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술집이 아닙니다만
런던 각 동네는 residential(주거지역)과 commercial(상업지역)이 구분되어있는데, 우리네 동네들에 상가가 있듯이 런던에는 그 동네 상점들이 하나로 모여 나열된 길인 High Street (하이스트릿)이 있다. 그리고 모든 하이스트릿에는 펍이 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펍은 술집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왠지 코가 빨개지도록 얼큰하게 취한 백발의 백인 할아버지가 있을 것 같은 곳.
이 이미지는 틀린 것도 맞는 것도 아니다. 술을 파는 곳이기에 그런 할아버지가 충분히 있을 수도 있지만, 꼭 술만 마시러 가는 술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펍은 Public House를 줄인 말이다. 갓난아기를 태우고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엄마도, 맥주 한잔 시켜 놓고 노인정처럼 시간을 때우는 동네 할아버지도, 퇴근 후 동료와 저녁 식사하고 싶은 회사원도- 이들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런 런던의 펍에서 나는 여유를 배웠다.
런던은 오래된 도시이고 그 오래됨을 소중히 여기는 점 때문에 아기를 키우기엔 그리 편하지가 않았다. 길거리는 포장된 도로 사이사이 코블 스톤이 많아서 무겁고 튼튼한 유모차가 필요했고, 시설들이 낡은 곳이 많아 어린아이를 키우기에 확실히 육체적으로 힘이 들었다.
이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아이를 키워 본 세 도시 중 가장 마음이 편하고 좋았던 건 런던이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모두의 친절이 좋았다. 그 적당한 선의 배려는 그들이 핸디캡이 있는 사람들(아이 엄마, 노인, 장애인 등)을 대하는 게 익숙하다는 증거였다. 친절을 베풀지만 부담을 주지 않고, 모두가 서로의 상황을 편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성숙함이 고마웠다.
그런 런던 사람들의 여유를 대표하는 곳이 펍이다.
나른한 일요일 오전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선데이 로스트와 맥주 한잔을 하러 가던 곳도.
아이 학교(널서리 스쿨) 끝나고 애매한 세시쯤 둘이 자주 들리던 곳도.
시댁 식구들이 한국에서 오셨을 때 호텔에다 짐을 맞기자마자 밤늦게 식사를 하러 가신 곳도.
나의 상황이 어떠하든 언제든 나를 반겨줄 그곳. 두 팔 벌려 반겨주는 오버스러움도 없이, 그렇다고 "너 여기 왜 왔니?" 스러운 불편한 눈치도 없는 그런 곳이 바로 펍이었다.
영어로 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 라는 속담이 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 사람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런던인들은 모두가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저 속담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도와주고 - 그렇다고 생색내지 않는 너그러움. 그런 친절을 고맙게 받되 주눅 들지 않는 엄마의 당당함. 그리고 그런 상황의 연속을 직접 경험하고 목격하며 자란 아이. 그들이 그런 여유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적당한 상식선에서의 공공예절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너무나 다른 처지의 사람들로 하여금 조화를 이루게 만들었다.
우리는 부모로서 또 사회의 일원으로서 굉장히 짧게만 내다보는 경향이 있다. 지금 쳇바퀴 같은 매일매일이 살다 보면 긴 시간이 되고, 그 시간은 경험이 되어 우리 아이들을 성인으로 만든다. 한 개인과 또 다른 개인의 경험이 합해져 집단이 되고, 그렇게 우리는 돌고 도는 사이클을 만든다. 내 아이가 성인이 되어 소속된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는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아기 엄마였던 나에게도 펍은 존재만으로 이런 철학적인 깨달음을 주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다른 여러 도시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인주의적 사회로 변하면서 점차 '너의 영역' '나의 영역'을 나누는 데에 반해, 런던의 펍은 강요된 적이 없는데도 조화로울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진정한 쿨함이 부러웠다.
*"It takes a whole village": 원래는 아프리카 속담이지만 영어권에서 많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