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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나는 너를 사랑했어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누구나 한 번쯤,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사람을
오래 사랑한다고


처음 너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아플 줄은 몰랐다. 설렘과 기대,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작은 안부 한 마디면 충분하다고 느꼈기에.


그땐 너의 미소 하나에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고, 핸드폰 화면에 뜨는 네 이름만으로도 세상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너도, 조금은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너의 마음은 점차 멀어져 가고,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빤히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졌고, 네가 보낸 것 같던 알림이 사실은 다른 사람이었을 때, 가슴이 턱 막히는 듯한 허망함이 몰려오곤 했다.


기다림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이제는 알 수 없다. 나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그만하자고 말한 적도 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이제 그만 아프자고 다짐한 숱한 날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점점 커져갔고, 버려야 할 감정들은 자라났다.


너의 아무 뜻 없는 웃음 한 번, 잠깐 스친 시선 하나에도 내 결심은 다시금 무너지고 만다.


'혹시'라는 가장 비겁한 희망

혹시 오늘은 너에게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 혹시 오늘은 내가 조금쯤 보고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아무 말 없이 잠든 너를 원망하면서도, 이렇게 변해버린 내가 미워지는 밤. 명확하지 않은 우리의 사이가 가장 나를 아프게 한다.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어쩌면 어떤 의미도 없을.

그런데도 나는 이 관계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너의 마음과 달랐다는 걸 안 순간, 모든 게 산산히 부서졌다.


너를 탓할 수는 없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수없이 되새겼다. 내가 더 좋아한 것 뿐이라고, 내가 혼자 앞질러 간 것 뿐이라고. 그런데도 널 미워하게 되더라.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괜찮은 듯 살아가는 네 모습이 너무 잔인해서. 왜 나는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걸까. 왜 나는 네가 웃을 때마다 그걸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면서도, 그게 보고 싶어 다시 너를 향해 시선을 옮기는 걸까. 그 모든 감정을 안고도, 난 널 미워해선 안 된다.


어쩌면 내가 가장 미워진 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상처를 감수하고 단념하겠다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여전히 나는 너의 방향을 향해 서 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었다.

우리, 대체 무슨 사이었냐고.


하지만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독하고

나를 망가뜨린다는 걸.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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