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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건 좋아요, 다만 출근길에 눈물이 날 뿐

아이가 새벽 3시에 깼다. 그 날은 10년만의 첫 발표 날이었다.

by 루나리

고백하자면 나는 발표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향적인 성향임에도 불구, 목소리 톤이 높고 발음이 정확해 사람들이 내 발표를 들으면 귀에 쏙쏙 꽂힌다고들 했다. 그래서 발표는 늘 내 차지가 됐다. 그게 편했다.


10년 전엔 그랬다.


그리고 회사원이 되었다.

낮은 연차였기에 남들 앞에서 발표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흔히 말하는 잡일을 했고 그게 천직이라 믿었다. 이후 이직한 회사에서도 발표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한낱 계약직에게 발표는 사치였다. 정규직 직원들이 모두 교육을 들으러 가면 홀로 사무실에 남아 전화를 받아야 했다.


“이 팀 사람들 모두 간 거예요? 와, 너무하네”

옆 팀 대리님이 와서 나 대신 한마디 거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 말에 동조조차 할 수 없었다. 정규직이 되고 싶었던 계약직이었기 때문이었다. 앉아서 전화를 받고 돌리는 게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렇게 계약은 만료됐다.


만료되던 날 사무실을 돌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던 건 단 한 가지였다.


“이제 그만두면 뭐 해?”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짐을 싼 후 마지막까지 전화를 받았다. 마음은 타들어갔지만…




이후 나는 직무를 변경하기 위해 학위를 땄고 글을 썼다.

푸릇했던 삶은 깡마른 글처럼 메마르기 시작했다. 적당히 나이가 찬 경력직이 직무를 변경하기 위해선 한 방이 필요했는데, 그게 없었다. 결국 메마른 글이 세상에 나왔고 그 글과 함께 서류 합격률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곳에 겨우 합격했다.


회사에 합격하던 날, 나는 하늘 위로 붕 떠올랐다. 서류를 내러 온 날 인사 담당자에게 ‘이곳에서 정년까지 하고 싶어요’라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말했고, 그 담당자는 깜짝 놀라며 ’이런 말 쉽게 하는 거 아니에요 ‘라고 했다. 몰랐다. 세상에 공짜로 돈을 주는 곳은 없다는 것을. 꿈만 같은 나날이었다.


그리고 입사 후 아이를 낳았고, 어쩌다 보니 아이가 하나 더 생겼고 그렇게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채 복직을 했다.




아는 것은 없는데 연차는 쌓여 있었다. 그래서일까 휴직기간 내내 복직을 염두하지 않았던 날은 없었다. 매일매일 불안했다. 그리고 그날이 다가와 버렸다. 복직날이, 그리고 발표날인 오늘까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날.


이 날을 위해 한 달간 나를 갈았다. 미숙한 내 곁을 지키느라 팀장님도 갈렸다. 이건 우리 팀 모두의 성과였다. 그래서일까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발표 연습을 끝마치고 겨우 잠이 들었는데 첫째가 울기 시작했다. 애착인형이 안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양이 어디 있어, 양아, 양아~”


우리 첫째 딸의 애착인형은 양이다. 이름은 단순하게 ‘양이’. 새벽에도, 아침에도 그녀 곁에는 항상 양이가 함께한다.

새벽 2시, 첫째가 뒤척이며 깨어났다. 이불 한가운데 숨어 있던 양이를 찾느라 핸드폰 불빛을 비췄다. 겨우 양이를 찾아 안겨 주니, 이번엔 둘째가 울기 시작했다.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

“물…”

가느다랗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에 얼른 일어나 물을 먹였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3시. 다시 잠을 청하려 하지만 눈이 말똥말똥하다.


큰일이다. 오늘 중요한 발표가 있는데…


결국 밤을 꼴딱 새웠다.


준비해 둔 트위드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했다. 한껏 치장을 했다. 애를 둘 낳은 아줌마지만 회사에서의 나는 이름 석 자로 불린다. 이 순간만큼은 나이고 싶었다.


하필 순서는 가장 첫 번째였다.


준비해 둔 피피티를 컴퓨터에 깔고 전체화면으로 돌려놓았다. 화면 앞에 서니 숨이 가빠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한건 10년 만이었다. 학생이었던 나는 직장인이 됐고, 애를 낳은 엄마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


이후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10분짜리 발표에 준비해 둔 내용을을 속사포로 뱉어내고 바삐 끝을 맺었다. 사람들의 눈빛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채색의 내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발표하는 나에 취해간다. 위험하다, 얼른 끝을 내자.


”이상입니다. 혹시 질문 있으실까요? “


이렇게 한 달의 노력은 10분만에 끝이 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혈액을 내뿜어댔다. 나는 꼬리를 힘차게 내젓는 물고기였고, 하늘로 비상하는 새였다.


“자, 박수” (멘트 모두 동일)

“짝짝 짝짝”


박수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 날 깊이 잠이 들었다. 전날 새벽 3시에 깨서 그럴 수도, 아니면 발표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그럴 수도.


열심히 공부하고 학비를 마련했다. 가까스로 직무를 바꿔 취직했지만,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는 중고 신입일 뿐이다. 한창 일을 배워야 할 시기에 아이를 낳았고, 나이는 들었지만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출근길마다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사진 속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데, 현실은 야근에 치여 잠든 모습만 겨우 바라보는 나날의 반복이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른다. 하나 확실한 건, 발표를 끝냈다는 거고 아이들은 커간다는 거다.


이유는 없다. 다만, 출근길 아이들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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