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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 Apr 02. 2018

보약들 챙겨 드십니까

La bonne heure

«입냄새 나니까 그건 빼야 할 거 같아.»

«아니! 해! 해! 해 봐! 그거 나 필요해요! »


역시나가 혹시나다.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해서 해 본 소린데 이성을 잃고 달려오네?!

미니가 그것에 빠진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운동하고 먹고,

퇴근하고 먹고,

피로할 때 먹고,

솔직히 어쩔 땐 좀 과하다 싶었다.



주말 아침에는 눈뜨자마자 주방으로 다다다다다.  

잠시 후, 엄청난 입냄새를 풍기며 만족스런 표정을 감추지 않고 내 곁으로 다가오는 이상한 인간.

나랑 같이 사는 남자는 마늘 덕후다.



마마 갈릭 파워!
마마 갈릭! 땡스 투 마마 갈릭!
아임 쏘 스트롱!!
안 씩(sick) 스트라이크 포 2 years!


언제부터일까?  

미니가 마늘 신봉자가 된 것은.  

다른 한국인들이 그렇게 먹으니까. 고깃집에 가면 의례히 한 번씩 집어 먹던 구운 마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다음은 한국인 와이프의 온갖 음식 속에서 엄습하던 다진 마늘의 그림자, 처갓집 밥상 위에 어김없이 등장하던 장아찌를 하나 둘 습관처럼 먹게 된 것이 미니 자신을 이런 덕후로 만들어 낼 것이라곤 아마 본인조차도 예상치 못했을 거다. 2년 전 여름 한국에서 보낸 한 달, 엄마 밥상에 서서히 젖어든 한 달을 보내고 온 뒤론 프랑스의 우리 집에서도 마늘 소비량이 현저히 늘었다. 삼겹살을 먹을 때도 바싹 구워지지 않으면 안 먹던 마늘을 살짝만 익혀 먹고도 맛있다고 감탄했고 마늘이 들어간 모든 음식들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된 미니를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흥분의 도가니 상태로 집에 돌아온 미니. «여편! 여편! 내 회사 친구 이반 알지? 이반도 마늘을 먹는대! 세상에! 익히지도 않고 생으로 막 잘라먹는대! 건강에 엄청 좋대!» 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던 미니는 더더더 마늘을 신봉하게 되었다. 장모가 몸에 좋다고 하지, 와이프도 몸에 좋다고 하지, 한국에 우리 식구 누구네를 가도 자꾸 먹으라고 밥상 위에 들이미니까… 이 한국인들이 나를 속이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못 버리던 찰나에 친한 동료까지 마늘을, 것도 건강을 위해 쑴풍쑴풍 잘라 생으로 먹는다고 하니 미니의 방황은 이로서 종지부를 찍었다.

이건 참이다! 마늘은 보약이다!



우리는 주말마다 같이 장을 보는데, 지난해 늦여름 어느 날이던가 집에 돌아와 장바구니를 정리하려고 보니 엄청 큰 마늘 뭉텅이가 들어있었다. «이건 뭐야? 왜 이렇게 많이 샀어?»라고 물으니 «갈릭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남편. 나는 태어나서 첨으로 마늘장아찌를 담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마늘 껍질 벗기는 건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그래도 남편이 좋아할 걸 상상하면서 열심히 까고 까서 장아찌를 짠! 하고 대령했다. 그런데 늘 엄마가 담아주신 것만 먹던 나는 이때까지 몰랐다. 우와~ 맛이 숙성되는 시간이 생각보다 아주아주 오래 걸리네. 한국에선 늘 먹던 이 음식이 이렇게나 큰 정성과 오랜 기다림이 깃든 음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겨를도 없이!!


미니는 아직 익지도 않은 마늘 병을 하루가 멀다 하고 열어댔다.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퇴근하고 돌아오면 발걸음은 주방으로 직진. 마늘이 다 익었는지 확인하겠다면서 하나 둘 먹기 시작하더니 점점 생마늘의 알싸한 맛에도 중독이 되어 가는 듯했다. 나중엔 더 싱싱해서 효과도 강력한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괘변을 늘어놓으면서 병을 열어재꼈다. 매워 매워하면서도 몇 배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라고 하니 먹게 놔둬야지 별 수 있나. 그렇게 담아둔 마늘은 매운 맛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동이 났는데, 다행히도 곧 한국에서 엄마가 오셨다. 미니가 그토록 기다리던 마늘과 함께. 엄마는 친절하게도 간장 베이스과 식초 베이스 두 종류의 마늘을 담아 오셨는데 한 병은 우리 집 덕후 때문에 얼마 못 가서 바닥을 드러냈고, 두 번째 병이 절반쯤 남았을 즈음부턴 손을 벌벌 떨며 하나씩 아껴 먹는 미니 덕에 나는 먹어볼 엄두도 못 냈다.   


우연인지 필연이지 마늘이 다 떨어져 가던 무렵에 한국행 티켓을 샀는데 그게 벌써 3개월 전. ( =마늘장아찌를 못 먹은 지 3개월)  백수인 나는 한국에 좀 오래 있을 예정이라 미니보다 2주 먼저 떠나고 열흘 늦게 프랑스에 온다. 한국에 갈 날이 확정되고 엄마랑 통화를 하던 날, «마늘 많이 담아놨어»라는 엄마의 말을 전해 듣고 조~용해진 미니. 눈만 꿈뻑꿈뻑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 내가 도착하는 날엔 공항에 나올 필요가 없어. 집에 도착하면 바로 먹을 수 있게 보쌈이랑 족발을 주문해주고 그 왼쪽엔 마늘, 오른쪽에도 마늘을 준비해줘! 그리고 엄마가 마늘을 많이 했다고 했으니까 한국에서 실컷 먹은 다음에 내가 집에 올 때 한 병을 가져오고, 여편이 집에 올 때 또 한 병 들고 오고… »

« … 남편, 왜 그렇게 미친 거야? »

« 생각해 봐. 니스에서 파리로 온 뒤론 철마다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마마 갈릭 덕분에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감기에 안 걸리고 건강한 거 같아. 마늘이 최고야 최고! »


좀 더 아픈 미니에게 마지막 한 톨을...

입이 방정인 것인가? 아니면 정말 마늘 때문일까? 한국행 티켓을 사고 마늘장아찌가 바닥을 드러낸 지난 몇 달간 우리는 근 2년 만에 두세 차례의 감기를 호되게 앓았다. 단 둘이 사는 집에서 무슨 돌림병도 아니고 한 명이 아프면 다른 한 명도 따라 아프기를 반복했다. 또다시 돌림병이 창궐한 지난 주말, 우리는 사이좋게  먼지 같은 하루를 보냈는데 미니가 고이 모셔둔 마지막 세 톨의 마늘을 생명수 마시듯 나눠 먹었다.


마늘! 마늘! 마늘!!

남편이 너무 집착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깟 마늘이 뭐라고…

프랑스 사람들은 영양제를 먹기보다는 음식으로 충당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가을 겨울이 긴 편이고 비 내리는 날이 잦아서 햇빛 보기 힘든 계절엔 작은 앰플로 된 비타민 D를 한 두 차례 복용하는 정도가 전부다. 나도 남들 다 먹는 오메가 3나 종합비타민 좀 먹어보겠다고 몇 번 항의했지만 그걸 못 먹게 하는 거다. 과한 것은 나쁜 거라면서 잔소리 작렬. 그리고는 무척이나 과하게 마늘 마늘 노래를 불러대는 게 얄미울 때도 있었는데 우리는 이미 ‘진짜 보약’을 먹고 있었나 보다. 몸이 골골대고 시름시름 앓아대고 있는 요즘 정말 마늘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내 맘에도 새록새록이다. 울 엄마가 만들어 준 값진 보약을 나보다 먼저 알아봐 준 남편이 고맙고 예쁘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한약방 보약 한 첩은 못 사줄 망정 먹고 싶은 반찬이라도 군말 없이 만들어 주는 게 맞는 거겠지.



그런데 남편, 이제 메추리알 그만 사 오면 안 되겠니.

«이건 도대체 언제 먹어봤어?»

«울산에 있을 때 삼촌이 해 줬잖아. 나 다 알아! 스몰 에그 빨리 해 주세요!»

아… 너무 알아도 피곤하다. 마늘은 엄마가 준비해 뒀다시니 한국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고, 대신 메추리알을 사다 나르기 시작했다.

이 놈의 껍질은 까도 까도 끝이 읍다.  



궁둥이가 실룩실룩

엄마가 만든 보약 먹으러 한국 가기 한 달 전.

먹고싶은 음식 리스트를 작성하는 미니는 광대도 모자라 엉덩이가 실룩실룩이다.

 진짜 많이 담으신 거야? 얼마나 많이?
엄마한테 카카오로 마늘 사진 좀 보내달라고 해!
빨리!


미친 건 확실한 거 같다.




« 헤이! 마늘에 미친 남자 »

« 아니! 건강을 위해서야

피자에 올리고, 파스타 소스에도 넣고, 비프스튜에 퐁당퐁당…  다 된 음식에 마늘 뿌리기.

요즘 우리 집 트렌드입니다.



어쩜 꽃까지 예쁘다. 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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