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희망_땅을 짚어낼 용기가 있다면

Andrew Wyeth <Christina’s World>

by 예가체프

멀리 보이는 집,

한참을 가야 닿을 듯한 저곳을 바라보며, 한 여인이 땅을 짚고 앉아 있습니다.

밝고 고운 핑크색 원피스, 정갈하게 단장을 마무리한 벨트와 흰 양말에 구두까지...

오늘 유난히 날이 좋아 혼자 산책을 나왔다가 풀밭에 넘어졌나보다... 속상해서 어쩌나...

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Christina's world>, Andrew Wyeth, 1948.

왼손으로 앞을 짚고 오른손으로 뒤를 버티는 모습은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일 거라고...

저 멀리 보이는 집에서 아무라도 이 여인을 발견해서, 빨리 도와주러 달려왔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사람이 있는 걸 모르는 게 아닐까, 내가 여기 있다고, 지금 쓰려져 있다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여인의 목소리가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걸까, 이러다 해라도 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의 배경을 알게 된 후,

가녀린 여인의 뒷모습이 마냥 약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거친 들판을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멀리 언덕 위 집을 바라보며, 그곳을 목표삼아, 자신의 속도로, 자신이 갈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땅을 짚어내고 있는 것이었죠.

이 여인이 향해 있는 저 집과 언덕 너머엔 무엇이 있는 걸까요?

온 힘을 다해, 애써 저곳으로 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곳에 그녀가 바라는 희망이 있는 걸까요?


그림 속 여인, 크리스티나는 근육 퇴행성 질환으로 두 다리를 거의 쓰지 못했지만, 스스로를 한 번도 ‘불행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앤드루 와이어스는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크리스티나를 창문 너머로 오랜 시간 지켜보곤 했습니다.

<wind from the sea>, 1947.

이날도,

그가 아는 한,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는 것이 그녀를 돕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녀는 땅을 단단히 짚어가며 앞으로 나아갔고, 화가는 그 느린 움직임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는 한 인간의 ‘존엄’과 본질적인 ‘삶의 의지’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그녀는 멀리 보이는 집을 향해 손을 내밀고, 쓰러져 주저앉은 채 절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떨 땐 기어서라도 나아가야 함을 알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내려 해도 힘이 나지 않고, 어떻게든 나아가고 있지만 진전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세한 움직임에 한뼘 용기를 내본다면, 우리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나아감을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요.

거대한 또는 엄청난 과업을 이루지 않아도

나아갈 방향을 향해 땅을 짚어내는 순간,

우리는 그 자체로, 희망을 품은 게 아닐까요.




<앤드루 와이어스의 세계> 와이어스는 미국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그의 화풍은 “조용한 리얼리즘(Quiet Realism)”으로 불립니다. 그의 그림에는 소리나 장식이 거의 없습니다. 단단한 선, 바랜 색, 정지된 듯한 시간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것은 인간의 내면과 고독, ‘살아가는 의지’였습니다. 그는 사람의 얼굴보다 그들이 살아내는 자취를 그리고자 했고, 그렇게 인간의 흔적, 그 속에 남은 존재의 온도를 그림에 담았습니다. 거대한 서사나 영웅적 감정 대신, 작고 담담한 의지를 포착하려 한 것이죠.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 잔잔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누군가의 토탁임에, 스르르 녹아내리는,, 긴장의 부드러운 균열 같은 흔들림...
<master bedroom>, 1965.

*커버사진 출처: P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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