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자존감의 관계

브리짓존스가 진짜 자신을 찾기까지

by ASTR

"넌 이상형이 뭐야?"


우리는 우리가 만날 인연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들의 상세한 스펙들, 성격은 어떤지 키는 얼마나 큰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해줄지 따위를 말이다. 동시에 왜 자신의 주위에는 이런 멋진 남자, 여자가 나타나지 않으며 현재 만나고 있는 연인은 왜 이런지 불만을 터뜨린다.


반대로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줄지 고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어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된다. 누군가 멋지다고 이야기해야 멋진 사람이 된다. 스스로 사랑스럽고 멋진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다.


우리는 연인을 찾거나 연애를 할때 흔히 하는 실수가 상대에 대한 이런 기대로만 기준을 세운다는 것이다. 마치 백마 탄 왕자처럼 우리는 '그 자리에서' 판타지가 나타나길 바란다. 숲속의 공주 같은 이런 수동적인 자세를 다른 말로 <낮은 자존감>이라고 한다. 그래, 낮은 자존감이 문제다.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한 여자가 겪는 자존감과의 사투이다. 1편과 3편을 보자. 그 간극에서 확실히 브리짓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에서 스스로 사랑스러운 존재로 변화했다.


1편의 브리짓은 영화 내내 선택받지 못해 안절부절해보인다. 바람둥이에게 상처를 받아도 또다시 흔들리고 - 자신을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줬기 때문에 - 화룡점정은 마크에게 고백받을 때다.


"난 네 모습 그대로가 좋아. 너를 좋아해"


로맨틱한 이 고백.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이 고백 이후 마크를 남자로 보지 않았던 브리짓의 마음이 180도 돌아선다. 마크가 나를 좋아하니, 그것도 내 모든 걸 좋아한다니 나도 마크가 좋다는 식.

"내 모든 게 좋다고 했지? 나도 네가 좋아"


자신의 모든 걸 - 단점까지도 - 사랑한다는 것이 정말 강력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관계는 오래 갈 수 없다. 브리짓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의 사랑을 완전하게 확인해야만 사랑할 수 있는 자존감 낮은 연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자존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어떤 완벽한 사랑도 만족스러울리 없다. 2편에서 자기불만족과 질투 때문에 '완벽한 남친' 마크와 틀어지는 것도 다 그런 일환이다.


3편 '브리짓존스와 베이비'에서 브리짓은 이제 나이를 많이 먹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데, 브리짓은 큰 행동의 변화를 보인다. 남자들의 선택에서 벗어나 비로소 스스로 선택하는 위치에 온 것. 브리짓이 아이를 임신하고 두 남자를 찾아가 '혼자 키워도 괜찮다'라고 말한 건 진심이었다. 남자가 있어서, 그의 사랑이 있어야 자신의 인생이 제대로 된 것 같다는 낮은 자존감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그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는 - 자신이 완전히 채워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누군가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자신'으로서 사랑할 수 있는 상태.


말하자면 브리짓이 자신의 자존감을 완전히 세우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데 1편 32살으로부터 3편 43살까지 약 1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영화는 브리짓의 선택과 후회에 집중하지만 결국 이 영화 시리즈는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존감을 세우는 일이 이렇게 어렵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처럼 자존감은 쉽게 일으켜 세울 수 없다. 자기불만족에 가득한 사람이 갑자기 자신에게 만족할 순 없는 일이다. 인스타그램 속 몸매 좋은 사람들의 그 몸매를 그대로 가지게 되어도, 정말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게 되어도 낮은 자존감을 높일 수 없다. 되려 문제가 되면 됐지. 브리짓처럼 말이다. 이런 낮은 자존감이 계속되면 자기연민, 심하면 자기혐오로 발전하게 된다.


중요한 건 시선이다. 상대에 대한 기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보다 자기 자신을 향한 시선을 품어야 한다. 남들의 기준에 맞추기 보다 나의 기분, 나의 생각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혹시나 내 마음이 다치지 않았는지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 브리짓의 경우, 일기를 활용했다.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를 했고, 어느 정도 자신의 자존감 문제를 스스로 발견해냈다. 남자운이 안좋아서도 아니고, 자신의 뚱뚱한 몸매 때문도, 골초이기 때문도 아닌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그녀는 남들이 보는 브리짓존스가 아니라 진짜 '자신'을 찾는 작업은 계속 해왔다. 그리고 그 모습과 직면한뒤,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것이다. 아낌없이.


우리의 브리짓 존스는 10여년의 세월을 지나 결국 해냈다. 자존감을 찾았고 진정한 사랑도 찾았다. 우리는? 여전히 낮은 자존감에 자신도 사랑도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변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건 - 이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마지막 장면 - 그녀의 환한 미소처럼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