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빤 왜 내 맘을 몰라?

남자친구와 잘 싸우는 법

by ASTR

필자는 아침마다 서울로 통근을 한다. 고속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는 것이 소박한 행복. 어제는 뒷자석의 누군가가 전화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마치 독서실 같은 버스 안에서 평범한 목소리는 누가 귀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마냥 안들을래야 듣지 않을 수 없는 소리. 잠은 이미 잘 수가 없고, 그 내용은 내용대로 듣게 되었다.


그 내용이란, 이렇다. 여자는 또래 친구에게 자신의 연애에 대한 한탄을 하는. 남자친구가 자신의 마음에 안드는 행동을 했는데 반성은 커녕 반박했다는 것이다.


"걔한테 내가 그랬어. 아니 친구 만나러 가기 전에 문자 한번 할 수 있잖아. 그거 못해? 그런데 걔가 뭐라고 그런줄 아냐. 하참, 내가 말문이 막히더라. 그전에 내가 아는 남자얘 동생 밥먹을때 자기도 똑같지 않았냐는 거야.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어이가 없어서."


그런 내용이었다. 아마 통화를 한 여성은 그 친구와 남자친구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 듯.


수화기 너머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그 친구라는 사람은 이 여자의 한탄에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잘못된게 아니라고 몇번이나 확인, 확실히 걔가 이상하네, 라고 하면서 말이다.


여자들이 친구에게 이런 프라이버시한 내용들을 술술 털어놓는 이유는 다른게 아닐게다.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싶은 것? 다들 알지 않나. 여자는 그저 내편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온전한 내편. 힘들때 위로 받고 나의 의견을 동조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


그 지지자가 지금 자신의 남친이라면 완벽하겠지만, 많은 여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나보다. 남친과의 있었던 불만과 짜증들, 불화와 다툼들 - 그리고 나아가 확실히 그 남자가 잘못된 것이라는 확인 도장을 친구들에게 받는다. 남친을 확실한 악역을 만들어놓으면 그 어떤 문제든 그 문제는 그 남자가 시작한, 시발점이며 문제덩어리가 된다. 동시에 모든 죄책감에서 풀려난다.


중요한 건 누가 잘못했냐가 아니다. 남자가 여자를 속상하게 했다면 분명 그건 잘못이다. 둘은 서로를 행복하게 한다는 일종의 계약 중이니까. 중요한 건 잘잘못의 여부가 아니라 그 잘못을, 관계에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때 서로가 그 잘못과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그게 둘의 관계를 얼마나 깊게 만들 수 있냐 없냐를 가르는 기준이다.


연인 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번째 기본적인 태도는 일대일이다. 다이다이. 둘 사이에 어떤 누구도 끼어선 안된다. 속상한 것이 있으면 그 대상에게 풀어야 한다. 쌍욕을 하고 끝장토론을 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은 커녕 결점투성이, 부족할뿐더러 서로 다르게 살아왔던 몇십년의 세월이 남녀의 간격을 더욱 떨어뜨려놓는다. 미숙한 연애는 이 간격에 집착한다. 왜 우리가 이렇게 떨어져있지 라며.


하지만 성숙한 연애, 성숙한 사랑이라는건 둘간의 간격을 인정하며 상대의 세계에 대해 이해하는 걸 의미하고, 그 사이를 점차 줄이고 결국 둘이 살을 맞대는걸 의미한다. 그것은 서로 다투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면서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인정해야 하는 것. 사랑이 달콤하지만은 않은걸 인정하는 것. 일대일 다이다이로 둘 사이의 문제를 꺼집어내고 맞대는건 정말 괴롭지만 그 과정은 모두 둘의 관계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사랑받고 싶은 단순한 연애 감정에서, 먼저 사랑해주고 상대의 마음에 민감하게 귀기울여주며 이해하는 성숙한 사랑으로. 남자 여자가 이 위치까지 같이 성장해가야 함을 물론이다.


어떤 속상한 일에 자기 편을 찾아 위안을 삼아버리면 그 순간은 편안할지 모른다. 하지만 연애는 항상 제자리걸음일 수 밖에 없다.


모두가 잠든 고속버스에서 열을 내며 속상함을 토로하던 그녀는 이후 남친과 화해를

했을까. 친구를 찾아 남자친구 욕을 실컷 한 후에 남자친구와 다이다이를 했기를. 일대일로 자신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그리고 실컷 다 털어놓은 후에는 남친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들어보았으면.


물론 대부분의 남자는 자기 이야기를 잘 못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들었기를. 그렇게 들었는데도 남자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지금 남자도 여자를 보며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떠올리길.


지금까지 쿵짝이 잘 맞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이 남자친구란 놈은 왜 이리 둔하고 어이가 없지, 라고 생각한다면 남자는 원래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다. 반대로 남자들도 여자들은 원래 다 그래? 라고 묻고 있다. 답답하고 이해가지 않는 건 매한가지. 그렇게도 다른 남녀가 응차응차해서 그 간격에도 만나는 것이 사랑이다. 나아가 친했던 친구들을 모두 따돌리고 가장 인생의 쿵짝을 맞게 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영혼의 단짝이다.


일대일로 남녀 사이 태생적인 둘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 힘들때 속상할때 전화를 먼저 걸어 한참 수다를 떨었던 친구들보다 누구보다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 쿵짝이 맞는 소울프렌드를 찾는 것. 사랑이란, 이렇게 넘어야 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사랑이다.


우리가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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