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속에서 좋은 사람 찾기
결혼까지 하고나니 연애상담이 더 뜸해졌다. 그러다 가끔씩 연애 고민하는 청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신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문득 내가 꼰대처럼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는 것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진짜 고민을 물아본다. 그럼 백이면 백,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사람이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요?
연애가 어려운 것은 바로 ‘불확실성’ 때문이다. 사귀기 전에는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할까 아닐까’, 썸을 탈때는 ‘고백해도 되는 걸까 아닐까’, 사귀고 나서는 ‘우리의 관계가 계속 변하지 않을까’ 식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이 연애다. 이중 불확실성의 최고봉은 누가 뭐래도 상대의 정체다.
상대의 정체, 그리고 진심.
사람을 알아보는데 무슨 어려운 문제가 있냐고 묻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걸 잘 알아보는 것이 연애를 잘하는 핵심이자, 후에 결혼할 사람을 알아보는 것까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어렵고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아주 극히 일부와 감정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그 중의 일부 몇명과 우리는 사랑이라는 걸 한다. 마치 유년시절 새카맣게 빽빽한 인물들 중에서 월리를 찾으려고 펜을 들고 고군분투하는 모양새처럼 우리는 평생을 인연을 찾아 헤멘다. 월리를 찾기 힘들었던 이유가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았던 것처럼 다 ‘어느 정도’의 매력과 자신의 ‘취향 저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인파 속에서 보석과 같은 사람을 만나서 발견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그래서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걸까? 그저 맞지 않는 사람만 영 만나다 세월을 허비하지 않을까?
결혼한 뒤 180도 변해버린 사람도, 연애를 시작한뒤 사랑을 속삭이던 얼굴이 사라져버린 사람도 처음에는 모두 사랑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상대를 봐서는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상대에 대한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도 다르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대신 상대가 아닌 나를 볼 수는 있다.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펴보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난 나는 어떤 확실한 징후가 있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 말이다.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욕구.
그 사람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그 사람과 하는 일들이 나를 착하게 만들어.
그 사람으로 인해 변하는 모든 것들이 기분 좋아.
그 사람이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사람이 나에게 주는 영향을 엿볼 수는 있다. 그건 나의 마음이고 나의 생각이니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줄은 그 속마음을 알순 없으니 알 수는 없으나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면 그 사람은 확실히 좋은 사람이다.
이건 몇가지 조건이 맞는다고 사랑이 성립되는 것처럼 간단한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흔하지 않은 일이고, 그게 운명 과도 같은 일이라서 더욱 그렇다.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없고, 없어서 어느 정도 맞는 사람을 만나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사람들이 조급함에.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내가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길, 내가 그 사람을 발견하는 순간 그 사람도 나를 발견하길. 사랑이 이뤄지는 그 순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