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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별을 넘어, 마음을 배우다

단편, 에세이, 소설

by 이재 다시 원

단편->에세이의 흐름으로, 어린 왕자가 여행한 별 중 6.5별을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어린 왕자가 지구를 향해 긴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어디선가 고요하고 눈부신 별 하나를 발견했다. 그 별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처음 보는 꽃들이 영원히 활짝 피어 있었고, 나무들은 늘 푸르렀다. 강은 잔잔하며 물결 하나 치지 않았고, 새들은 변함없는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고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완벽한 별이 나타났지?“

어린 왕자는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별에 내려섰다. 그 별에는 노부인이 한 사람 살고 있었다. 그녀는 반듯한 정원 한가운데에 서서 꽃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안녕, 넌 누구야?“

어린 왕자가 다가가 인사하자, 노부인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지키는 사람이야. 이 별의 모든 것을 변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

”왜 변하면 안 돼?“ 어린 왕자가 물었다.

”변하면 잃어버리게 되잖아.“ 노부인은 조심스럽게 꽃잎 하나를 쓰다듬었다.

”그건 왜?“ 어린왕자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시 묻자, 노부인이 여전히 차분하고 친절하게 답했다.

”이 꽃이 시들어버리면, 다시는 이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을 거야. 바람이 방향을 바꾸면, 이 평화는 무너질 거고. 그러면 이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되는 거야.“

어린 왕자는 잠시 생각했다. 자신의 별의 화산이 항상 일정하게 따뜻하다면, 아침을 데워먹기에는 좋을 것 같았다. 홑꽃잎을 한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도 떠올렸다.

”하지만 꽃이 지는 것도 살아 있다는 뜻이야. 그리고 다시 피어나잖아.“ 어린 왕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노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는 그 슬픔을 견딜 수 없어. 차라리 시간을 가두는 게 더 안전해. 처음 이 꽃을 사랑했을 때의 마음을, 처음 바람을 느꼈을 때의 기쁨을 잃고 싶지 않아.“

어린 왕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장미가 떠올라 마음이 미워졌다.

”당신의 별은 정말 소중하구나.“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 이 별은 나의 전부야.“ 노부인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저 꽃들도, 나무도, 강도. 이 사람은 나의 장미처럼 저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거야. 무언갈 소중히 한다는 건 좋은 마음이지. 하지만 저 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건 왜일까?’

어린 왕자는 별을 둘러보았다. 노부인의 별은 처음에는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함이 느껴졌다. 꽃은 아름다웠지만 향기를 내지 않았고, 바람은 부드러웠지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새들의 노래는 기쁨이 아닌 의무처럼 들렸다. 아무것도 시들지 않는 대신, 아무것도 살아 있지 않았다. 어린 왕자는 천천히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여긴 너무…. 조용해.“

어린 왕자는 다시 별을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가야 할 것 같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노부인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가렴.“

어린 왕자는 별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 장미도 언젠가 시들겠지만…. 그래도 난 매일 다시 기지개를 피는 모습을 보고 싶어.“

어린 왕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별을 넘어, 푸르고 낯선 세계인 지구를 향해 떠났다.



다시 한번, 별을 넘어

어린 왕자는 지구로 향하는 길에 여섯 개의 별을 지나왔다. 나는 그 여행이 그냥 우연히 펼쳐진 여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별들은 어쩌면 어른이라는 세계를 하나씩 보여주기 위한 작은 무대들이 아니었을까?


첫 번째 별에서 어린 왕자는 한 왕을 만난다. 왕은 자신을 너그럽게 꾸미면서도 결국 상대를 억압하려고 한다. 그는 모든 것을 명령하고 싶어했다.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너는 내 아래야‘라고 말하는 어른의 모습. 가끔 어른들은 그런다. 자기보다 작은 존재를 사랑하는 대신 지배하려고.


두 번째 별은 허영심 많은 어른의 별이었다. 칭찬을 갈구하고, 누군가 자신을 봐주지 않으면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 나는 그 별을 생각할 때마다 문득 SNS를 떠올린다. 누군가 좋아요를 누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마음. 어쩌면 우리 모두 조금씩 그 별을 지나오고 있는 건 아닐까.


세 번째 별에는 술꾼이 있다.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는 자신이 부끄러워 또 술을 마시는 사람. 어른들은 실수를 두려워한다. 아이들에게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법을 가르치지만, 어른들 본인은 넘어졌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때로는 더 깊은 곳에 숨어버린다.


네 번째 별에는 사업가가 있다. 그는 별을 세고, 숫자를 기록하며 자신이 가진 것들을 늘려나갔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다르다.

“별을 가진다는 게 무슨 의미야?”

소유는 사랑과 다르다. 하지만 많은 어른이 그걸 구분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무언가를 가진다면, 마음까지 가진 거라고 착각하면서.


다섯 번째 별은 성실하게 일하는 어른의 별이었다. 그는 아무런 의문 없이 명령에 따라 가로등을 껐다 켰다. 하루에 한 번 이라는 명령은 바뀌지 않았지만, 환경은 바뀌었다. 별의 하루 주기가 짧아진 것이다. 이제 그는 1분에 한 번 가로등을 켰다 끈다. 처음에는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였겠지만, 어느 순간 목적은 잊히고 의례만 남았다. 일을 계속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왜 시작했는지를 잊은 채 일만 남기도 한다.


여섯 번째 별의 지리학자는 지식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직접 세상을 보지 않았다. 보고 싶지만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걸까. 어른들은 경험보다 증거를 원한다. 아이들은 보지 않아도 믿는다. 믿기지 않으면 직접 보러 떠나기도 한다. 그 차이가 세상을 다르게 보게 만든다.


나는 여기서 어린 왕자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섯 번째 별을 떠나 지구로 가기 전, 하나의 별을 더 만들었다.


6.5번째 별. 그 별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꽃은 지지 않았고, 나무는 늘 푸르고, 강물은 한 번도 거칠개 흐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살아 있지 않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걸까. 사랑을 지키고 싶어 하면서도, 그 마음 때문에 오히려 사랑을 얼려버리는 것. 아름다운 것을 간직하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것


어린 왕자는 다시 푸르고 낯선 세계를 향해 떠났다. 지구라는, 변하고 상처받고 살아가는 세계로


그는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매일 살아 있다는 기쁨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별을 건너오는 동안 어린 왕자는 그렇게 조금씩 자랐다. 나는 어린 왕자가 지나온 별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어느 별에 서 있을까.

혹은 어느 별에 너무 오래 머무르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아직 나는 어린 왕자처럼 지구를 향해 날아가고 싶다.

변화하고, 흔들리고, 다시 피어나는 삶을 믿고 싶다.

나는 아직, 살아있는 별을 찾아가는 중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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