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May 19. 2022

어느 날 자전거가 타고 싶어졌다

퇴근 후 자전거 ㅣ written by 셀린

"자전거 탈 줄 알아?" 


자전거 타 본 적도 있고, 탈 줄 아는 것도 맞긴 한데 나는 항상 누가 물어보면 우물쭈물

'아 탈 줄 알긴 한데...' 라고 대답했었다.

평생을 걸쳐 자전거를 타 본 횟수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자전거를 탄 시간 역시 채 다섯 시간이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탄 게 언제더라. 기억도 안 나는데 그 날은 그냥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싶어졌다. 해가 질 무렵이었고 며칠 전부터 추위가 가셔 두꺼운 옷을 이제 그만 옷장에 넣어야지 하는 그런 계절의 초입이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면서 앞으로 씽씽 나아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따릉이 한 번 타볼까?" 


집 앞에 우연히도 따릉이 정거장이 있었다. 여러 대의 자전거가 가지런히 열을 맞춰 기다리고 있었다. 따릉이 앱으로 1시간 일일 회원권, 천 원을 결제했다. 따릉. 잠금이 풀리는 소리. 핸들을 두 손으로 잡고 페달에 조심스레 발을 올렸다. 발을 바퀴 모양대로 동그랗게 감았다 펴니 바퀴가 굴러갔다. 자전거 탈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무색하게도. 자전거가 내는 속도에 귓가로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어디까지 갈 수 있어?


처음엔 왕복 5Km를 채 못 갔다. 내 체력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 곳곳에 녹색이 움트기 시작했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런 작은 것들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서 종종 자전거를 멈춰 세우긴 했지만, 어차피 다리가 아파서, 숨이 차서 한 번에 그렇게 멀리 갈 수가 없었다. 내가 달리는 것도 아닌데 숨이 차다니.


그 뿐일까.


걸어서 가던 산책길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처음 가는 그 길의 경계를 넘을 수가 없었다. 누가 막아 놓은 것도 아닌데 당연히 나는 딱 거기까지만 갔다. 거기까지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가 아는 길이니까. 가 본 길이니까. 


자전거의 안장은 낮출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낮췄다. 언제든지 땅에 쉽게 발이 닿지 않으면 불안했으니까.


천천히 가도 되지만 속도를 내야 하는 지점도 있으니까.


지금은 왕복 20Km를 갈 수 있다. 1시간 30분 정도를 쉬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처음 가본 길도 갔다. 페달을 빠르게 밟기도 하고 힘이 들면 걷는 속도와 비슷하게 달리기도 한다. 그러면 누군가를 지나쳐 앞서 가기도 하고, 누군가가 나를 앞서 지나쳐 가기도 한다. 안장은 까치발을 하고도 자전거를 조금 기울여야 발끝이 닿을 정도로 높이고 탄다. 처음 안장을 높인 날, 고작 그 몇 센치 만큼 높아진 시야가 전혀 다른 풍경으로 느껴졌다.


자전거가 문득 타고 싶었던 날, 몇 년 간의 직장 생활이 한 사이클을 돌았다는 생각이 들 때 쯤이었다. 한 사이클을 돌면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긴 한데 나는 아무래도 속도를 내서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야 할 그 때 두려움에 속도를 줄였고, 다시 똑같은 사이클에 올라탄 것만 같았다.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았다. 막연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굳이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야 할까, 익숙한 길에는 이미 익숙한 것들이 많은데. 여기도 나쁘진 않은데.


하지만 그 날들에는 좋은 것은 눈에 들어 오질 않고 나쁜 것만 잔뜩이었다. 익숙한 길을 능숙하게 간다고 해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퇴근 후 자전거를 타고 나서야 알았다. 그런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평소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 천천히 가도 되고 멈춰도 되지만 속도를 내야 한다고 느끼는 지점이 온다면 페달을 빠르게 밟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는 그 입구에 다시 섰다.




자전거를 타고 나서
한강 공원에서 만난 풍경들




#1. 처음 따릉이를 탄 날, 자전거를 타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거였나.






#2. 퇴근 후 자전거를 타러 나오면 마주치게 되던 노을





#3. 따릉이는 처음엔 달리는 시간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세워져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4. 어김없이 봄. 하지만 따릉이를 타고 난 후 처음인 봄.






#5. 매일 같아도 매일 다른 따릉이.



- 어느 날 자전거가 타고 싶어졌다 written by 셀린



* 해당 글은 셀린이 작성했습니다. 브런치북으로 묶기 위하여 청민의 계정으로 업로드합니다.



퇴근 후 자전거

직장인 셀린과 루비의 사이드 프로젝트. 두 직장인이 퇴근 후 자전거를 타며 발견한 장면을 번갈아 가며 기록합니다. 늦봄부터 한여름까지 이메일로 총 12회 연재합니다.(6.10 - 8.26)


퇴근 후 자전거 발행인

따릉이로 한강을 달리는 셀린 @bluebyj

브롬톤 라이더 루비(청민 부캐) @w.chungmin




이전 02화 그날부터 퇴근 후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