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어둠이 오기 전에 It's Not Yet Dark> (2016)
관심 다섯,
#삶 #사랑 #살아가기
내가 기억하기 훨씬 이전부터 나에게
삶과 사랑은 무척이나 근접하고도 비슷한 단어였다.
(주의: 다음 글에는 영화 <이프온리>와 <미 비포 유>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희대의 로맨스 영화, <이프 온리>를 보고난 14살의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남자는 여자와 함께 그 택시에 탄것일까? 둘 다 그 택시를 타지 않았더라면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텐데. 빤히 보이는 결말 속으로 남자는 왜 뛰어든걸까.
그런 나에게 누군가 말했다.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거야.”
“바뀌지 않는 결말”
14살의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바뀌지 않는 결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시간이 흘러 23살의 나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어느 한 남자가 존엄사를 택하는 로멘스 영화를 보게 된다. 하지만 이번엔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사실 어떠한 분노, 원망도 없이 온전히 남자 주인공의 선택을 이해하는 내 자신이 되려 슬프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당시 삶의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믿었던 나는 영화를 보며 다른 의미로 절망감을 느낀다. 처음으로 이 소중한 관계 조차도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다는 생각.
이 관계마저 그것을 지탱해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질문에 빠져 23살의 나는 어둠 속에 갇힌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살아있을 권리에 대해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되려 우리는 죽음의 권리를 논한다.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씩 잃어가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한 남성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적지 않은 충격에 빠지게 된다.
나는 살고 싶다
그게 잘못된 일인가?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어딜 가던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끝없이 해댈 만큼 사교적인 사람이다. 그의 직업은 영화감독.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정도로 모험심이 많던 그는 이제 막 유명한 영화제에 초청되어 영화 감독으로써 전성기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일, 사랑, 가정.' 모든 것이 완벽하던 그 때, 멀쩡하던 그의 다리가 조금씩 절여오기 시작한다.
별것 아닐 것이라 여겼던 통증은 MND(운동뉴런질환), 희귀난치성질환의 판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3년이라는 시간을 통보받는다.
모험심 많고 이야기하기 좋아하던 그는 하나씩, 자신의 일부를 잃어간다. 어느 날은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되었다가, 걷지 못하게 되고. 먹지 못하게 되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조차 낼 수 없게 된다.
각 단계마다 삶의 일부를 잃어가는 것을 오롯이 견디는 심정을 우리가 헤아릴 수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그가 우리에게 눈빛으로 이야기한다.
"The best thing about living with MND
is the living part."
"MND 환자로서 가장 좋은 점은
살아있다는 점이다."
- Simon Fitzmaurice (<It's Not Yet Dark>中)
다큐멘터리는 그의 아내와 가족들의 인터뷰, 그리고 다른 배우의 목소리를 빌린 남자의 나레이션을 통해
하나씩 잃어가는 고통에 대해 나열한다. 하지만 영화는 단 한번도 언성을 높이지도, 감정을 과잉시키지도 않은 채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충분히 비극적일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그들은 그렇게 담담하게, 어떻게 보면 담백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차분히 풀어나간다.
그리고 이 비극적 이야기의 주인공인 남자 또한 우리에게 단 한 번도 "살아야합니다", "당신의 삶은 소중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각 단계에서의 자신의 심정을 차분히 이야기해나갈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죽음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공포일 뿐이라고.
나는 살고 싶다고.
"인공호흡기를 왜 달아야 하는가?
이런 질병을 갖고도 왜 살아야 하는가?
내게 이유는 수없이 많다
나는 얼마나 오래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여기서 살아갈 이유가 있기는 한가?
'진정한 사랑' 이게 그의 답이다"
- Simon Fitzmaurice (<It's Not Yet Dark>中)
아내에 대한, 아이들에 대한,
친구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문 앞에서
계속해서 삶의 싸움을 이어가는 그를 두고
그 누가 그것이 무의미한 일이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
3년이라는 시간을 통보받았던 남자는
3년보다도 더 많은 시간들을 살아가며 불가능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해낸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입증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되려, 불확실한 그의 미래가 그에게 순간마다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그가 유일하게 남은 그의 생에 동안 입증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
"그의 아이들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것"
그것 하나를 알려주기 위해 남자는
누군가는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생의 싸움을
끝까지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이어간다.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도, 죽음의 권리에 대한 주장도 모두 멈추게 만드는 그.
그런 그를 살아가게 했던 것은 결국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의 꿈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래, 그 사랑과 꿈.
어느순간 진부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단어들이
결국은 우리 삶 자체라는 것을
그는 마지막 현재 시제의 순간 속에서 우리에게 남긴다.
다큐져니 관심 다섯,
(#삶 #사랑 #살아가기) 추천작
<It's Not Yet Dark 어둠이 오기 전에> (2016, Frankie FENTON)
! 순간을 헤쳐나갈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면
! 무감흥의 고통을 겪어 본 당신이라면
! 지금, 삶의 의미를 묻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