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낡은 메모
2018년 4월 메모를 다듬은 글입니다.
벌써 1년하고 8개월 전에 쓴 내용이네요.
스타트업에 입사하고 한참 성장해갈 때
난생 처음으로 조직과 구성원의
성장 관점에서 정리해본 기억이 납니다.
제가 있는 블랭크코퍼레이션 역시
여느 비슷한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수평적 조직문화를 지속 강조했기에
하지만 미숙한 점도 많았기에
개인적으론 이것저것 공부하며
글에서 걱정스러운 포인트를 많이 짚었고요.
놀랍게도 이 생각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네요.
싱숭생숭한 연말 한 해를 정리하며
발견한 옛날 메모를 포스팅 해봅니다.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혹시 팀원 간 허물 없고 활발한 의사소통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그룹웨어를 도입하고 그 안에서 다채로운 의제로 토론을 시작하셨나요? '의견을 가진 직원은 옳다'는 넷플릭스의 문화처럼 모든 직원의 주장은 시비를 떠나 행위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고 조직은 더 나은 대안을 탐색할 수 있는 다양성을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젊음과 도전을 상징하는 스타트업에서 수평 문화는 대개 각광 받습니다. 이곳에 발을 내딛은 이의 공통된 기질과 밀접하다 생각하는데요. 사견이지만 스타트업 종사자의 페르소나는 누군가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졌고 강한 자아와 주관으로 똘똘 뭉친 능동적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살짝 보태면 특권층에 대한 반골 기질과 소외 계층을 위한 정의감도 갖고 있고요. 그래서 앞 단락의 사례처럼 토론을 장려하는 환경 속에 강력함을 보여줍니다. 솔직하고 날카로운 의견이 난무하고 관철을 위해선 대립, 갈등도 불사합니다. 어쩌면 관리자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치고 박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질 지도 모릅니다. 계획대로 전직원이 솔직한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이 상황은 조직에 바람직하지만은 않습니다. 조직 내 의사결정자나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면 대부분 혼란을 발생시킬 뿐입니다. 수평의 개념을 1차원적으로 접근할 때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조직도마저 극단적으로 수평화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논의의 끝에는 결정이 필요합니다. 확실한 결정이 서야 특정 모델을 실험할 수 있는 추동력이 조직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정평난 그룹웨어에서 활발한 의견교환이 일어나더라도 정기적으로 타운홀 회의를 갖더라도, 그 안에서 발생한 토의가 “앞으로 ~ 할 것이다" 같은 결론 도출 없이 반복되기만 한다면, 중론이 부유하는 생각 그득한 조직에 그칠 뿐입니다. 이는 무엇 하나 실천하기 힘든 환경을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평 문화를 지향하는 조직에선 의사결정자 선정이 필수적이며 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의사결정자는 의제 발의자로써, 때론 토의 이끌이로써 다양한 의견 가운데 핵심을 간파하여 조직에 피드백하고 사람들의 에너지를 동일한 방향으로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이 과정에서 시간 통제를 통해 조직의 기동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맺고 끊음을 확실히 해야 하고 무엇보다 리더로서 결정의 근거가 될 조직의 최우선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 없이 정의하고 설파해야만 합니다.
잘못 정의된 사내 수평 문화 속에서 ‘착한 리더 컴플렉스’를 앓는 관리자를 몇몇 보았습니다. 그들의 난점은 관리자의 주된 역할이 조직원 개인의 꿈과 희망을 이뤄주는 것처럼 사내에 홍보된 나머지 지지적 피드백이 아닌 교정적 피드백을 거침 없이 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즈니스에서 선(善)한 것은 이윤을 창출하는 행위입니다. 조직문화가 취할 형태는 이를 달성하는 효과적 수단이어야지 절대 목적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수평과 수직 중 어느 게 더 낫다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비즈니스가 처한 성격과 구성원의 능력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론 자율성이 조금 더 확보될 수 있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선호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원칙과 리더십 그리고 좋은 인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직적 조직문화의 단점은 일방향적 결정구조에서 소수의 의사결정자가 내리는 잘못된 판단에 대해 견제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수평적 조직문화는 수직 문화가 갖는 단점을 개방성과 솔직함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입니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의사결정 속력을 저하시키고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과 평가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를 보완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는 의사결정 과정 상의 ‘확실한 원칙’과 이를 이끄는 리더와 그를 따르는 팔로어의 ‘행동 양식’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훌륭한 인재’로써 갖춰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8.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