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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Jan 26. 2022

독일에 수영 못하는 어른이 드문 이유

생존 수영 4단계



살갗이 타는 듯이 뜨거운 여름, 온 가족이 집 앞 수영장에 갔어요. 저만 물 밖 벤치에서 지켜보는데 다들 즐거워하는 모습에 소외감을 느꼈죠. ‘이참에 수영이나 배워 볼까‘ 한국에서 여러 번 배우려다가 머리를 물속에 넣으라는 강사의 말에 무서워서 포기했거든요. 강습을 문의했더니 성인은 4, 5년에 한 번 수업이 있을까 말까라고 했어요. 수강생이 모여야 강습을 할 텐데 독일에는 수영 못 하는 어른이 드물다는 반증이에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손주에게 수영을 가르치거나 우아한 백조처럼 머리칼이 젖지 않은 채 수영하는 모습에 놀랐어요.  


생존 수영의 네 단계 중 8학년인 큰아이는 질버(3단계)를, 5학년인 작은아이는 브론즈(2단계)를 이수했어요. 오누이는 수영장에서 가끔 친구들과 약속을 하는데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 딸이 친구 파울리나와 수영장에 가겠다길래 열 살인 딸을 혼자 보내기 걱정되어서 보호자가 따라가야하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데 딸은 파울리나가 딴 ’ 골드(4단계)‘는 생존 수영의 최종 단계로 물속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서 걱정 말라고 저를 안심시켰어요. 골드를 딴 아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해요. 한국에서 태권도 급수를 묻는 것처럼 수영의 급수가 뭔지는 친구들 사이에서 꽤 중요하고요.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도 준비 서류에 성적표와 수영 급수 확인서가 필요해요.  




딸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주일에 하루 두 타임(한 타임당 45분)씩 의무적으로 수영 수업을 받았어요. 신청서엔 물에 대한 친숙도 및 수영 가능 여부를 체크하는 항목이 있었고, 학기가 끝날 때까지 모든 학생이 최소 1단계(해마)는 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동네 수영장의 어린이 강습도 최소 4개월은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5, 6세 아이들이 수영을 미리 배우더라고요. 딸 반 정원이 20명 남짓인데 1단계(지페어티헨Seepferdchen, 해마 )와 2단계 (브론즈 Bronze)를 이수한 아이가 절반 정도였어요. 1단계 이상 이수한 학생은 수영 수업에 가지 않고 원래대로 체육을 해요. 



독일 학교를 3학년부터 다닌 큰아이는 한국에서 수영을 3개월 배운 게 전부였어요. 4학년 때 바닷가로 학급 여행을 갈 때도 수료증을 제출해야 했어요. 최소 브론즈(2단계)가 없을 경우 바닷가에서 물에는 들어가지 못해요. 김나지움에 입학 등록할 때는 수영을 하긴 하는데 독일에서 정한 생존 수영이 아니라서, 할 수 있다고 체크하고 서류는 입학 날 제출하겠다고 했어요. 5학년 상급 학교로 진학할 때 큰아이도 뒤늦게, 어쩔 수 없이 브론즈(2단계)를 이수했어요. 


딸도 학교에서 수영 수업을 한다는 공지를 받고 부랴부랴 수영장에 대기자로 등록했어요. 첫날, 수영장 밖에서 유리문으로 지켜봤는데 꽤 흥미로웠어요. 킥보드를 가슴에 착용한 딸은 낮은 수심(0.78m)에서 자유롭게 놀았어요. 그러곤 개구리 수영에 필요한 팔 동작과 발차기를 연습하다가 바로 수심 1.60m를 경험하는 거예요. 무서워하는 아이는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주고요. 물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누가 물을 두려워하는지 보여요. 학교에서도 배우고 수영장에서 자주 놀던 아이는 쉽게 따라가요. 깊은 수심에서 개구리 수영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면 세 번째 수업에선 가슴에 착용한 킥보드를 벗어요. 


네 번째 수업에서 수심 2m에서 다이빙을 시켜서 놀랐어요. 초급반이고 수강생 열 명 중 다섯 명은 물이 처음인 것처럼 무서워하는 애들이었거든요. 어떤 아이는 겁에 질려 눈물을 보였고요. 한 명씩 2m 깊이로 점프하는데 못 뛰어들고 주저주저하는 아이는 다른 친구가 뒤에서 밀어서라도 떨어뜨렸어요. 저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아이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물이 무섭지 않다는 걸 빨리 깨닫는 게 수영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르겠어요. 상상 속 두려운 실체가 실제로 마주하면 별거 아님을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듯이요. 




1단계를 이수하면 "수영할 수 있나요?"라는 물음에 당당하게 "네"라고 말해요. 수영장 수심이 2m 혹은 3m로 바뀔 시엔 꼭 수영의 급수를 확인해요. 독일의 생존 수영은 아래의 4단계로 구분되고 초등학교 졸업 전에 최소 브론즈(2단계)까지 이수하도록 권해요. 학년이 높아져도 체육 시간에 수영 수업이 있으니 5, 6학년 즈음엔 질버(3단계)를 따는 아이도 있고요. 사회 분위기상 수영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어요. 
 

독일 생존 수영 4단계 
 
1단계(지페어티헨Seepferdchen,해마): 수심 1.7m에서 평영(얼굴을 물 위로 내밀고 개구리헤엄)으로 25m를 갈 수 있으며 1m 잠수해서 바닥의 물건 줍고 1m 다이빙대에서 점프하기 
 
2단계(브론즈Bronze): 15분 안에 200m를 평영으로 완주, 2m 잠수해서 바닥의 물건을 줍고 1m 다이빙대에서 점프하기
 
3단계(질버Silber): 25분 안에 400m를 완주하는데 300m는 평영으로, 100m 배영으로. 2m를 잠수해 두 번 이상 물건을 집어 올리고, 잠수 상태로 10m 가기. 3m 다이빙대에서 점프하기.
 
4단계(골드Gold): 24분 안에 600m를 평영으로 완주. 평영으로 50m 70초 내로, 25m는 크롤로, 50m는 배영으로. 2m에서 한 번에 물건 세 개를 3분 안에 주워오는 잠수를 세 번 반복. 잠수 상태로 15m 가기. 3m 다이빙대에서 점프하기. 물건을 물 위에서 밀거나 당기면서 50m 수영하기.


3, 4단계는 꽤 어려워요. 2단계(브론즈)도 평영으로 200m를 15분 안에 가야 하니 만만하진 않아요. 한국에서 수영을 1년간 배운 남편은 얼굴을 물 위로 내민 상태로는 어렵대요. 머리를 물 안으로 넣고 팔을 저을 때 호흡하는 자유형을 배워서, 물 밖으로 얼굴을 계속 내민 상태를 참지 못했어요. 하지만 개구리 수영이 물속에서 에너지 소모가 가장 적어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영법이니 중요해 보여요.


생존 수영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는 Rettungsschwimmen으로 Rettung은 구조, 구명, 보호라는 뜻이에요. 독일에서 권장하는 생존 수영이 물에 빠졌을 때 대처하는 능력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지 궁금했는데 수영하는 모습을 보니 꽤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물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능력과 잠수하는 능력, 그리고 깊은 수심으로 다이빙하는 능력이 필요하니까요. 딸의 학교 수영 수업에서는 마지막 날, 수영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서 실제로 물에 빠졌을 때와 같은 상황을 재현했고요.


4학년 졸업 여행을 갈 때와 진학할 때 증명서를 요구하지 않았다면 자발적으로 수영을 배우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공교육에서 수영이 가능하려면 생존 수영이 가능한 교사와 시설이 필요한데 독일은 그 부분이 갖춰졌어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수영의 중요성은 알지만 자발적으로 배우기 어려울 땐 의무 교육과 시스템에서 증명서를 요구하는 방법도 꽤 유용해요.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적당히 어린 나이에 스스로를 구할 최소한의 능력은 갖추게 하니까요.


*프리즘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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