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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Sep 11. 2020

일본이라는 종교 2

사서 고생 정신

아이를 도쿄 최고의 상류층들만 가는 요치엔(유치원)에 보내는 친한 일본인 친구가 있다. 대체로 다른 문화권에서는 상류층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라 하면 비싼 학비, 철저한 케어, 부모와 학생의 편의, 뛰어난 교육 등을 생각할 것이다. 대체로 이런 유치원은 아이의 행복과 더불어 부모의 편함도 그 비용에 어느 정도 포함되어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부모는 주로 도우미를 고용하고는 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일본이 아닌 나라들은 그렇다. 하지만 처음에 일본에 와서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점은, 어렵게 입시까지 보고 들어간 친구 아이 유치원의 어마 무시한 (내 기준으로는 쓸데없이) 엄마를 괴롭히는 규율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스쿨버스 없지만 자가용으로 등교하는 것도 안됨 (멀리 세우고 내려서 걸어가도 안됨)

도우미를 쓰는 것도 안됨 (티를 내면 안 됨)

점심 제공 안됨 (집에서 도시락을 꼭 싸와야 함)

실내화 주머니 같은 아이의 소지품은 학교에서 지정한 규격대로 엄마가 손수 만들어야 함

교복을 입은 채로 외식을 해서는 안됨

교복을 입은 채로 학교 이외의 단체 활동을 해서는 안됨

교문 앞을 포함한 유치원 주위에서 전화통화 안됨

부모가 데리러 올 때 검정 또는 네이비 입는 것을 강력히 권장함 (알아서 지켜야 함)

바자회, 운동회 등의 학교 행사는 부모(주로 엄마)가 가서 도와줘야 함 (더 어린아이가 또 있다면 걔는 들쳐 업고서라도 가서 해야 함)


이것 외에도 세세한 교칙 또는 암묵의 룰이 많기 때문에 친구는 항상 시간에 쫓기고 다른 데는 신경을 쓸 수 있는 여유가 별로 없다. 지키지 않으면 가문의 수치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여간 그에 가까운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굳이 저렇게 하면서까지 그 유치원에 보내야 하나 싶지만, 그 유독 힘든 유치원에 보내는 것조차 일종의 status symbol(신분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워킹맘은 엄두도 못 낼 규칙들이다. 이 유치원 정도는 아니더라도 동네에 일본 사립 유치원 중에 유명하거나 상류층이 유독 많이 다닌다더라 하면 대부분 엄격한 규칙들이 있다. 그런 유치원들은 대체로 아이들이 기관에서 보내는 시간도 짧으며 (수요일은  시간, 나머지 요일들은 5시간 내외) 항상 끝나는 시간 무렵에 앞에 무슨 장례식장 마냥 어둑어둑한 남색 옷, 남색 구두를 입고 풀 메이크업한 채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엄마들로 북적인다. 그러한 고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아이를 꼭 그 유치원에 보내고 싶나 보다.


사실 아이가 힘든 게 뭐가 있겠나... 유치원 나이의 아이들은 엄마가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세상이 전부인 나이이다. 따라서 아이는 차 타면 20분 정도 거리인데, 출퇴근 시간 지옥철을 타고 4-50분 걸려 등교를 하는 것도, 학교 끝나고 밖에서 사 먹고 싶지만 꼭 집에 가서 옷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가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과가 되면 몸에 익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규칙들은 아이의 보호자인 엄마의 일상을 마비시킨다. 그 와중에 항상 단정한 네이비 옷과, 튀지 않는 액세서리, 정돈된 모습마저 지켜야 한다.


혹자는 내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왜 그렇게 살아야 해? 왜 사서 고생해?' 할 것이다. 나머지 비 상류층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전반적으로 사회에 깔려있는 일본 엄마들의 이런 사서 고생 정서 때문에 육아 관련 모든 서비스업(도우미, 통학버스, 방과 후 돌봄 서비스 등)은 평균 비용이 엄청 비싸다. 궁극적으로 수요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모든 일본 요치엔생의 귀여운 모습 뒤에는 그 엄마의 무지막지한 희생이 있다. 오른쪽 엄마는 아기띠를 하고 있다. 자신의 임무이기 때문에.  (사진출처: Pinteres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Know Your Enemy, Japan (너의 적을 알라, 일본)이라는 신기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에는 대놓고 프로파간다물이긴 했지만 그래도 1940년대에 제작된 게 믿기지 않을 만큼의 높은 퀄리티로 만들어졌다. 진주만 습격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나쁜 상황에서 미군을 선동하기 위해 굉장히 나쁘게 묘사한 영화이지만, 역사적인 관점으로나 문화적인 관점으로나 꽤나 정확한 면들도 있기 때문에 일본에 사는 나로서는 재미있게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일본과 일본인을 하나의 이단 종교처럼 묘사를 한다. 마치 현시대의 우리가 중동의 극단주의자인 ISIS를 생각하듯 비슷한 관점으로 이들을 본다.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등, 단점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부분은 일본의 서민과 대중을 표현한 다음 부분이었다:


Discomfort is supposed to be a divine virtue, and that’s why the people of Japan all work as long as they can, and as soon as they can, and as hard as they can, for they too consider themselves as soldiers with a divine mission.
The Jap peasant works harder, eats less, and pays more taxes than any other peasant on earth. But he seldom complains, for he is carrying out the divine will of the emperor.

불편한 생활은 신성한 미덕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인은 그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최대한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한다. 자신을 신성한 사명을 지닌 군인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일본인 농부는 지구 상의 그 어떤 농부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적게 먹고, 세금은 가장 많이 낸다. 하지만 황제의 신성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평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던 이유는, 내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기 때문이다. 왜 일본인들은 아주 불편한 것도 잘 참을까? 왜 일본인들은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21세기에도 힘든 옛날 방식을 고수할까? 왜 일본 엄마들은 희생정신이 유독 강할까? 왜 일본 엄마들은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사서 고생을 할까?  

내가 이 곳에서 지난 3년 동안 느낀, 같은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사서 고생 정신에 대한 질문들에 해답을 얻은 것 같았다. 2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천황 시스템 아래 정복이나 침략을 당하지 않았으니, 아마도 그런 정신세계나 가치관이 어느 정도 이어지지 않았을까? 규칙을 따르지 않았거나, 조금 편하게 살려고 할 경우, 뭔가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함과 수치심이 이들에게 있는 것 같다.


이 나라에 살면서 비합리적이고 이해가지 않는 것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외부인인 나는 짜증나고 너무도 답답한데, 이런 모든 것들이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 괜찮다는 것은 이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 종교적인 속성을 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을 하나의 종교라고 생각해야,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편하다. "도대체가 왜? 왜?" 하기보다는 "아, 당신들은 그렇군요." "아, 여기는 이렇군요." 뭐... 이런 식으로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엄마들의 사서 고생 1:

https://brunch.co.kr/@jenshimmer/51


일본 엄마들의 사서 고생 2:

https://brunch.co.kr/@jenshimme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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