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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by 이재 다시 원


검푸른 약병을 나누던 저녁

차례로 사라지기로 약속했다

침묵은 가느다란 숨결로 번졌고

가장 마지막 잔은 내 손에


무수한 심장들이

어둠 아래로 가라앉을 때

나는 끝내

홀로 남겨졌다


피로 얼룩진 신발로

얼룩진 마음으로

텅 빈 거리를 헤매며

저무는 별빛과 맞닿았고

비틀린 가로등이

나를 겨누었다


누군가의 부주의한 연민이

병원의 침상 위로 눕혀졌을 때

나는 울음을 들었다


피범벅인 고통 속에서

한 아이가

세상에 항거하듯 손가락을 움켜쥐어


나는 생애 처음으로

태어남을 동정했다

그 지독한 고독의 대가를

이 어린 몸이 짊어지리라는 것을 알기에


생은

누구의 바람도 아니었으며

죽음 또한

누구의 끝도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길을

끝없이 반복할 뿐

떨치지 못한 고통과

다시, 또다시

불러올 뿐이다

(사진 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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