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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May 25. 2020

나는 나, 너는 너

냉정과 오지랖 사이

얼마 전 한국 뉴스를 보다가 어느 경비원이 주민의 갑질로 인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글을 보았다. 너무도 끔찍하고 마음 아픈 일이다. 아직 조사 중인 사건일 테지만, 그 뉴스를 보고 의심의 여지없이 바로 믿게 되는 이유는 실제로 한국에 살며 여러 갑질의 행태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일이 일본에서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세상에 그런 일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일본에서 그런 일이 있다면 아마 아주 극히 드문 케이스일 것이다. 그건 일본 사람들 간에 계급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회사 간의 거래에서 오는 이해관계, 또는 조직 내의 상하관계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위계질서가 나뉘기 때문에 갑질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경비원과 주민 같은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그는 어디까지나 급여를 받고 우리의 거주공간을 지켜주는 일을 하는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따라서 같은 조직 내에 수직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들은 모두 어느 정도 수평하다고 느껴진다. 아니, 수평이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수직관계가 아닌 관계는 우위를 비교할 수 가 없다고 해야지 더 정확할 것 같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기본적인 성향 중에서 가장 큰 차이는 타인에 대한 관심 여부이다. 나는 여러 번 "이찌닌마에"에 대해 썼었는데, 그만큼 이 곳 사람들의 인생은 나에게 주어진 몫에만 집중하면 된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면 되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는 남이 선을 넘지 않는 이상 그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여겨진다. 나의 본분과 분수가 확실하지만, 그것이 결코 내가 남보다 위에 있거나 아래 있거나를 나누는 척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외로울 수도 있고, 때때론 정 떨어질 만큼 냉정할 수도 있다.


물론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이 곳에서는 본인의 재정상태와는 상관없이 빈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년 또는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남편의 회사 부장급 일본인 사원의 부인이 우리 동네 마트에서 소일거리로 계산대 아르바이트를 한 다는 것도. 동네 부잣집 사모님이 방과 후 통학 도우미를 한다는 것도. 그들이 도우미, 아파트 관리인, 마트 직원 등을 하는 것은 결코 그들을 낮게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빈 시간에 생산적이고 싶어 선택한 일이고, 그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그저 대가를 지불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이처럼 직업의 귀천이 적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이찌닌마에'의 냉정함이 사회 전반적으로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사회 전반적으로 냉정하기 때문에 직업의 귀천 또한 적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절대 표현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의 타테마에는 사회 전반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갑질 하는 사람의 행동에는 상대방을 나보다 아래에 두어, 우월감을 느끼고자 하는 열등감이 깔려있을 것이다. 일종의 오지랖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그이고, 나는 나인데 왜 그의 일과 기분에 간섭하여 본인의 인생마저 피곤하게 하는가.


당연히 오지랖에는 장점도 있다. 우리가 흔히 '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오지랖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냉정함 때문에 감정의 피곤함은 한국에 비해 확연히 적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 관계에서의 '선긋기'로 인해, 도쿄에서의 삶은 나를 해칠 사람도 없지만 나를 나서서 도와줄 사람도 없을 것 같은 외로움이 존재한다.


이런 한국인의 오지랖과 일본인의 냉정함, 그 사이 어딘가 되는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심함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바로 옆 나라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매일 든다.






타테마에에서 오는 외로움:

https://brunch.co.kr/@jenshimmer/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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