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Vampire II>
어둠 속에,
두 남녀가 서로를 깊이 안고 있습니다.
여인의 붉은 머리칼은 남자의 등에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여인은 온전히 그를 감싸고 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전부를 내주듯 여인에게 깊이 파고듭니다.
여인은 그의 영혼까지 위로할 것처럼 그를 가만히 안아 줍니다.
그런데 제목이 반전입니다.
“뱀파이어”라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흡협귀를 말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이 여인은 그를 감싸안은 것이 아니라,
저렇게나 평온한 자세로 남자를 파멸시키고 있는 걸까요?
제목을 보는 순간,
방금까지의 따뜻한 분위기는 깨지고,
그림의 온도가 갑자기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림 속 남녀의 표정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절규>로 유명한 에드바르 뭉크는 여러 차례 <Vampire> 시리즈를 그렸습니다.
그는 사랑과 고통의 경계가 뒤섞이는 순간을 그림으로 표현했고,
사랑이 고통이 되고 고통이 또 사랑이 되는 혼란스러운 생애를 살았습니다.
뭉크의 곁엔 늘 죽음, 불안, 상실이 따라 다녔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와 누이를 병으로 잃은 후,
사랑이 차갑게 식은 죽음의 실체 앞에서,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불안이 가득찬 상처투성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사랑을 할수록 상처받고, 상처를 입을수록 사랑을 갈망했습니다.
뭉크에게 사랑은 구원이면서 동시에 공포였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잔혹한 감정이었습니다.
<Vampire>는 바로 그 모순을 시각화한 그림입니다.
뭉크는 사랑을 구원과 파국의 양면으로 바라보았고,
두 극단의 경계를 흐릿하게 함으로써, 인간 감정의 가장 깊은 지점을 표현했습니다.
사실 뭉크가 지은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사랑과 고통(Love and Pain)’이었다고 합니다.
남자의 목에 키스하는 여인의 모습이 뭉크의 절망적인 분위기와 맞닿으며(‘절규’ 같은 분위기의),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흡혈귀란 이미지로 해석된 것이었죠.
하지만 화가는 좀 더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제목에 드러냈듯이, 사랑은 구원이면서 고통스런 파멸일 수도 있다고 말이죠.
위로 message.
누군가를 깊이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사랑이 때로 고통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고통이 사랑의 반대어는 아니죠.
사랑이 지나간 자리엔 아픈 상처가 남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상처는 아픈 사랑이 머물렀던 자리, 한때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던 흔적이 아닐까요.
“나는 사랑을 두려워했다. 사랑은 나에게 구원이자 파멸이었으므로.”
(에드바르 뭉크, Diary, 1892)
:: 마음의 그림자를 따라, <표현주의> ::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불안, 상처,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표현주의가 등장했습니다. 에드바르 뭉크는 표현주의의 문을 연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찢어진 선과 뒤틀린 형태, 강렬한 색으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숨김없이 폭로했습니다.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 같은 화가들도 그의 뒤를 따르며 ‘상처 난 진실’에 더 큰 가치를 두었습니다. 뭉크의 <Vampire>에는 진실에 대한 용기가 드러납니다. 사랑과 상처, 위로와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마음의 동굴 속에 웅크리고 숨죽인, 감정의 그림자를 드러낼 용기 말이죠.
**사진: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한가람미술관 展 (2024). 관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