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탄생
"어떻게 브랜드를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를 하게 되면 대개 경영자와 브랜드 담당자는 첫 번째 질문부터 당황스러워한다.
브랜드가 무엇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설명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신는 신발 브랜드인 나이키를 떠올리면서 브랜드를 말하는 것과 아무나 쉽게 갖지 못하는 럭셔리 브랜드인 에르메스를 생각하면서 말하는 브랜드 정의는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질문을 해본다.
"상표와 브랜드는 무엇이 다른가요?"
"상표는 상품에 붙이는 라벨이죠."
상표에 대한 정의는 정확하다.
"그러면 브랜드는 상품의 상표와 같나요?"
"상표와 브랜드는 다르죠."
"어떻게 다른가요?"
여기까지 질문을 하면 대부분 이런 질문이 되돌아온다.
"그러면 당신은 브랜드를 어떻게 정의하나요?"
브랜드와 상표의 근본적 차이
상표는 제품을 식별하기 위한 시각적 표시다. 반면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속에 형성된 감정적, 인지적 연결의 총체다.(이런 표현은 싫어하지만)
상표는 법적으로 보호받는 상품의 표식에 불과하지만, 브랜드는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갖는 모든 경험, 기대, 느낌을 아우른다. 상표는 보이는 것이고, 브랜드는 느껴지는 것이다.
기업의 존폐 위기는 브랜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렸다. 앞장에서 설명했듯이 기업 위기는 기업의 모든 행위가 브랜드 구축이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는데서 시작된다. 기업의 위기는 브랜드 위기이며, 브랜드의 위기는 기업의 위기를 가져온다. 기업은 브랜드 경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랜드 구축의 세 가지 핵심 요소
그렇다면 브랜드를 어떻게 창조하고 경영할 것인가? 광고계의 구루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는 수많은 브랜드들의 광고 기획을 해왔으며, 광고계의 교과서로 통한다. 그가 말하는 브랜드에 관한 얘기는 주의깊게 들어야 한다.
"바보도 거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재능과 신뢰, 인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오길비는 브랜드 경영을 설명하면서 경영학에서 다루는 전략용어와는 달리 매우 지고지순한 단어인 재능, 신뢰, 인내를 언급했다. 이것이 과연 경영학에서 다루는 학문일까? 만약 브랜드 경영을 하고 있다면 재능, 신뢰와 인내를 어떻게 작동시켜야 하는지 경험한 적이 있는가? 이는 브랜드 경영의 태도와 연관된다.
재능: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하는 힘
재능은 단순한 창의력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통찰력과 실행력이다. 필 나이트가 처음 나이키를 설립했을 때, 그의 재능은 단순히 신발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선수들의 필요를 깊이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있었다. 재능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발견하고, 그것을 실체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신뢰: 약속을 지키는 일관성
신뢰는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암묵적 계약이다. 브랜드가 약속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때 형성된다. 이케아가 전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브랜드가 된 이유는 합리적인 가격의 실용적인 가구라는 약속을 수십 년간 일관되게 지켜왔기 때문이다. 신뢰는 브랜드의 모든 접점에서 형성되며, 하나의 실수로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인내: 장기적 비전을 지키는 끈기
인내는 당장의 성과보다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를 우선시하는 태도다. 레고의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은 작은 목공소에서 시작해 수십 년간 꾸준히 제품을 발전시켰다. 단기적인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어린이 창의력 개발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한 인내가 오늘날의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었다.
주목할 점은 오길비가 돈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브랜드는 돈을 벌게 해주는 원천인데도 왜 자본을 넣지 않았을까?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Al Ries & Jack Trout)의 공저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서도 재원의 법칙을 강조했듯이, 아이디어가 좋아도 '돈'이 없으면 마케팅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좋은 아이디어도 돈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브랜드는 돈으로 만들 수 없다.( 성공적인 브랜드 사례들 )
나이키의 창업주이자 회장인 필 나이트(Phil H. Knight)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1962년(당시 24살)에 일본 브랜드인 아식스의 사장을 만나서 타이거 신발을 수입하려고 했다. 아식스 사장이 필 나이트에게 미국 어느 회사에서 왔는지를 물었을 때 대학교를 갓 졸업한 그는 즉흥적으로 '블루 리본 스포츠'라고 둘러댔다. 필 나이트는 수입 라이선스를 따낸 후, 미국으로 돌아와서 블루 리본 스포츠 회사를 서둘러 만들었다. 첫 번째 주문량인 신발 200켤레를 공급받아서 창업을 한 셈이다. 10년이 지나 필 나이트와 아식스 간에 사이가 극도로 악화되자, 필 나이트는 제2의 창업을 결심한다. 34살에 35달러를 주고 만든 나이키의 로고를 활용해서 나이키 브랜드를 런칭하였고, 그후 2003년에는 자신들의 선배이자 숙적이었던 100년 브랜드인 컨버스마저 인수하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목수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는 1943년(당시17세)에 이케아라는 회사를 만들어 지갑, 액자, 스타킹과 같은 일상용품의 통신판매를 시작했다. 그후 1958년(당시32세) 스웨덴에서 첫 번째 이케아 샵을 열었다. 소박한 창업이었지만 현재 이케아는 매출 수십조 원의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다.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Ole Kirk Kristiansen)은 1916년(당시 25세)부터 덴마크의 작은 마을인 빌룬트에서 영세한 목공소를 운영했다. 형편이 궁핍한 그는 쓰다 남은 작은 나무들을 모아 장난감을 만들면서 자동차에 실어서 여러 상점에 직접 팔고 다녔다. 이후 43살 때 레고 장난감을 만들었고, 덴마크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레고는 이제 전 세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브랜드가 되었다.
모리스와 리처드는 너무나도 가난해서 고향을 떠나 할리우드에서 큰 꿈을 이루려고 했다. 극장 운영과 무대 장치 기술자로 일했던 그들은 번번히 실패를 했고, 결국 1937년에 로스엔젤레스 교외에 있는 패서디나에서 자동차 운전자를 위한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1950년대 초반에는 레스토랑을 프랜차이즈로 늘리려고 했지만 별로 신통치 않았다. 4년 후, 밀크셰이크 믹서 사업자인 레이 크록(Ray Kroc)이 형제들을 설득해 1955년 4월 '맥도날드'를 오픈했다.
청년 창업으로 가장 유명한 스토리는 1984년 19살의 나이에 천 달러를 가지고 10년 뒤 300억 달러의 컴퓨터회사 델 DELL을 만든 창업주 마이크 델(Michael Del)일 것이다. 고객이 부품 사양을 선택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컴퓨터를 만들어주는 그의 아이디어는 사실 그리 놀라운 게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용산전자 상가에서도 하고 있었고, 같은 모델로 경영을 하는 회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브랜드가 되지 못하고 '조립 매장'과 '조립 회사'로 시장에서 사라졌다.
1972년 야나이 다다시(Yanai Tadashi)는 아버지한테서 일본 지방의 작은 양복점을 물려받았다. 그 후로 그는 '좋은 옷은 무엇일까?'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오늘날의 유니클로를 만들었다. 그렇게 성장한 유니클로 브랜드는 야나이 다다시를 일본 최고의 갑부로 만들었다.
그 외에 손 관절염 환자인 아내를 위해서 남편 샘 파버(Sam Faber)가 만든 주방브랜드 옥소 OXO, 음악으로 먹고 살기 어렵다는 아버지의 강압으로 아버지 회사에 입사한 몬테 골드먼(Monte Goldman)이 만든 가방 브랜드 이스트백 Eastpak, 어머니의 레시피를 이용해서 클래런스 노블(Clarence Noble)과 함께 헨리 존 하인즈(Henry John Heinz)가 만든 하인즈 Heinz 등 소소하게 시작해서 브랜드가 된 사례는 많다.
대기업의 브랜드 구축 실패 원인
마케팅 관점에서는 경쟁자보다 더 큰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50년 이상된 대부분의 브랜드는 돈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만약에 돈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면 왜 대기업에서는 브랜드를 만들지 못할까? 왜 대기업에서 만든 브랜드는 10년을 넘기지 못할까? 확인하고 싶다면, 대기업에서 만든 브랜드를 세어보자. 과연 몇 개나 있을까?
대기업이 브랜드 구축에 실패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단기적 성과 집착: 대기업은 주주와 시장의 압박으로 분기별 실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브랜드 구축은 장기적인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지만, 대기업은 즉각적인 ROI를 요구한다.
진정성 부족: 대기업이 만든 브랜드는 종종 전략적 결정에 의해 만들어지며, 창업자의 열정과 비전에서 비롯된 브랜드만큼의 진정성을 담기 어렵다.
위험 회피 문화: 대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는 실패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강력한 브랜드 구축은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고 기존 관행에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료주의와 경직성: 대기업은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과 관료적 구조로 인해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들은 브랜드를 돈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천문학적인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하면서 해외 브랜드를 수입하거나 아예 통째로 사온다. 이를 변명하기 위해 중국 시장과 글로벌 시장의 진출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불행히도 브랜드를 제대로 경영하지 못해서, 다시 되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열광의 코드 7〉의 저자인 패트릭 한론과 브랜드 구축을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화려한 언론 플레이로 증속 로켓을 달고 회사를 시작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100년 이상 유지되는 브랜드와 조직을 만드는 일은 개인의 역량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차원이 다른 일이다."
브랜드 구축을 위한 실질적 접근법
진정한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접근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명확한 목적 정의: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이상의 브랜드 존재 이유를 정의하라. 나이키의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운동선수가 있다"는 철학처럼, 소비자의 삶에 어떤 의미를 더할 것인지 고민하라.
일관성 유지: 브랜드의 핵심 가치와 메시지를 모든 접점에서 일관되게 유지하라. 이케아가 50년 넘게 실용적이고 저렴한 디자인 가구라는 브랜드 약속을 지켜온 것처럼.
소비자와의 진정한 연결: 소비자를 단순한 구매자가 아닌 브랜드 여정의 동반자로 여기라. 레고가 어린이와 성인 팬들의 아이디어를 제품 개발에 적극 반영하는 것처럼.
인내와 끈기: 브랜드 구축은 단기적인 광고 캠페인이 아닌 장기적인 여정임을 인식하라. 맥도날드가 전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는 점을 기억하라.
브랜드는 돈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브랜드 경영이 어려운 것이다. 만약에 브랜드를 돈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브랜드가 어려운 것은 브랜드를 너무나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시장에서 브랜드를 살 수 있기에, 브랜드를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절대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 돈으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사람은 바보다.
브랜드의 본질을 찾아서
브랜드와 상표의 근본적인 차이는 상표가 '소유하는 것'이라면, 브랜드는 '획득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상표는 법적 보호를 통해 얻을 수 있지만,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과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 브랜드는 데이비드 오길비가 말한 것처럼 재능, 신뢰, 인내를 통해 구축되는 무형의 자산이다.
진정한 브랜드 경영자는 브랜드가 단순한 마케팅 도구가 아니라 소비자와의 장기적 관계이자 약속임을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브랜드만이 시장의 변화와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아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브랜드는 상표처럼 돈으로 살 수 없다. 브랜드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