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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Oct 22. 2019

런던의 취침 시간

어른의 생활에 아이를 맞추다.

런던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나의 소식에, 주변에서 다들 날씨에 관한 걱정을 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는 둥, 구름 낀 날이 대부분이라는 둥…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지만 실제로 런던에 살면서는 그렇게 날씨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매우 일관성 있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덕스러운 늦가을 또는 초봄의 꽃샘추위 날씨가 1년 내내 지속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비가 많이 온다는 표현보다는 자주 조금씩 오는 게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게다가 아시아처럼 습하지 않은 날씨 덕분에, 해충이 거의 없어 방충망 없는 창문을 열어두고 가든을 항상 내다보며 살아도 되는 점이 나에겐 정말 좋았다. 


날씨보다도, 런던에서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겨울 3개월간 짧은 데이타임이었다. 주로 4시면 해가 졌고, 그보다도 빨리지는 날은 오후 3시면 어둑어둑해졌다. 그렇게 빨리 해가 지는 계절은, 엄마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나날의 연속이다. 일단 동네 놀이터도 4시면 게이트를 잠갔다. 키즈카페 같은 곳들이 어쩌다가 있긴 했지만, 모든 동네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밤처럼 컴컴한 날 매일처럼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2015년 12월의 런던 하이드 파크. 전형적인 겨울 대낮의 모습이다.


우리는 남편학교에서 걸어서 10분 내에 위치한 St. John's Wood 세인트 존스 우드에 살았는데, 전통적으로 유대인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어서 시나고그가 몇 군데 있고, 런던의 유일무이한 아메리칸 스쿨이 위치하여 미국인들이 많이 살았다. 그래서 이사한 지 얼마 안 있어 동네에서 알게 된 또래 미국 엄마들과 친해져, 통해 통해 영국 엄마들도 사귀게 되었고, 서로 집에 초대하며 왕래하게 되었다. 아직 널서리 스쿨을 보내기 전의 돌-두 돌 정도의 아이들이었기에 보통의 스케줄은 아이 낮잠 이후 2-3시에 만나서 4시 반이나 5시에 헤어졌다. 내가 처음에 의아했던 점은, 보통 우리가 집으로 갈 체비를 하는 4시 반 정도가 되면 호스트(주체 측) 엄마가 저녁 준비로 엄청 분주해지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저녁시간은 6-7시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요리를 성대하게 하는 것이리라 예상했다. 그러다 여러 집에서 미국 가족, 영국 가족 등과 플레이데잇(play date)을 하고 알게 된 점은, 아이들의 저녁시간이 거의 항상 5시 전후라는 것이었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4시 반에 저녁 식사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런던 아이들의 저녁 루틴은 이러하다:
5시: 저녁식사
6시: 목욕
6시 반-7시: 침대에 들어 독서 후 잠들기
아무리 늦게 자는 날도 8시는 넘기지 않도록 한다.


주말과 공휴일, 그 어떤 날도 예외 하지 않고 아이들은 이 루틴을 따르는 것이다. 처음엔 해가 짧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밤 10시까지 해가 지지 않는 여름에도 이런 루틴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일찍 아이들이 잠든 후, 저녁은 오로지 어른만의 시간이 된다. 그것이 밀린 집안일이 되었든, 남편과의 저녁 데이트가 되었든, 아이들의 방해 없이 훨씬 능률적이 되는 것이다. 런던의 엄마들은 "me time", 즉, 나만의 시간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엄마가 휴식을 취하여 더 편안한 상태가 되어야 아이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규칙적인 수면 스케줄은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에게 더욱더 유용하다. 런던 엄마들의 아이들 수면시간 지키기는 그런 광경을 처음 본 나에게는 거의 집착 수준으로 보였는데,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그녀들에게 아이를 늦게 자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커피나 와인을 주는 것 같이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유아기의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내가 익힌 곳이 런던이었지만, 그 후로 몇 년간 깨달은 건 국적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서양인 부모들이 이렇게 재운다는 것이다. 조금 늦게 재우는 부모가 있다면 대부분이 동양계였다. 내 이런 판단이 일반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이 얘기를 들은 한국 사람들의 반응에 있다.

내가 "서양 아이들은 7시면 잠자리에 들더라." 하면,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뭐라고? 7시?" 등 상상하기도 힘들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영국 배경은 아니지만, 영화 Sound of Music(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어른들이 파티를 즐기는 동안 아이들은 "So Long, Farewell"을 부르며 먼저 잠자리에 들지 않았던가. 아이들이 자는 동안 베이비시터*를 고용하여 파티에 가는 부모든 데이트를 즐기는 부모든, 그만큼 죄책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부모가 나갔을 때 아이가 부모를 그리워하며 외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을 테니). 또 다른 장점은, 아이들의 생활 패턴이 일정하기 때문에 특별히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에도 어느 정도 취침시간 등이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제공해야 하는 교육의 범위에는 지식의 습득 외에도 수면과 식사 같은 생활패턴도 포함된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들의 먹거리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다. 직접 만든 이유식은 개월 수와 아이의 씹기 능력에 따라 입자의 굵기를 다르게 하고, 아이들이 먹는 양과 내용물도 부모가 다 조절한다. 하지만 아이의 수면 스케줄은 아이한테 맞기는 게 보편적이다. 아직 자기 몸에 익숙해져 가는 영유아기의 아이들은 가끔 자기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고 이상행동을 많이 하는데, 그건 졸려서 하는 잠투정일 때가 많다. 아이들이 burn out(번아웃) 되기 전에 제 때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도와주는 것도 크게는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교육의 범위에 해당된다. 내가 만난 런던의 엄마들은 이 점을 특별히 공부한 적도 없이 본인들도 그렇게 자라왔고 주변에서도 모두 그렇게 행하기 때문에 아주 당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규칙적이고 일찍 자는 습관은 아이의 성장과 엄마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너무나 당연히 행해져야 할 중요한 가정교육이라는 것을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Nanny 내니와 Babysitter 베이비시터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니는 집에 상주할 수도 있고 출퇴근으로 근무할 수도 있지만, 주로 아이를 엄마와 함께 또는 대신하여 양육해주는 사람을 지칭한다. 따라서 까다로운 부모는 내니의 학력까지도 따질 수 있고, 크게는 가족의 일원으로까지 간주되는 중요한 역할이다. 베이비시터는 말 그대로 아이를 sit 해주는 사람이다. 앞서 얘기한 상황처럼, 부모가 7시에 아이들을 재우고 나가는 경우,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면 아이들이 자는 동안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집을 봐주는 역할일 수도 있고, 낮에 부모가 잠시 외출할 때 몇 시간 이내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사람 등 내니 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책임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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