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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끝나기 직전이 가장 뜨겁다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여름은 늘 끝나기 직전이 가장 뜨겁다.


햇볕은 더욱 짙어지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는다. 차오른 열기와 눅진한 습도 사이에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끼어든다.


사랑도, 이별도. 그 직전의 시간이 가장 미련하고 가장 진한 법이다.


그날의 우리는 아무 계획도 없었다. 그저 정처 없이 동네를 걸었을 뿐이다. 시간은 새벽 1시를 넘었고,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깔린 골목은 찌르르 거리는 풀벌레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잠든 도시의 틈에서 우리는 그 밤의 공기처럼 나란히 걸었다. 딱히 대단한 얘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참 오래 웃었다.


무릎도 어깨도 모기에게 몇 번이나 뜯겼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프다는 말도 가렵다는 말도 잊은 우리는 서로의 말과 표정에, 서로의 존재 자체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게 우리가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 아닐까. 어떤 말보다 진심이었던, 어떤 침묵보다 다정했던 그 순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고, 서툴지만 조심스럽게 그걸 지켜내고 있었다.


하지만 계절은 언제나 흘러간다.


어느 날부터인가 네 얼굴에서 그 맑게 웃던 표정이 사라진 것처럼.


너는 나를 보면서도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저 대화 중간중간 나를 보며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인 너를. 나는 달라진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묻는 순간, 무너질 걸 알았으니까.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그 속의 우리는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네가 내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날부터, 나는 우리 사이가 여름 같다고 생각했다.


뜨겁고, 버겁고, 어느 순간부터는 마주 보기도 어려운


여름


말하지 못한 감정들은 한낮의 습기처럼 공기 속에 퍼졌다. 말을 꺼내지 못한 건 내가 너무 겁이 많은 탓이었을까.


네가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은 이별은

그래서 더 아팠다.


우리는 그저 조금씩 멀어졌고

그러다 결국 멀어졌다는 말도 건네지 못한 채로 끝이 났다.


그날 이후 나는 너와 걷던 새벽 거리를 지나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혹시나 그 자리에 네가 있을까 봐. 혹시 너도 그때의 우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봐.


아니, 사실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어서.


여름 같은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뜨겁고, 버겁게.

잊히지 않는 정도로.

살갗에 남는 여름의 열기처럼, 한동안 쉽게 식지 않는 정도로.


나는 아직도 한여름같이 싱그럽던 너를 이 계절마다 떠올리는데


너도 나를 떠올리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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