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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계절을 왜곡하고, 상실은 그 사랑을 완성한다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너 없는 여름은 너무 길어


그날의 하늘은 이상할 만큼 붉었다. 해가 늦게까지 지지 않았고, 저녁에 비치는 태양빛이 아릿하게 다가올 무렵, 옆에 있는 너를 보았다. 나는 조금만 더 이 순간이 오래 머물러 주길 빌게 되었다. 우리는 교회 앞 벤치에 앉아 웃기도 하고, 서로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눈을 맞추기도 했다. 그 침묵 속에 모든 대답이 들어 있다고, 나는 믿었다.


겨울이 왔을 때는, 눈을 맞으며 입김으로 손을 녹였다. 약속 장소로 걸어가던 길은 한 걸음마다 숨이 흰 김이 되어 날아갔다. 그때, 멀리서 나를 본 네가 두 팔을 벌렸다. 나는 그 안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바람 소리가 사라졌다. 겨울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너의 온기는 그 계절의 법칙을 무너뜨렸다는 걸, 너는 알까.


그 시절의 하루는 너무나도 짧았다. 시계의 초침은 늘 앞서 달렸고, 함께하는 시간은 숨을 참는 것처럼 금새 아쉽게 끝나버렸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 순간을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긴 긴 터널 같다. 영원과 순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묘한 착각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왔다. 세상은 똑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여름밤의 벤치도, 겨울밤의 골목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곳에 너가 없었다. 그 사실 하나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같은 빛, 같은 바람, 같은 공기 속에서 나는 홀로 다른 세계에 떨어져버린 듯한 기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내 안에서 시간은 엉켜버린 듯한.


사람들은 말한다. 놓아야 하고, 잊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너와 함께한 그 순간을 붙잡고 있다. 어쩌면 평생 놓지 못할 지도 모른다. 잡히지 않는 것을 붙드는 마음이 바보 같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너와의 기억이다.


너와의 사랑은 계절의 길이와 무게를 바꾸어 놓았다. 여름밤은 너무 길었고, 겨울밤은 너무 짧았다. 그리고 상실은 그 뒤늦은 계절 속에서 사랑을 완성시켰다.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만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랑. 그것이 나를 비틀어진 이 시공간에 머물게 만든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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