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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1 나의 첫 보금자리는 고시텔

창문이 없던 한 칸만큼의 여유조차도 허락되지 않던 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사건 등은 실제가 아닌 허구임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방송을 시작하고 방을 얻었다. 195만원에 매달 21만원. 방송국에서 두 정거장 거리의 고시텔이었다. 칼칼한 매연이라도 창문을 열어 맡을 수 있는 창문형은 260만원이라 엄두를 못 냈고 그나마 대구에서 가지고 올라온 돈을 탈탈 털어 195만원어치의 여유를 얻었다. 


일하는 날들의 대부분은 방송국 작가실에서 선잠을 잤지만, 일주일에 단 하루 모두 잊고 쉴 수 있었다. 생방이 끝나고 다음 주 아이템을 컨펌받아 섭외를 마친 후에는 하루 반나절 정도 시간이 주어졌다. 그럼 어김없이 고시텔을 찾았다. 좋아하는 닭발에 소맥을 말아 먹고 미뤄뒀던 잠을 청했다. 잠시라도 행복했다. 


195만원의 행복에 금이 생긴 건 어느 날 저녁이었다. 법인카드를 놓고 와 가지러 간 저녁시간, 고시텔 근처에는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줄지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입구에 가까이 갔을 때 흰 천을 덮은 들것이 119 구급차에 실려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이야기 중에 몇 가지 단어들이 다가와 꽃혔다.


고시텔의 2층은 남자, 3층은 여자, 4층은 공용 공간이었는데 2층의 남자가 목을 매 자살했다는 것이다. 밤낮없이 찾아오는 여럿의 채권자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작가실로 가 잠을 청했다. 처음으로 혼자인 게 무서웠다. 


고시텔에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역시 195만원의 행복에 금을 가게 한 에피소드다. 층마다 한 대밖에 없는 세탁기는 언제나 다음 타자가 대기 중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코인세탁실이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라 밀린 빨래를 하기 위해서는 잠을 줄여야했다. 조금만 늦게 나가면 또 다른 사람이 빨래를 넣어놨고, 조금만 늦게 나가면 돌리고 있던 내 빨래는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있었다. 한마디로 빨래사수대작전이었는데. 어느 날은 선물 받은 뷔스티에가 없어졌다. 선물 받은 옷이라고 정중하게 돌려 달라 게시판에 대자보도 붙였지만 싸늘하게 돌려받지 못했다. 고시텔에 살면서 빨래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90%를 차지했던 것 같다. 도저히 빨래할 틈을 낼 수가 없어 마트에서 10개들이 속옷을 산적도 있다.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닌 분홍색 레이스 속옷을 입고 다시 방송국에 가던 날, 이게 과연 상식적인 일일까 인간의 존엄성은 혹시 속옷에서 오는 건 아닐까 철학적인 문답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기도 한 게 인간 삶의 3대 필수요건이 ‘의식주’니까. 거주는 무섭고 옷은 없으니 필수요건 과반수가 평균 미달이었다. 그럼 먹는 건 어땠냐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먹을 복은 타고난 건지 먹는 걸로 서러웠던 적은 없었다. 삼시세끼 구내식당을 이용했고 이리저리 업무미팅을 하다보면 하루에 커피 세네잔은 기본이었다. 가끔 있던 회식자리도 막내 특전으로 소고기나 회를 먹고 아이템 답사차원으로 맛집들을 찾아가곤 했다. ‘의식주’의 ‘식’이 풍족해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시간들이었을지도. 


고시원 앞 앰뷸런스를 보고 처음으로 혼자인게 무서워 다시 방송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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