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다
M은 인큐베이터에서 태어난 합성인간이다. 그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본 것은 시빨간 불빛과 기계팔들. 사랑하기엔 삭막한 것들.
“저는 명령을 이행합니다”
고작 열살의 작은 몸으로 다부지게 말한다. 목젖 위에 새겨진 세계정부 마크는 의뢰를 받는 요원을 상징한다. 그럴만한 우월한 유전요소를 합성됐다.
“그래, 네 임무는 입력된대로...”
“2018년으로 시간이동합니다. 각국의 지휘자와 컨택합니다. 프로그램을 심습니다. 정확히 18일 안에 현시간대로 복귀합니다”
“잘 숙지하고 있군. M388.”
이 시대는 더 이상 인간이 진화하지 않는다. 기술 연구도 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진보가 인간의 진화다. 기계인간이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 중간체인 합성인간이 35퍼센트, 진짜 인간은 고작 15퍼센트에 불과했다. 시제품 M의 시리얼넘버 388에게 명령한 이 자는 그 15퍼센트에 드는 몇 안되는 인간 중 한명이다.
제임스라고 불린 시간공학 과학자인 그는 인류의 존망을 달린 역사적인 시도를 앞두고 있었다. 비밀리에 받은 세계정부 저출산 대책위원회의 명령이었다. 더 이상 인류가 태어나지 않고 합성인간으로서 존재하게 된다면 그 이상의 역사는 없는 셈이다. 인공지능은 시간여행을 답으로 내놓았다. 제임스는 타임 다이얼을 2018년 8월로 돌린다.
“그럼 무운을 빈다, M.”
버튼을 누르자, M이 누워있던 원통형 관에 물이 차오른다. 그의 몸을 모두 채우자 눈을 감는다. 의식의 이동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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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M이 이동한 곳은 인천 남동구의 한 병원이었다. 그는 작은 보자기에 싸여서 아기의 몸을 하고서. 순간, M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에 휩싸였다. 분명 성인의 몸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을 터. 이 몸으로는 18일이 아니라 18년은 기다려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M의 부모는 어렸다.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아빠로 보이는 자가 M을 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M은 얼굴을 찡그렸다.
“축복아, 많이 기다렸어.”
“여보, 우리 축복이 너무 잘생겼어, 그치”
그들의 집은 대학가 원룸.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고 동거를 하는 커플이었다. 남자는 아직 학생이었다. 군대에 다녀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축복이 키워낼거야. 내가 돈 벌게”
M은 그런 남자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성적인 결정이 아니였다. 남자는 대학을 그만 두었다. 공장을 다니고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여자는 서툴렀다. M이 울어제끼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라고 중얼거리면서. 뭔가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M을 키우기엔 역부족이었다.
M에 새겨진 유전정보대로 그는 영특하게 자라났다. 그가 세살이 되기 전에 글을 뗐고,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놀라운 견해를 내보였다. M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부모의 표정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여보, 우리 아이 영재인가봐요”
“어떻게 우리 사이에서 이렇게 똑똑한 얘가 나왔지”
“왜 오빠랑 내가 어때서”
“영재는 잘 사는 집 얘들 이야기인 줄만 알았지”
그들은 M에게 영재 교육을 해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M이 9살이 되던 해, 아빠라고 불리던 자는
공장에서 야간 업무 중 손가락이 잘려 장애인이 되었다. 공장에서 해고됐고 더이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 후에는 엄마라고 불리던 자가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2년제 대학 중퇴 이력서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사이 집에는 공과금 연체 안내문이 쌓였다.
아빠라 불리는 자는 술을 먹기 시작했다. M의 눈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이 보였다. 문을 두드리는 집 주인에는 고개를 조아렸다. “다음달에는 꼭 내겠습니다. 낼 수 있어요” 다음달에는 방을 빼야 한다는 집 주인의 표정이 무섭다. 그 집주인이란 자는 서울에만 아파트가 3채가 있다고 들었다.
엄마라 불리던 자는 사채를 썼다. 여성 우대라고 광고하는 대부업체였다. M에게 먹일 반찬을 사려고 했다. 그녀의 신용등급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어느새 집안 곳곳이는 빨간 딱지가 붙었다.
아빠라 불리는 자는 술만 먹으면 개가 되었다. M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M이 열한살 되던 해, 아빠라 불리는 자가 술이 잔뜩 취한 채 족발을 사왔다. 엄마와 M은 그가 또 손찌검을 할 것이 염려되어 구석이 숨어있었던 터다.
“여보... 족발 먹자. 자기 족발 좋아하잖아. 좋아하는데 못 먹은지 오래 됐잖아.. 당신 너무 고생했잖아...”
아빠라 불리는 자의 얼굴이 이상하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채 눈물 콧물이. 엄마는 그런 아빠의 얼굴을 보지 않고, M만 부둥켜 안고 있다.
그날은 M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무심히 바라보던 문득 M은 데자뷰을 느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상황은 의도된 것이다. 이 모든 게 그를 만들고 현시대로 보낸 제임스의 계산 오류이고, 한편 그것은 계산된 것이란 것을.
“엄마”
M은 나직히 말했다. 엄마라 불리는 자가 그를 바라본다.
“아빠”
술기운 때문인지 정신 못 차리는 아빠가 고개를 들아 M을 바라봤다.
“나 이제 알게 됐어요. 지금 이 세상이 이상한 이유에 대해 말이에요. 미래에 있을 때는 현재의 문제를 푸는 것이 마냥 수학 문제 같았는데. 문제를 푸는 걸 방해하는 게 있었어요.”
M이 자신의 손을 들어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나간다.
“그 방해물이 바로 나에요.”
“나는 프로그램 하나를 가지고 왔어요. 저출산을 해결하는 인지에 대한 프로그램이에요. 더 아이를 사랑하고 더 가지고 싶게 하는 유도제. 분명 그럴텐데 이 시대로 넘어오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나는 아이의 몸으로 태어났고 능력을 잃었어요. 이 시대에 주어진 것만으로 임무를 달성해야 했어요. 때를 기다렸는데... 오늘 깨닫게 됐어요. 임무를 달성할 필요가 없다는 걸”
“제임스가 이 시대에 보낸 건 저 뿐만 아니에요. 18년 생 아니 지금까지 태어난 모든 아이가 아마 제임그가 보낸 의식일거에요.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합상인간입니다.”
“제임스가 연구를 시작한 순간, 인류는 인류를 잃었어요. 더 이상 순수한 인간의 아이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미래의 제임스가 죽어도 인공지능이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계속 오류 프로그램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죠.”
“맞아요. 이 시대는 오류 중 하나에요. 어떤 한 순간 몇번째 테스트에 인류의 출산 문제가 풀릴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은 아니라는 거에요. 우리는 오류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아빠와 엄마는 멍하니 M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정적이 집 안을 감쌌다. 아빠라 불리는 자는 족발이 든 검은 봉지 안에서 칼을 꺼냈다.
“오류의 시대.. 그래 그런 것 같더라”
엄마는 M을 감쌌다. M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엄망 손에 몸을 맡겼다. 아빠라는 자가 휘두르는 칼을 피해 M과 함께 11층에서 떨어졌다. 아빠는 그런 둘을 허리를 길게 내밀어 내려보다가 잘린 손가락이 버티지 못하고 휘청 한번 하더니 그대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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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88 랜딩 실패”
제임스는 컴퓨터에 뜬 오류 메시지를 심각하게 바라본다. 물통에 잠겨있는 합성인간체를 돌아본다.
“다음 테스트로 간다. 389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