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처음엔 잔잔한 파도인 줄 알았다. 살짝 나의 발끝만 적시고 지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너는, 어느새 내 무릎을 적시고 허리까지 삼켰다. 그리고 결국엔 숨 쉴 틈조차 없이 나를 휘감았다.
도망칠 틈도, 숨 돌릴 여유도 없이
그렇게 나는 너라는 바다에 빠져버렸다.
너는 어수룩한 말투로 내게 다가왔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했다며 근처를 미리 돌아봤다고, 길 눈이 어두워서 미리 익혀두고 싶었다는 너.
그런 엉뚱한 배려를 웃으며 이야기하던 네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미숙한 구석들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를 좋아했는데, 그 좋아함이 너에겐 안도였을까.
너는 점점 더 너의 멋대로 굴었다.
내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고,
내 감정들을 마치 무기처럼 들고 휘둘렀다.
그래도 너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원래 그렇게 아픈 건 줄 알았다.
숨이 막히고, 가라앉을 줄 알면서도,
그게 해방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거라고 믿었다.
나는 너를 좋아했고,
그 감정에 잠겨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무섭도록 너를 원했다.
사랑이란,
이토록 숨 막히는데도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안도하게 되는 감정이구나.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왔고,
나는 그 물결에 휩쓸려 한참을 떠다녔다.
이 사랑이 옳은 걸까. 그건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감정의 파도는 결국 나를 삼켰다.
그런데도, 좋았다. 정말로.
잠겨 죽어도 좋을 만큼
너였으니까.
(사진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