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검푸른 약병을 나누던 저녁
차례로 사라지기로 약속했다
침묵은 가느다란 숨결로 번졌고
가장 마지막 잔은 내 손에
무수한 심장들이
어둠 아래로 가라앉을 때
나는 끝내
홀로 남겨졌다
피로 얼룩진 신발로
얼룩진 마음으로
텅 빈 거리를 헤매며
저무는 별빛과 맞닿았고
비틀린 가로등이
나를 겨누었다
누군가의 부주의한 연민이
병원의 침상 위로 눕혀졌을 때
나는 울음을 들었다
피범벅인 고통 속에서
한 아이가
세상에 항거하듯 손가락을 움켜쥐어
나는 생애 처음으로
태어남을 동정했다
그 지독한 고독의 대가를
이 어린 몸이 짊어지리라는 것을 알기에
생은
누구의 바람도 아니었으며
죽음 또한
누구의 끝도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길을
끝없이 반복할 뿐
떨치지 못한 고통과
다시, 또다시
불러올 뿐이다
(사진 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