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놀지 않았다
3년 동안 아이를 연달아 두 명 낳았다.
휴직기간 내내 누구보다 충실하게 육아를 했다.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러 갔고, 비가 오면 우비와 장화를 신고 비를 맞으러 갔다. 날씨가 좋은 봄날엔 경춘선을 타고 지하철 여행을 하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인간으로서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으며, 사랑 그 자체로 꽉 차있는 기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내 불안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안정감과 불안감을 함께 선사했다. 아이와 함께 동요를 부르다가도 종종 생각했다.
나는 지금 미래의 행복을 당겨 쓰고 있다고.
복직한 지 2개월이 다 되어 간다. 벌써 2월도 절반이나 지났다. 새벽녘에 아이들이 나를 찾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하루종일 살을 맞대고 살았던 우리는 이제 하루 2시간을 겨우 본다. 24에서 2가 되어버린 우리의 시간.
“적응 잘하고 있어요?”
요 근래 직장 동료들이 나에게 하는 안부인사는 이거다. 지난주 내내 이 물음으로 인사를 대신 받았다. 농담은 농담으로 응수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아니요’라는 말을 내뱉고야 만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열심히 적응하고 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말은 진심이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 나와서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열심히 하는 거 필요 없다,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괜스레 찔린다.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인가? 효율성과 효과성을 따져서 항상 가장 짧은 길로 향하는 사람인가?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을 했다.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던 것도 많다. 하지만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휴직기간 3년 동안 나는 촌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활자는 물론이오, 비판적, 체계적, 구조화된 사고는 저기 저 멀리 던져버리고 살았다. 보고서 대신 육아서를 읽었고, 문서 대신 동화를 읽었다. 영어회화 대신 동요를 들었고, 비판적 사고 대신 뭐든 수용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화를 낸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사회에 나왔고 그동안 사회는 너무 빨리 변해버렸다.
나는 촌스러운 구세대가 되어있었다.
회사에 있는 시간 내내 긴장은 물론, 일거리를 집까지 싸들고 오는 것은 기본, 팀장님과 부장님의 코멘트가 생각나 잠을 깨는 것도 일수인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아직 갈 길은 멀고 깜깜하게 느껴진다. 같이 들어온 동료들과의 격차도 엄청나게 벌어졌다. 나 빼고 다 잘하는 것 같다.
어제는 엑셀 시트를 삭제하지 않고 부장님께 메일을 보내는 아주 초초초초 초보적인 실수를 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킥을 100번은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 아아아아악 미치겠다!!!!!!!!! “
팀장님을 참조로 한 사과 메일을 보냈다.
‘한번 더 확인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내 다리에 매달려 놀아달라고 울고불고. 머리가 아득해진다.
나를 위로해 주러 친구가 잠시 놀러 왔다. 우린 17살 때 만났다. 그녀는 내 옆에서 만화책을 읽었던 친구였다. 그때도 친했는데 몇 년 이후 우연히 연락이 닿은 후에도 여전했다. 아마 우린 이렇게 같이 늙어갈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들은 친구가
“야 됐고, 밥이나 먹자. 내가 살게”
“야 됐고, 커피나 마시자, 내가 살게”
“야 됐고,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내가 다 사줄게”
나의 입은 쉬지 않고 그녀에게 근황을 전달하고 있었다. 기억을 거슬러보니 친구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래, 말보다는 지갑이 진심이지. 친구의 마음이 와닿아 가는 길 내내 마음이 훈훈해졌다.
나 스스로에 빠져 주변을 너무 뒤돌아보진 않았나 싶었다.
3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위로해 오는 친구도 있고, 시시각각 근황을 전할 수 있는 친구도 있고, 무엇보다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도, 다음번엔 실수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다음 주엔 더 성장해야지. 어깨에 힘 빼고 묵묵하게 나가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입을 꽉 닫고 온몸에 힘이 쫙 들어가고야 만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적응이라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 난 행복하지 않다. 지금의 행복을 휴직기간 동안 미리 다 써서 그런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