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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터틀 Nov 18. 2020

야크와 만년설의 환상

오늘은 드디어 라다크의 중심도시인 레로 떠나는 첫날이다. 마날리에서 레까지는 킬롱을 이나 지스파를 거치는데 킬롱으로 가면 3시간이 더 걸려 우리는 지스파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어제 세영에게 장염이 왔다. 밤새 고열과 설사, 구토를 했다. 인도 여행의 통과의례가 온 것이다. 다행히 숙소에 오후에는 도착하는 일정이지만 본인은 얼마나 힘들지.


‘라다크’는 고갯길의 땅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마날리에서 레까지 가는 길은 꼬불꼬불 미로의 연속이었다. 여정의 시작부터 찾아오는 멀미에 눈을 감았다. 한참이 지났을까 기사님이 우리를 깨웠다. ‘여기가 로탕 패스야.’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고도가 높은 로탕패스(Rohtang pass:3890M)에 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깜짝 놀라 달려갔다. 초록 들판과 안개, 그리고 유유히 풀을 뜯는 야크 떼가 보였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었다. 야크 무리의 모습은 너무도 초현실적이었다. 마날리에서 레 가는 길이 너무나 아름다워 장염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세영이 안타까웠다.


지스파는 마을이라기보다 마날리에서 레로 이동하는 여행자들을 위한 임시 거처 같은 곳이다. 그만큼 텐트, 호스텔, 호텔 등 숙소가 밀집되어 있었다. 방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숙소라 선택했지만 숙소 창밖은 동화 속 풍경이었다. 오늘은 이 풍경을 보며 좀 쉬어야지.


새날이 밝았다.

오늘은 10시간 이상 이동하여 레에 도착하는 날이다. 오늘의 고비는 타그랑 라이다. 타그랑 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다. 인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가 많다.


첫째. 까르둥 라 (Khardungla) 5,602M : 누브라 밸리 넘어가는 길

둘째. 타그랑 라 (Taglang La) 5,328M : 마날리에서 레로 넘어가는 길

셋째. 창 라 (Chang La) 5,360M : 판공초로 넘어가는 길


우리 일정은 세 도로를 모두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고산병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몇 년 전 해발 3000m의 중국 구채구에 갔을 때 고산병이 없었지만, 고산병은 그때 컨디션마다 다르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다. 우리는 전날 모두 다이아목스(diamox)라는 고산병 약을 복용했다. 고산병 약은 고산병에 특화된 약이라기보다는 대개 이뇨제이기 때문에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한다. 레까지 가기 위해서는 타그랑 라뿐만 아니라 바랄라찰 라(Baralacha la), 라청랑 라(Lachunglang la) 등 여러 고비를 거쳐야 한다.


이틀 째가 되자 우리를 데려다주는 기사 분과 말을 트게 되었다. 그만큼 조심스러운 태도로 우리를 대하는 분이었다. 다섯 살 된 아들이 있는 30대 가장인데, 애기를 보고 싶지만 돈을 벌기 위해 마날리에서 레까지 한 달에 네다섯 번씩 오간다고 한다. 항상 예의 바르고 친절한 태도가 마날리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던 성추행 기사와는 사뭇 달랐다. ‘인도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었어.’라는 안도감이 왔다.


아침식사를 위해 잠시 천막으로 된 레스토랑에 들렀다. 천막에는 군인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라다크 지방에 가까이 오자 군인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군용 차량이 많이 보였다. 역시 국경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답다. 우리는 인도의 히마찰 프라데시 주에서 잠무 카슈미르 주로 넘어온 것이다. 카슈미르에 오니 주변 경관이 척박하게 변했다. 인도 전역은 8월이 우기라 여행하기 안 좋은 시기이지만 카슈미르를 비롯한 라다크는 건기이다.


사실, 라다크는 여름 이외에는 여행하기가 힘들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7월부터 9월까지만 열리고 나머지 기간은 빙하와 만년설에 의해 봉쇄되고 만다. 바로 지금, 8월이 라다크를 여행할 수 있는 최고 적기인 것이다.


푸릇푸릇한 히말라야가 점점 모래와 바위, 절벽으로 바뀌어 갔다. 고산 길을 구불구불 가다 보니 대 평원이 펼쳐졌다. 마치 미국 서부 대평원을 보는 듯했다. 이곳은 Moore plains라는 곳으로 해발 4730M에 펼쳐진 대평원이다. 해발 4730M에 이런 평원이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안전 운전하시던 기사님은 모처럼 신나게 속도를 내셨다.

드디어 해발 5328미터인 타그랑 라에 도착했다. 타그랑 라에 도착함과 동시에 나는 손발이 저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전기 놀이를 했던 느낌이었다. 나는 다른 증상은 없었지만. 장염을 앓았던  세영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급격히 다운되었다.


타그랑 라에는 사원(곰파)에 타르초가 흐드러지게 걸려 있었다.

천상이나 영적 세계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여행이 무사히 끝나기를 잠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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