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놓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그럴 수 있지. 원래 다 그래. 살아보면 다 놓게 되더라.


다들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나처럼 무언갈 오래 붙잡고 있는 사람은 잘못된 걸까?


유난히, 나만 유난스러운 걸까. 다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나만 감정이라는 이름에 속아 집착하고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걸어간다. 그 사람들의 뒷모습이 내게는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따라가야 함을 알면서도

오래, 조심스럽게 붙잡고 있던 것을 놓지 못했다.


한때 내가 좋아했던 글,

밤새우며 써 내려가던 문장들,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싶어 조용히 건넸던 말들.


이제는 내 주위의 누구도 이런 걸 말하지 않는다.

꿈을, 꿈꾸지 않는다.

이상보다는 효율을 말하고, 감정보다는 생산성과 필요를 말하는 세상.

그 세상에서, 나는 몇 번이고 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렇게 놓고 사는데, 왜 나만 이러지."


"이제는 잊고 나아가야 되는데, 왜 자꾸 돌아가고 싶을까."


어릴 적에는 언젠가 내가 상상한 것들이 현실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살거라 믿었고,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을 끝까지 믿어주는 일이라고, 세상은 조금 느려도 충분히 아름다우니 그대로 괜찮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른이 되니 그 모든 것들은 비효율이라 불렸다. 감정에 오래 머무는 사람은 감정 소모가 많은 사람이 되었고, 꿈을 노래하는 사람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말을 따랐다. 한동안은 남들처럼 살아보기 위해 애를 썼다. 의미보다 성과를 택했고, 느낌보다 논리를 말했으며, 머무름보다 정리를 골랐다.


그렇게 현실에 수긍하며 살아간 지 1년이 된 날이었다.


내가 지나온 길에, 아니 조금만 방향을 틀었으면 도달했을지도 모르는 길에, 언제 도착한지 모르겠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괜찮은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은 그 모습을 보고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갈수록 점차 작아지는 기분.


하지만 낡고 바래진 마음을 꺼내보는 건 여전히 두려웠다.

내가 괜히 유난스러운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렀다. 나는 돈과 현실을 쫓아온 곳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은 내게 재능이 있다고 말하곤 했고, 이는 곧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틈에서 우뚝 서 있으며, 이제 나는 누군가가 바라보는 뒷모습이 되었다.


그런데 왜.

여전히

그 계절의 빛깔과 오래된 노래 한 줄이 내 마음을 건드릴까.


나는 아직도 괜찮지 않은 상태에 익숙하지 않다. 어쩌면,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다는 건, 그럼에도 그 일에 뛰어든다는 건

그만큼 내가 뭔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쉽게 놓지 못한다는 건

내가 그만큼 애썼고, 간절했고, 마음이 깊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돌아가기로 했다. 참 멀리도 돌아왔다. 그리고, 길을 돌아가며 나는 이렇게 소리쳤다.


나, 이상하지 않아.

유난스러워도 괜찮아.

다 그렇게 사는 세상이라지만, 나만큼은 다르게 살아도 괜찮잖아.


나는 아직도 오래된 꿈을 붙잡고 있다. 낭만이라 부르기엔 조금 낡았고, 꿈이라 부르기엔 어쩌면 작아졌지만, 여전히 내 마음의 중심에 있는 것을.


누군가는 놓아야 성장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붙잡고 있는 것에서 피어나는 단단함도 있다. 잊지 않고 있다는 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지금 이 마음이

비효율적이어도, 감정적이어도 괜찮다.


조금은 오래,

조금은 무겁게,

조금은 아프게 살아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나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 그걸 사랑하니까.

(사진출처: pinterest)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