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 Wyeth <Christina’s World>
멀리 보이는 집,
한참을 가야 닿을 듯한 저곳을 바라보며, 한 여인이 땅을 짚고 앉아 있습니다.
밝고 고운 핑크색 원피스, 정갈하게 단장을 마무리한 벨트와 흰 양말에 구두까지...
오늘 유난히 날이 좋아 혼자 산책을 나왔다가 풀밭에 넘어졌나보다... 속상해서 어쩌나...
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왼손으로 앞을 짚고 오른손으로 뒤를 버티는 모습은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일 거라고...
저 멀리 보이는 집에서 아무라도 이 여인을 발견해서, 빨리 도와주러 달려왔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사람이 있는 걸 모르는 게 아닐까, 내가 여기 있다고, 지금 쓰려져 있다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여인의 목소리가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걸까, 이러다 해라도 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의 배경을 알게 된 후,
가녀린 여인의 뒷모습이 마냥 약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거친 들판을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멀리 언덕 위 집을 바라보며, 그곳을 목표삼아, 자신의 속도로, 자신이 갈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땅을 짚어내고 있는 것이었죠.
이 여인이 향해 있는 저 집과 언덕 너머엔 무엇이 있는 걸까요?
온 힘을 다해, 애써 저곳으로 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곳에 그녀가 바라는 희망이 있는 걸까요?
그림 속 여인, 크리스티나는 근육 퇴행성 질환으로 두 다리를 거의 쓰지 못했지만, 스스로를 한 번도 ‘불행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앤드루 와이어스는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크리스티나를 창문 너머로 오랜 시간 지켜보곤 했습니다.
이날도,
그가 아는 한,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는 것이 그녀를 돕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녀는 땅을 단단히 짚어가며 앞으로 나아갔고, 화가는 그 느린 움직임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는 한 인간의 ‘존엄’과 본질적인 ‘삶의 의지’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그녀는 멀리 보이는 집을 향해 손을 내밀고, 쓰러져 주저앉은 채 절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떨 땐 기어서라도 나아가야 함을 알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내려 해도 힘이 나지 않고, 어떻게든 나아가고 있지만 진전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세한 움직임에 한뼘 용기를 내본다면, 우리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나아감을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요.
거대한 또는 엄청난 과업을 이루지 않아도
나아갈 방향을 향해 땅을 짚어내는 순간,
우리는 그 자체로, 희망을 품은 게 아닐까요.
<앤드루 와이어스의 세계> 와이어스는 미국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그의 화풍은 “조용한 리얼리즘(Quiet Realism)”으로 불립니다. 그의 그림에는 소리나 장식이 거의 없습니다. 단단한 선, 바랜 색, 정지된 듯한 시간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것은 인간의 내면과 고독, ‘살아가는 의지’였습니다. 그는 사람의 얼굴보다 그들이 살아내는 자취를 그리고자 했고, 그렇게 인간의 흔적, 그 속에 남은 존재의 온도를 그림에 담았습니다. 거대한 서사나 영웅적 감정 대신, 작고 담담한 의지를 포착하려 한 것이죠.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 잔잔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누군가의 토탁임에, 스르르 녹아내리는,, 긴장의 부드러운 균열 같은 흔들림...
*커버사진 출처: P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