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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흐림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하루가 끝날 때, 그저 흐린 마음 하나 남아서


요즘은 그렇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게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간다.


창 밖은 새벽이다. 오늘도 새벽에 눈을 떴다. 해가 뜨기 전의 하늘은 늘 같은 색이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희미한 회색. 아무 말도 없이, 또 하루가 흘러가는구나.


기지개를 펴지도 않고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난다. 익숙하게 젖힌 커튼 사이에는 어제와 똑같은 풍경이 고요하게 자리해 있었다.


책상에 앉아,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잡히는 대로 펜을 들어 아무 말이나 휘갈겼다. 순서도,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말들. 그 사이에서 이상하게도 낯익은 감정이 고개를 든다. 나였던 것 같기도, 너였던 것 같기도 한 무언가. 흘러나온 문장들이 얼굴을 가진다. 이름 없는 기억이 번져 나온다.


기억 또한 흐릿하다.

분명 한때는 선명했던 감정들인데, 지금은 축축하게 번진 사진처럼 어디까지가 진짜였는지 알 수 없다.


무심코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댔다.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규칙적인 박동이 손끝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심장이 뛰는 게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데, 그 증거는 왜 이리 무덤덤할까.


잠들면 사라질 것 같다. 사라질 것 같은게 나인지, 아니면 이 세상인지. 그게 누구든 괜히 무서워진다. 그래서 의미도 없는 카페인을 들이붓는다. 쓴맛에 익숙해지니 그저 뜨거움만 남는다. 나를 계속 흔들고, 깨우고, 다시 멍해지는. 몸이 피곤해져야지만 잠들 수 있다.


차라리 더 아프면 괜찮아질까.

더 선명하게, 피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이 괴로움 안에서만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겨우 느끼며

나는 기꺼이 그 안에 머무르고 만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별일 없이, 무사히.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게.


나는 아직 흐려진 상태로 남아 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일기예보처럼, 오늘도 서울은 흐리다.


나도 그렇다.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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