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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Jun 13. 2023

예상이 빗나가도 계속되는 삶

간밤에 내린 폭우로 오늘 아침은 선선할 줄 알았다. 다가올 가을에나 다시 만나자며 서랍에 넣어 두었던 긴 티를 꺼내 입기로 했다. 비가 오기 전에도 저녁에는 기온이 제법 낮아 반팔 차림이 때론 춥게 느껴졌으니 오늘만큼은 아침부터 입어도 괜찮을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빗나갔다. 짐을 챙기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뜨거운 볕이 반쯤 내민 종아리를 먼저 때렸다. 비가 오기 전까지는 아침 햇볕이 이렇게까지 뜨겁지는 않았는데, 비가 내리면 으레 기온이 내려갔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예상 밖의 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저 멀리 등교를 서두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제보다 햇빛이 뜨겁다는 이야기였다.


색은 다르나 이런 느낌을 받는 날이 종종 있다. 종전까지 내렸던 소나기로 땅이 흠뻑 젖는 바람에 종일 젖은 땅을 밟아야 되는 줄 알았으나 볕이 들더니 금세 땅이 말랐다. 반대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오늘은 내내 이럴 줄 알았지만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다. 모두 여름이면 보게 되는 색들이었다. 겨울이던 어느 날에는 눈이 내렸고, 그날은 기온이 올라 눈이 금방 녹을 거라 했다. 실제로는 되레 기온이 떨어져 눈이 얼어버렸다. 퇴근길이었던 사람들의 볼멘소리로 안과 밖이 모두 시끄러웠다. 봄이나 가을도 어김없다. 그때는 대체로 예상했던 기온을 벗어나 춥거나 더웠다. 옷이 제 역할 중 하나인 체온 관리를 가장 많이 실패하는 계절이 바로 봄과 가을이었다.


그럼에도 삶이 계속되니 새삼 덧없다. 무엇 하러 짐작을 하고 예상을 했을까. 들어맞는 날보다 틀리는 날이 더 많아 보기 좋게 비에 젖거나 땀에 젖고, 발이 묶이고, 추위에 떠는데. 불상사에 자주 매몰되는 나는 안중에도 없이 삶이 계속된다. 그야말로 덧없다. 하지만 동시에 계속되는 삶이 감사하기도 하다. 인생에서도 예상을 벗어나는 일은 날씨보다 많으면 많지 결코 적지 않기에. 그때마다 수시로 온갖 감정에 흔들리는 나는, 삶만큼은 그럼에도 초연하게 흘러간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나와 함께 삶도 동요했다면 이만큼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예상하고, 틀릴지 모르겠다. 너무 자주 틀리니 예상하는 것을, 달리 말하면 계획하는 것을 그만둘까 싶기도 하지만 안 된다는 것을 안다. 틀리는 게 두려워 계획하길 멈춘다면, 그때야말로 삶은 나와 함께 흔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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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땅과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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