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게 용기가 없었던 이유
어렸을 때 본 알라딘은 재밌는 우화 같은 것이었다. 이번에 디즈니에서 실사화한 알라딘을 다시 보게 됐는데 그 감정이 사뭇 달랐다. 그중에서도 알라딘에게 느끼는 감정은, 정말.
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 알라딘이 마법 양탄자를 타고 자스민에게 세계 방방곡곡을 보여주는 장면. 아직도 명곡으로 불리는 ‘a whole new world’를 시원하게 부르는 이 부분이 더없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전에는 그저 로맨틱한 장면이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알라딘의 상황 때문이다. 알라딘은 가진 게 하나도 없는 남자. 물론 도둑질 기술과 착한 심성, 매력적인 미소가 있지만 계급이 확실한 그 시절의 알라딘은 지금의 노숙자나 다름없는 상태다.
그런 그가 지니의 마법으로 자스민을 다시 만나게 된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일종의 체념을 하고 있던 그에게는 아마 엄청난 행운이었을 것이다. 자신 있게 재스민에게 접근하고 노래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눈부시고 아른아른 빛나며 찬란한 세상을 보여줄 수 있어요
말해주세요 공주여 당신의 마음이 말하는 대로 따라간 마지막 순간이 언제였나요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줄게요
불가사의한 곳으로 당신을 데려갈 거예요
자스민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알라딘은 원래 알라딘일까, 마법으로 바뀐 프린스 알리일까. 알라딘이 하는 말이라고 믿고 싶지만 하는 말들을 보면 원래 알라딘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나열한다. 결국, 이 노래는 가짜다.
알라딘은 후에 자스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자스민은 진짜 알라딘보다 가짜 프린스 알리를 좋아할 거라 정당화한다.
노래를 다시 한번 보자. 알라딘은 자스민에게 묻는다. ~해본 적 있니? 없다면 내가 할 수 있게 해 줄게. 내가 만들어줄게. 내가 가져다줄게. 계속 뭔가를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야 자신이 상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괜찮은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스민을 정말 좋아했고,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영화 뒤쪽에 자스민이 선택하듯 자스민에게 알라딘이 얼마나 부자이고 알마나 능력 있고 얼마나 멋진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지는 중요한 요건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알라딘보다 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없었다. 진짜 알라딘이 가진 무언가가 자스민에게는 더 중요한 포인트였을 것이다.
알라딘은 진짜 자신의 모습보다 훨씬 낮게 자신을 평가했다. 낮은 자존감. 그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필요하다. 그게 허세로 이어지고 알맹이는 어느새 사라진다. 문제는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은 높고, 허세는 부리는데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좋은 직장과 멋진 차, 얼마를 모았는지, 또래보다 얼마나 더 잘났는지 불안하게 경쟁하는 - 결국 영화 속 알라딘처럼 어느 정도 찌질함을 갖게 되는 우리 남자들의 이야기일 수도. 자신보다 잘난 여자 앞에서 못난 자신의 자존심을 굽힐 수 있을 것인지, 별 것 없는 자신의 별 것 있는 가치부터 찾고 자존감 높은 사람이 거듭날 수 있을지. 여자들은 이런 자존감 높은 남자를 무섭게 알아본다. 물론 남자의 허세도.
영화의 마지막, 알라딘은 자스민과 함께 결국 진짜 자신을 찾고 자신의 모습을 인정한다. 프린스 알리가 아니라 자스민 여왕의 남편으로 산다. 우리의 마지막은 어떨까. 최소한 서로 사랑하고 인정하고 그저 남자의 모습이 아닌 어떤 어른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