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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Oct 24. 2019

도쿄의 마마챠리

엄마가 되는 순간 수퍼휴먼이 되는 그녀들

무례한 일본인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이 있다면 매우 이례적인 일일 것이다. 나는 지난 2년간 도쿄에 살면서 아직 단 한 번도 무례한 일본인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이들이 더 진심으로 남을 배려하거나 더 착해서라기 보다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에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기 때문이다. 도쿄에 살면서 극도로 원칙주의적인 삶을 사는 일본인들에게서 답답함을 느껴본 적은 있어도 감정에 상처를 받거나 태도에 불쾌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들은 항상 칼같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동네서 찍은 사진) 내 영역과 내 영역이 아닌 것이 분명한 사회, 일본.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 일본 편에서는 자신이 자리 잡을 위치와 분수를 아는 것이 일본인의 기본자세라 하였다.


한 개인의 영역이 분명히 정해진 사회, 일본.

일본어로는 이것을 一人前(이찌닌마에)라 한다. 한국어로 해석하면, 한 사람의 몫. 


내가 도쿄에 살면서도 일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한 사람의 몫"이라고 느껴진다. 모두들 자기한테 주어진 과제를 묵묵히 수행하듯 살고, 그 틀을 벗어나 불편을 주었을 때는 무지막지한 실례를, 그 틀을 벗어나 친절을 베풀었을 때는 어마어마한 감동과 미안함을 주게 되는 철저한 일본식 사고방식이다. 출산을 한 여성이라해서 그 규칙에서 예외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본 엄마의 모습은 더 없이 외로운 여정으로 보인다.




처음 도쿄에 도착해서 제일 충격을 받은 것은 아이를 싣고 다니는 자전거였다. 하네다 공항에서 아이들과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나의 눈에 자전거 앞뒤로 아이를 싣고 달리는 엄마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심지어 어떤 엄마들은 셋째를 가슴에 아기띠로 고정한 채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미쳤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이 것이 유모차나 씽씽이 보다 흔한 도쿄 아이들의 이동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마챠리”라는 별명의 이 자전거는, 자전거도로가 따로 없는 도쿄의 인도와 차도 위를 자유자재로 다니며, 대게는 배터리가 달려서 전동 어시스트를 받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비를 입고 앞뒤로 아이를 태우고 달리는 가냘픈 일본 엄마들의 모습은 나에게 정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단, 내가 이 전에 아이를 키웠던 런던이나 서울에서는 교통법 위반일 것이기 때문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위험한 이동수단이었다.

사방에서 보이는 도쿄의 마마챠리. 오른쪽 사진의 맨 오른쪽이 내 마마챠리다.


도쿄에서 어린아이 둘과의 생활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이가 있으면 무조건 양보를 받던 런던과는 반대로, 오히려 아이가 있으니 더욱더 신경 써서 남을 배려해야 하는 것만 같았다. 서울과 런던에서 유행하는 최고급 딜럭스 유모차도 찾기 힘들었다. 크기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쉽게 접었다 폈다를 할 수 없어서인 것 같았다. 엄마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도 손쉽게 접었다 펼 수 있는 umbrella stroller(초경량 휴대용)를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자가용이 있더라도 쉬운 건 아니다. 도쿄의 찻길에서는 그 흔한 패럴렐 파킹 된 차를 찾기가 어렵다. 정해진 위치가 아니면 절대로 차를 세우지 않는다. 작은 유료 주차장이 많긴 하지만 주차비도 여간 비싼 게 아니고, 만차일 때가 많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렇게 언덕이 많고 대중교통이 (아이가 있는 부모에게) 불편한 도쿄에서, 나는 아이 둘을 무조건 유모차에 태우고 다녔다.  


그러다 몇 달 후, 남편과 나는 결국 집 앞 전동자전거 샵에 들어가서 앞뒤로 시트가 달린 최신형 전동자전거를 샀다. 너무 위험하다고 결사반대하던 남편도 결국 도쿄의 현실과 타협하게 된 것이다. 다른 나라였다면, 안전 상의 이유로 절대 위법이었을 이 자전거가 도쿄에서는 엄마의 필수품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의 정답도 이찌닌마에 “한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문화 안에 존재하는 여러 규칙과 규율을 어기지 않으면서, 남의 도움도 받지 않으면서, 내 임무를 혼자서 수행할 수 있는 최상의 이동수단이자 도구인 것이다. 


어느 유명업체의 전동 어시스트 마마챠리 광고. "나처럼 우아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나요?"


일본의 이런 문화는 우리가 "편하고자"하는 동물적 본능을 최대한 억누르기 때문에, 가장 동물적일 수밖에 없는 시기인 영유아기의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에게는 이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나의 임무를 혼자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꽤나 진보적인 미국 동부의 교육을 받은 나에게는 처음에 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한국식 표현으로 “사서 고생하는” 것처럼 보였다. 금전적인 여유와 크게 상관없이, 얼마나 희생하고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냐 하는 기준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사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그들이 아는 바람직한 엄마로서의 모습이고, 사회에서 부여하는 주부 또는 엄마로서의 위치, 바로 "이찌닌마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마마챠리를 직접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이를 보는 내 인식이 조금 달라졌다. 오히려 마마챠리가 없는 도쿄에서의 삶을 상상하기가 어려워졌다. 일단 행동반경이 넓어져서 동네를 더 구석구석 알게 되었고, 애매한 거리의 마트에도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바람을 가로지르며 아이들과 내가 마마챠리와 하나가 된 순간 느끼는 기분은 그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우리만의 추억이 되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나 유모차를 밀 때 보다도 항상 내가 아이와 함께임을 육체적으로 인지하게 되기 때문에, 마마챠리로 인하여 아이와 더 강한 유대감이 생긴 것 같다. 


또 하나의 신기한 점은, 실제로 사용하면서 위험하다고 느낀 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마마챠리를 타고 다니며 깨달은 것은 도쿄의 운전자들은 매우 천천히 교통법을 칼같이 지키며 운전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는 언제든 있을 수 있겠지만, 도쿄의 도로는 뒷골목 아주 구석진 공간까지도 모두가 규칙을 위반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찌닌마에"를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전거도로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 도쿄의 길에서 마마챠리라는 이동수단이 발달한 게 아닐까?


도쿄에서의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묶음 같은 존재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관심과 헌신은 (정신적인 관심과 헌신은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과 에너지의 관점에서만 보아도 정말 대단하다. 사회적인 위치를 막론하고 거의 모두가 도우미 없이 아이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관리한다. 심지어 워킹맘들 조차도. 

아이에 관한 모든 것은 "나의 역할, 나의 임무"이기 때문에. 


그렇게 도쿄의 엄마들은 육체의 고단함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스스로 감내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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