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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쓰는 편지

실패라 부르던 시간의 사랑

by 염전씨 Apr 01. 2025

아주 옛날, 아빠가 일기를 열심히 쓰다가 다 태워버렸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아빠는 그때까지 쓴 일기가 변명이고 합리화 같이 느껴졌다고 했지. 그 말이 너무 아팠어. 내가 사랑하는 아빠는 본인 인생의 한 부분(혹은 모조리)을 태워버려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본인의 인생을 미워했었구나.


나는 그때를 알 것도 같아. 내가 외고 준비를 하고 아빠는 새벽에 야채 배달을 하던 때였지. 새벽에 잠을 못 자고 있었는데 아빠가 들어와서 너무나 슬픈 목소리로 "너는 아빠처럼 살지 마"라고 했었어. 사실은 그전부터 뭔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아. 다른 건 몰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던 아빠가 아빠의 직업에 대해서 만큼은 거짓말을 시켰었으니까. 점점 시간이 지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빠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게 됐어. 아빠는 내게 큰 권위의 존재이기도 했지만, 어제와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슬픔이었던 것 같아. 내가 만약 고등학생, 대학생, 성인이 되어서 아빠에게 쌀쌀맞게 대했다면 그건 내가 아빠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거야. 내가 아빠에게 상처를 준 것이 있다면 부디 용서해 줘. 나보다 오래된 슬픔을 바로 보기에는 용기가 필요한데, 나에게는 그게 없었던 것 같아. 아빠는 아마 본인의 인생이 실패의 연속, 주저앉음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어.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가,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설명해 볼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감이 넘치는 애였지. 지금도 그래 요즘 유행하는, 더 정확한 말로 하라면 자존감이 높은 거였을 거야. 아빠는 내가 언제나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해줬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도비만 초등학생이었을 때, 여드름이 창궐했던 중학생, 고등학생, 마음이 비뚤어졌었던 대학생 그리고 지금까지. 어릴 때는 아빠는 늘 그렇게 말하니까 아빠의 의견보다는 남들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아빠가 뭐라든 신경도 쓰지 않았지. 그렇지만 이제는 알아. 엄마 아빠가 언제나 그렇게 얘기해 줬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러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나는 늘 마음 깊은 곳에 "아니 내가 봤을 때는 이렇게 예쁜데 왜 남들은 모르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젊은 한국여자에게 박한 이 세상에서도, 아무리 남들이 험한 말을 해도 "나 이렇게 괜찮은데 다들 뭘 잘 모르네”라고 내 마음속에 단단히 닻을 내리고 살 수 있었던 것 같아. 지금도 마찬가지고.


      아빠가 나에게 준가장 큰 유산이 있다면 "100점을 맞아와!”가 아니라 "네가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스스로 보라”고 말해줬던 것이야. 중1 중간고사, 즐거웠던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처음으로 등수가 찍하는 시험을 봤지. 그때 아빠가 해준 그 말이 왠지 기억에 아주 오래 남았어. 그때부터 그렇게 살았지. 왜 풀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풀 수 있게 될 때까지 풀었고, 영어가 안 들리면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들었고, 남들보다 뭔가 못하면 더 잘하게 될 때까지 붙어있었지. 내가 30살이나 되어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늘 건강한 향상심이 있었는데 그건 모두 아빠 덕분이야.  


      나는 아주 자랑스럽게 내 유년기는 행복했고 청소년기에는 도전과 성장이 일찍이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어. 아빠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인생에 만족하지 못했을 때 도망갔을 수도, 술을 마셨을 수도, 도박을 했을 수도, 우리를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학대했을 수도 있었겠지. 그렇지만 아빠는 도망가지 않았고, 세상에 정면으로 맞섰고, 사랑하기를 선택했지. 사랑한다는 건 약해지기를 선택한다는 것이고, 약한 사람은 약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강한 사람만 약해지기를 자발적으로 원할수 있어. 그래서 아빠는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야. 어떤 고난이 이겨낼 수 있어서가 아니라. 고난 앞에서 무너지고, 어떤 식으로든 살기 위해서 합리화하고, 그러다가 또 박살이 나도, 또 그렇게 고난을 맞기로 선택할 수 있어서. 그 덕분에 나는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었어. 세상에서 롤모델이라고 부르고 성공했다고 해주는 사람들 중 얼마나 이런 말을 자식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점에 대해 아빠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부심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염훈도 내 말에 동의할 거야.


아빠가 완벽했냐면 그렇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나는 아빠가. 어떻게든 도망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사랑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던 과거의 아빠를 용서해 줬으면 좋겠어.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에 아니니까. 아빠가 요새는 눈을 뜨면 통증 때문에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다는 말에 너무 마음이 아파. 자기 몸에 갇혀버린 느낌일까? 내일이라도 죽으라고 하면 그리고 싶은 마음일까? 이 세상에 어떠한 즐거움이 조금이라도 남았는지 의심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 그러고 싶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말수가 적어져. 아빠는 감정표현을 잘하지 않으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아무래도 아니라고 대답할까? 내가 진짜로 이 질문들을 아빠 앞에서 눈을 보고 묻는다면, 그럴 용기가 내게 있다면, 나는 울지 않고 이 질문들을 할 수 있을까?


하나만 말해주고 싶어. 아빠가 나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아빠가 태워버려야만 했던, 그토록 자신을 미워해야만 했던 그 시간들이 만든 거야. 그러니까 아빠 자신을, 그때의 자신을, 혹은 지금의 자신도 용서해 주기를 바라.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건 아빠가 써준 것처럼,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니까. 사랑합니다.


>>>여기까지의 편지는 내가 2024년 7월에 쓴 편지야.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칠 용기가 없었네. 왜 그랬는지 몰라. 가방에 매일 넣고만 다녀서 비에 젖었는지 조금 번졌네. 지금은 인터넷에 이 글을 쓰지만 조만간 실제로 우편을 보낼게. 나는 내가 8살, 염훈이 6살이던 아빠의 생일을 기억해. 동네 골목에서 놀다가 쓰레기더미에서 아빠 생일 선물을 주기 위해서 컵 하나, 유리조각 하나를 주워 유리 조각은 토끼풀로 묶어 리본을 만들어왔지. 그때 아빠가 우리가 그 어떤 좋은 걸 사주는 것보다 이 선물이 더 좋다고 했지. 아빠가 뭘 좋아할지 고민하면서 쓰레기통 주변을 뒤진 그 정성이 가장 아빠를 기쁘게 한다고 했지. 문득 생각해 보면 그런 정성을 느낄 수 없어서 내가 아빠에게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을 때마다 없다고 대답했나 봐. 이제는 앞으로 편지를 써주는 걸로 선물을 대신할게. 내 남은 인생, 아빠의 남은 인생의 교집합에서, 내게 남은 과제가 있다면. 그건 아빠가 다시 글을 쓰게 하는 것, 그리고 이번에는 그 일기장을 태우지 않을 만큼, 아빠 덕에 내가 내 인생을 사랑하게 된 만큼, 아빠가 다시 인생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야.


내가 뉴욕에 와서 한 남자를 만났지ㅋ 알고 보니 본인이 원하는 것 (그때는 나)를 위해서, 본인이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었어. 나는 늘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다는 말을 이해 못 했는데 이번에 알겠더라. 도덕과 정직을 배우는 게 가정교육인 것을. 초등학생 때 내가 혼나다가 상황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했다가 그게 들켰던 게 기억나. 건우네 집에 살던 때였던 것 같아. 그때 아빠의 얼굴은 화가 난 게 아니라 슬퍼 보이는 것에 가까웠지. 그때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느껴. 나를 좋은 사람으로, 사랑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있는 사람으로 길러줘서 고마워. 계속 더 멋있게 살게. 글쓰기가 나를 지켜주는 것처럼, 아빠도 다시 글을 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 생일 축하합니다.


2025년 3월 31일, 뉴욕에서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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