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어느 날 바람에 툭 치이듯 떠오르기도 한다. 그건 아마 너무 조용하고도 너무 깊게 내게 스며들어있던 기억이기 때문이겠지.
아스라이 사라졌다 여겼던 기억들이 이따금 내 마음의 창을 두드릴 때, 나는 깜짝하고 놀라곤 한다.
그리움은 원래 그런 식으로 찾아온다. 느닷없고 무례할 만큼 선명하게.
너를 처음 좋아하게 된 순간 내 마음은 꼭 민들레 홀씨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너의 말 한마디와 웃음 한 조각, 바람에 머리가 휘날리는 모습에 내 마음이 줄줄이 매달리게 된 것 같다.
그러곤 바람이 불었다. 내 마음은 홀씨처럼 떠올라 네 곁으로 날아갔다.
물론 닿지 못했지만
너는 모른다
어느 여름밤, 불 꺼진 창가를 향해 내가 몇 번이고 마음을 날렸다는걸.
어쩌면 민들레처럼 가벼워지길 바란 걸 수도 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너를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 써 내려간 이야기인 탓일까.
상대가 없는 사랑의 문장들은 점차 지워져갔다.
결국, 너와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간만이 흘러갔다.
이별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사귀지도 않았는데 헤어질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마치 열 번의 이별을 겪은 것처럼, 그렇게 아팠다.
기대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접은 마음도,
너의 옆자리가 비어있는 걸 확인하고 안도한 날도,
너에게 보내지 못한 인사 하나도 목 안에서 맴돌았다.
그대를 좋아하던 계절에
나는 늘 바람을 기다렸다.
혹시라도 내 마음이 민들레 홀씨가 되어
그대 창가에 닿을 수 있을까, 하고
지금도 누군가의 창 앞에는 말없이 떨어지는 마음 하나쯤 있을 것이다.
사랑은 꼭 표현되지 않아도 존재하는 거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홀씨 하나가 바람결에 실려
그대 마음에도 닿기를 바란다.
비록 그것이 너무 늦은 봄이라 해도 말이다.
(사진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