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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Sep 13. 2023

한 끗 차이로 복사본

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바울에게는 사회적이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그는 긴장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술을 깨물어 피가 날 때까지 물어뜯곤 했다. 클라이언트를 만난 자리에서 입술에서 피가 철철 나던 바울은 뱀파이어처럼 웃으며 “입술이 건조해서요”라고 변명했다. 그의 버릇을 유일하게 잡아준 사람은 유미였다.


“오빠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

바울이 유미가 건넨 립밤을 받아 입술에 바르자, 립밤에 피가 잔뜩 묻었다. 립밤 색이 입술 색이 됐다.

“미안해.”

“뭘 미안해. 같이 쓰는 거지.”

유미는 바울이 좋았다. 어수룩해서 빈틈이 무척이나 많은 게 더 좋았다. 립밤을 챙겨줄 수 있는 정도의 빈틈.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게 유미에게는, 그래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의미가 중요한 요즘이니까.


바울이 고속버스를 기다리는 길, 익숙하게 배웅 나온 유미에게 손 편지 하나를 건넸다.

“… 편지 쓴 거야?”

“응. 고마워서.”

“뭐야, 진짜. 가는 길에 읽어봐야지. “


바울에게 유미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손에 잡히지 않아도 눈에 있고 손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언제부턴가 그의 삶에 무척이나 깊게 파고들어서 바울이 인지하기도 전의 그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원룸의 작은 밥솥을 열어 밥을 챙기고 오래된 옷을 입는 일상과 햇살이 비치고 그 가운데 높다란 건물들. 반복되는 일들과 입술을 깨물게 하는 스트레스.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눕는 순간과 샤워하는 마무리의 개운함. 침대에 누워서 또 입술을 물어뜯는 순간까지 그 모든 시공간에 유미가 있었다. 유미는 바울에게 의미가 되었다. 퇴근길 떨어지는 낙엽을 보다 바울은 무심코 깨달았고, 유미에게 편지를 건넸다.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유미야. 고마워.

나는 너에게 평생 사랑을 갚으며 살 거야.

내가 그럴 수 있도록 내 옆에 있어줄래.

나의 의미가 되어줄래.

결혼하자.


유미가 집에 가는 길, 전철 승객들은 유미가 엉엉 우는 소리에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모두 한 번씩 유미 쪽으로 돌아봤다. 편지를 손에 든 유미는, 울고 있었지만 웃고 있었다. 프로포즈를 받을 상상의 나래를 수없이도 펼쳤던 유미이지만, 그 어떤 상상보다 그게 바울다워서 좋았다.


결혼을 약속하고, 식장을 예약했다. 그다음은 놀랄 만큼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문제는 집이었다. 바울의 직장과 집이 너무 멀었다.

“매일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그러게. 맞는 말이야. 근데 방안이 없네…“

바울은 또 입술을 깨문다.

“오빠! 입술.“

바울은 그제야 ”아!“ 하더니, 입술의 이빨 구속을 풀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다가 바울이 “이젠 좀 더 같이 있을 수 있어.”라고 이야기했다. 바보처럼 웃는 바울을 보면서 유미는 그 의미를 잘 몰랐지만 듣기에는 좋아 보여서 같이 웃어 보였다.


“오빠, 출근 시간 늦었어!“

창밖에서 심상치 않은 새소리와 햇빛이 들어왔다. 늦었다. 30분은 먼저 일어나 준비했어야 했다. 유미는 급하게 바울을 흔들어 깨웠다. 그런데 막상 바울은 느긋했다.

“괜찮다니까. 좀 늦게 출발해도 돼.”

유미가 걱정 어린 표정을 짓고 있자, 바울은 부스스하게 일어나 저벅저벅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오늘부터 버스 말고 다른 거 탈거거든”

유미는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바울은 유미의 마음도 모른 채 오렌지 주스 한 통을 꺼내 마신다.


그날 이후로 바울은 일 때문에 미리 나가지 않았다. 왕복 2시간 반의 통근 지옥을, 유미는 바울이 도통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퇴근하면 5분 10분 정도에 바로 집에 도착하니까 그걸로 좋았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건 - 상대를 눈에 오래 담고 있을 수 있다는 것. 유미는 바울이 어떤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몇 분이라도 더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러고보니 오빠 이제 입술 잘 안 뜯네? “

사소한 것이었다. 손에 밴 습관이란 게 그런 거지. 그런 습관이었는데 유미에게는 이상한 기시감 같은 것이 들었다. 분명 이 타이밍에 입술을 뜯어야 하는데. 입술에 피가 나야 하는데. 피가 나야 유미가 피도 닦고 립밤도 주는데.


“유미가 계속 이야기해 줬잖아. 이제 고칠 때도 됐지. 얘도 아니고.“

“그래. 고칠 때도 됐긴 한데… 고쳐지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어?“

“계기는. 그냥 안 하게 됐어. 흠, 처음부터 안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냥?“

“응. 그냥.“


싱겁게 대화가 끝났다. 찜찜한 기운이 들었다. 유미는, 차츰 바울의 다른 면들을 발견했다. 가령 치약을 위에서부터 짜던 사람이 아래부터 꾹꾹 눌러 짠다거나, 아침에 푸시업을 잊지 않고 하기도 하고, 자신감이 없어지면 눈을 못 마주치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좋은 변화였다. 그런데 바울을 5년 넘게 알아온 유미에게는 최근 3개월이, 그녀에게 너무 큰 변화였다. 낯설었다. 아침밥을 먹다가 문득 자신의 앞에서 국물을 뜨고 있는 이 남자가 내가 아는 그 남자가 아닌 것 같다는 불안이 떠올랐다. 이 불안이 왜 일어났는지 본인도 알지 못했다. 아니, 유미만 알 수 있는 불안이었다.


아직 나를 의미로 생각할까?


유미가 바울의 출근길을 따라나선 건 즉흥적이었다. 그의 하루를 봐야지 말 못 할 답답함이 해소될 것 같았다. “다녀올게”라며 문을 나선 바울의 뒤를 쫓아서, 그가 유미가 아는 그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가 알던 대로 어수룩하지만 착한 남자. 하루 중에 알지 못했던 바울의 시간을 찾아들어가려 했다.


바울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건물로 들어갔는데 “이런 건물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주변과 괴리가 있는 곳이었다. 버스도, 택시도, 기차도 안 타고 바울이 간 곳은 이 건물 안. 바울이 아무렇지도 않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본 유미는 놀랍도록 담담했다. 서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거구나, 이 건물에 새로운 일이 있구나 싶어서. 그 이후에는 왜 자신에게 그런 중요한 일을 알리지 않았을까 하는 일종의 미움도 올라왔다. 여러 감정이 섞이고 섞이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출입문까지 쫒았다. 건물 앞에 광고 전단 하나가 눈에 띄게 붙어있었다.


유체이동 기술 솔루션.

단번에 원하는 곳으로 이동.

구독료 월 99,000원.


유체이동.

듣도 보도 못한 사이비 기술을 누가 10만 원이나 주면서 쓰겠어,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바울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울이라면… 주소가 적힌 걸 보니 이 건물의 25층에 사무실이 있었다. 가봐야겠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안 됐다. 유미는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어가 25층을 눌렀다.


25층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누가 쓸까 했는데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 밖으로 나와있는 줄에, 유미는 바짝 서서 줄이 줄어들길 기다렸다. 사무실 안에는 여러 방이 있었고 버스표의 좌석 번호처럼 번호를 받는 대로 그 번호가 적힌 방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줄은 빠른 시간에 빠졌다. 그 시간에 유미는 바울이 여기 어딘가 있겠다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없었다. 벌써 저 방에 들어간 걸까? 유미는 바울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 오셨나요?”

카운터에 다다르자, 여자 직원이 한껏 업된 톤으로 말을 건다.

“네, 처음이에요.“

“처음이시면 관련 서류를 작성하셔야 하는데 한 5분 정도 걸리실거에요.“

“네, 주세요.”

여자 직원은 과하게 친절하게 웃으며 종이와 펜을 건넸다. 유미는 그걸 받아 빠르게 읽어봤다. 절로 눈썹이 찌푸려졌다. 엄청나게 작은 글씨로 빽빽이 조항들이 차있었다. 집중해서 읽으면 글자 하나하나를 읽을 수 있었지만 초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조항이 왜 이렇게 많아요?“

읽다가 지친 유미가 직원에게 물었다.

”저희가 고객 분들께 안내드려야 하는 부분들이 좀 많아서요. 아무래도 신기술이다 보니, 고객님 동의를 통해 진행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들을 고객들이 다 인지하고 있는 거 맞아요?“

유미는 블랙컨슈머라도 된냥 쏘아붙였다.

“고객님 불편하거나 궁금하신 사항이라도 있으신지…”

“기술의 정체가 뭐냐고요.“

“…”

유미의 말을 들은 친절한 직원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 갑자기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바로 와주세요”라는 말을 하고 끊었다. 1분 정도 지나자 검은 정장을 한 남자가 유미에게 나타났다.

“지금부터 제가 응대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카운터를 넘어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는 5번 방문을 열고 유미를 안내했다. 유미는 낯선 곳에 떨어진 고양이처럼 한층 경계를 하면서 방에 들어갔다.


방안은 뭐랄까 심플했다. 책상과 의자, 긴 테이블 같은 게 있었다. 책상 위에는 뭔가 입력할 수 있는 다이얼 몇 개가 있었고, 긴 테이블은 사람이 누워도 될 만큼 길었다. 쿠션도 좀 있었고.


“저희 서비스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으신 것 같아서, 전체적으로 서비스 소개를 드릴까 합니다.“

“좋아요. 유체이동이라는 게 뭔가요?”

“그전에… 양자역학을 좀 아시나요?”

“대화를 할 정도는요.”

“그럼 이해가 빠르시겠군요. 저희 서비스는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게 이론적인 내용이죠. 일종의 확률이에요. 그런데 저희는 이 위치 정보를 특정하는 데 성공했어요.“

“어떤 특정 위치의 확률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는 말이죠?”

“정확합니다.“

검은 정장의 남자는 오래간만에 똘똘한 고객을 만났군, 이라고 생각하는 듯 조금은 들뜬 채 말을 이어갔다.

“원하는 위치 확률을 높이면 원하는 위치에 입자가 있게 되는 거예요. 이건 입자 단위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죠. 사람은 결국 입자로 이뤄져 있여요. 그 수많은 입자를 하나하나 위치 확정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신 저희는 생각을 바꿨어요. 사람을 입자처럼 대하는겁니다.“

“그 말은…”

“사람의 위치도 저희가 세팅한 확률에 맞춰 확정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게 저희 유체이동의 원리에요.”

“그러니까 순간 이동… 같은 건가요?”

“현상적으로 보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전국에 터미널이 있는 것처럼 저희 지부도 각 지역마다 사무실이 있고, 해당 사무실로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이동이 가능해요. 신체 정보가 이미 스캔이 되어있기만 하면, 원하는 곳에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것이죠. “

이거였다. 유미는 바울이 이제껏 했던 말들이 이 기술을 가지고 한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유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단한 기술이긴 하네요. 그런데…”

“그런데?”

“아까 직원도 그러던데 신기술이라고요. 그러면 아직 검증해야 하는 부작용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검은 정장의 남자는 이런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이 여유롭게 답한다.

“모든 기술은 리스크가 있습니다. 심지어 자동차도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의 리스크가 있으니까요. 저희 기술도 비슷합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는 수준이에요.“

“그렇다기엔…”

유미는 말끝을 흐리다, 말을 이어간다.

“사람을 이동시키면 이쪽에 있는 사람과 저쪽의 있는 사람이 100% 같은 사람인건 확실한가요?”


이 질문을 하고 싶었다. 바울을 떠올리며 유미는 또 입술을 깨물었다. 검은 정장의 남자는 순간 당황한 듯 보였다. 하하하, 라는 작위적인 웃음을 짓다가 대답을 이어갔다.

“수학적으로 자연현상에서 완전히 100%라는 건 없습니다. 시스템적으로는 거의 100%에 수렴한다는

표현이…“

“0.001%라도 이동하면서 본인 것이 유실되는 게 있다는 거죠? 사라지거나 바뀌거나 달라지거나 하면서요.“

검은 정장의 남자는 이 말을 듣더니, 심각하게 톤을 바꾸어 말한다.

“고객님, 저희는 모두 손님들의 동의를 통해 진행되는 서비스임을 알아주시고, 염려해 주신 부분을 십분 이해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과학적으로 충분히 무시해도 될 만큼의 오차기 때문에…“

“그 오차 때문에 제 남편이 다른 사람이 되고 있다고요!”

유미가 소리쳤다.


5번 방은 그 소리에 쩌렁쩌렁 울리고 난 뒤, 너무나 큰 적막에 휩싸였다. 검은 정장의 남자는 당황한 채 적당히 할 말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유미는 말을 이어갔다.

“남편이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변하고 있어요. 아주 사소한 변화인데. 나만 알 수 있는 거 말이에요. 그거 알아요?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진짜 작은 것까지 알고, 좋아하기도 하잖아요. 제 남편은 저한테 그런 존재라고요. 그 작고 소소한 남편만의 것들이, 제가 좋아했던 그런 것들이 이제 없어요. 사라져서 이제 없어요. 매일 낯설어요. 대신 누가 봐도 괜찮은 것들로 채워졌어요. 저는 누가 봐도 좋아할 만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저는 발견했다고요. 남편을. 제 눈에, 제 마음에, 제 사랑에만 맞는 사람을요. 그런데… 그런데…“

유미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검은 정장의 남자는 그런 그녀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전문가의 자세로 고쳐 앉았다.


“아까 직원이 드린 조항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모든 기술이 그렇듯 저희 기술도 오차가 존재합니다. 애초에 상용화를 결정할 때 그 오차를 모르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상용화를 할 수 있었던 건 그 오차가 오히려 긍정적인 오차였기 때문입니다. 맞아요. 저희 기술은 양자역학을 이용한 이동에 대한 기술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의 재구성에 대한 기술이기도 합니다. 그 재구성 과정에서 기존의 결함들이 자동으로 채워지기도 해요. 우리가 오차라고 부르는 것들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죠. 저희는 이걸 카피 앤 큐어라고 부르고 있어요. 아마 고객님 남편 분의 변화도 그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고객님 남편 분이 결정한 것이고… 지금 그 변화에 남편 분 스스로도 만족해하고 계시지 않나요?“

검은 정장의 남자 말을 유미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바울은 큰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유미와 더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결정한 일인터. 유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하다 결심했다는 듯 물었다.

“되돌릴 수는 없는 거죠?”

“이동 전의 상태로요? 그건 어렵습니다. 확률적으로요“

“그럼, 제가 지금 이렇게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건 저의 결함인가요? 제 존재의 오차인가요?”

“음… 그것도 확률적으로 맞다 아니다 확신하기 힘듭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고객님이 어떻게 관측되느냐에 또 다르니까요.“

“그래요. 그럼… 저도 이거 타겠습니다. 탈게요.”

“네?”

“오차가 수정된다면서요. 남편도 수십 번 다니면서 오차가 수정된 거고. 그럼 저도 그렇게 할래요. 남편이랑 같이, 같은 상태가 되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검은 정장의 남자는, 고객 민원처리 직원의 눈빛에서 영업사원 눈빛으로 변했다. 잠시 기다리고 하더니, 아까 다 적지 못한 신청서를 다시 가져왔다. 여직원은 해주지 않은 동의 항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유미는 하나둘 체크를 했다.

“사용법은 간단합니다. 십부터 거꾸로 세면 되고요. 눈을 뜨시면 설정한 곳으로 이동해 계실 겁니다. 방에는 혼자 계시게 되고, 실내는 좀 어둡게 세팅되어 있으니 유의하시고요.“

짧은 말을 남긴 채 검은 정장의 남자는 5번 문을 닫고 나갔다. 방 안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다. 이따금 윙윙 하는 기계음만 들릴 뿐이다. 유미는 눈을 감고 10부터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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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의 행선지는 바울의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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