 건, 바로 근처에 동작경찰서가 있다는 게 그때 생각나지, 뭐예요. 그 짧은 순간에. 이게 경찰까지 뜰 일은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그땐 철컹철컹 할 거 같은 느낌이었나 봐요. 크크. 그래서 사과를 좀 잘해야겠다 생각했죠, 빨리. 대충 수습한다는 마인드로. 제가 “저기…” 하고 말을 꺼냈는데, 그때 아저씨가 뭐랬는 줄 알아요? 뭐라 했냐면요…


“아니야, 아니야, 그거 그렇게 먹는 거 아니야. 마요네즈 소스 찍고 그기에 이 청량고추 살짝 얹어서 먹어야 된다고. 자, 아~ 해봐.”


나 보고 아~ 하라는 거예요. 크크. 순간 아~ 할 뻔했음. 뭔 고집이었는지, 사과를 아무튼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나 봐요. 그래서 다시 말을 했죠. 아니, 그게 아니고, 먼저 사과를 하려 한다, 우리가 좀 취했고, 선생님들이 안주 다 남기고 이미 떠난 줄 알았다, 죄송하다, 뭐 이런 식으로.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뭐랬냐면…


“됐어, 거기까지! 일단 드셔봐. 아~ 해 봐.”


아~ 했음. 진짜 그렇게 했음. 크크크. 아~ 하고 받아 먹었거든요? 마요네즈 소스 찍고 그기에 청량고추 쪼그마난 거 얹어서 입에 넣어 주는데, 달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아까 먹던 느낌이랑은 완전 다르더라고요? 그게 먹태래요. 먹태를 처음 그렇게 먹은 거죠. 크크. 


제이: 재밌네요. 이건 뭐, 오토바이 도둑한테 시동 거는 법까지 가르쳐 주는 느낌이네.


나: 오, 그렇네요. 진짜 다행이지 뭐예요. 난 진짜 놀랐다니까?


제이: 그러고 끝?


나: 아! 그때 하나 받아 먹고는, 합석했어요. 그 아저씨들이랑. 몇 살이세요, 무슨 일 하세요, 저는 무슨 일 해요, 뭐 이런 식으로, 우리가 한참 어린 거 같은데 그래도 존대 하면서, 물론 반말도 많이 섞어서 했지만, 한 삼사십 분 정도 그렇게 이야기 나눈 거 같아요. 알고 보니 그 아저씨 둘도 술집에서 만난 사이래요. 스무 살 땐가, 한 분이 여자친구가 전화를 안 받아서 여자친구 집 근처 맥주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한 분이 그 맥주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고. 맥주 시키다가 말 섞으면서 친해졌다 하더라고요. 


그 아저씨들은 먼저 일어났어요. “뭐, 이만 우린 가죠.” 둘이 뭐 이렇게 말하면서. 나중에 술 마시고 싶을 때 연락하라면서 명함도 주고 갔어요. 


제이: 오, 그래서 연락하고 지내요, 지금도?


나: 아니요. 따로 연락을 하고 그런 건 아니고. 그래도 안 버리고 잘 가지고 있어요. 크크. 두 분 보내고, 우리도 아주 조금 더 앉아 있다가 일어났거든요? 그러고 계산하려고 하니까, 아까 그 아저씨들이 우리 테이블꺼도 계산하고 갔대요. 크크. 공짜 술, 개이득.


제이: 그때 경찰서를 한 번 갔어야 했는데.


나: 하하하하하. 지금도 먹태 먹을 때면 그때가 생각나네요. 따숩잖아. 


제이: 그러게요. 먹태 말고도 좋은 안주거리 하나 더 만들었네요.

이전 06화 맨소레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