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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물든 고백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한낮의 햇빛이 쪼개져 눈을 찔렀다. 그 빛 속에서, 여름은 나를 몰래 데리고 네게로 흘러가고 있었다.


쪼개진 햇빛이 눈부셔 잠시 눈을 가렸다. 뜨겁게 달궈진 운동장에는 여름 특유의 풋내와 축구공을 차는 남자애들의 땀 냄새가 뒤섞여 흘러왔다. 합창하듯 울어대는 매미 소리 한 가운데서, 운동장에 모인 무리 사이로 환호가 터졌다.


그 사이에서 키가 큰 한 남자 아이가 골을 넣고는 두 손을 하늘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 구릿빛으로 달궈진 피부, 윗옷으로 얼굴을 훔치다 드러난 복근.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췄다. 시합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아이만을 눈으로 쫓았다. 그러다 "조심해!"라는 외침과 함께 축구공이 내 쪽으로 날아왔다. 놀라 움츠린 나에게, 그 아이가 걸어왔다.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내가 애들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

다정한 말투에 놀란 가슴이 금세 진정되는 걸 느꼈다.


그날 이후,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그는 먼저 인사를 건네곤 했다. 그러다 매점에서 마주친 이후로, 함께 매점을 가는 사이가 됐다. 그렇게 하교길도 같이 걷고, 버스를 함께 타 창밖을 바라봤다. 체육 대회 날에는 그의 짐을 맡아주느라 한참을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언젠가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사실 그날, 네 옆에 있는 게 너무 좋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교길에 말을 걸어오는 너에게 최대한 덤덤한 척 대답했다. 말을 많이 뱉으면 마음이 들킬까 봐. 너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앞서가던 여자애들 무리가 부르자 그 쪽으로 걸어갔다. 부르고 싶었지만, 끝내 너의 이름을 불러 붙잡지 못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여름방학 전날이 되었다. 여름이 끝나면 우리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겠지. 길고 긴 여름처럼, 우리는 긴 평행선을 그려가겠지. 그때 전하지 못한 마음이 깊은 후회로 남는다.


그 여름방학 전날, 너에게 건네려던 편지가 있었다. 복도를 돌아 네 반 앞에 섰을 때, 학교에서 가장 예쁜 여자아이에게 수줍게 고백하던 네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네게 닿지 못한 이 편지가, 늦은 여름의 잔향처럼 너의 마음 한켠에 남기를. 나는 여전히, 그 계절의 한가운데 서 있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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