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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컨설턴트 Oct 21. 2016

옴므파탈 나뭇꾼

나와 내 일을 설명할 단 한 줄은 무엇일까?

그는 절대 찾기가 쉽지 않은 꽤 큰 연못이 있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도끼를 놓치면 연못에 빠질만한 위치에 있는 나무를 골라서는 굳이 거기서 도끼질을 합니다.

아무리 봐도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을 했던 사람. 이 사람이 결코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근거는 또 있습니다. 

연못에 산신령이 있을 거란 걸 미리 예측 했습니다.

용왕 흉내를 내는, 절대 정상은 아닌 듯한 산신령의 심리를 꿰뚫어 별별 도끼를 다 내놓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도 치밀한데, 오늘날까지도 정직함의 상징으로 남아있을만큼 철저히 자신의 본성을 숨겼습니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저는 감히 이런 추리를 해봅니다. 아마도 이 분은 선녀의 옷도 훔쳤을 겁니다. 빠뜨린 도끼를 산신령이 잠수해서 찾아 줄 정도의 규모와 풍광을 갖춘 연못이 있는 산이 대한민국에 그리 흔치 않습니다. 선녀라면 당연히 그런 곳에서 목욕을 하지 않았을까요?

꿩 먹고 알도 먹은, 정직함의 대명사이자 절도범인 옴므파탈. 그의 직업은 나뭇꾼입니다.

(금도끼 받은 나무꾼과 선녀 옷 절도범을 동일인으로 가정한 것은, 순전히 나의 창작임을 밝힙니다. 혹 동심을 파괴하지는 않을까요?).


나뭇꾼은 정말 정직해서 금도끼 은도끼를 마다했을까요? 저토록 총명하신 분이 그럴 리가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죠. 아무래도 산신령이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소통을 잘 모르는 분이셨던 게 하나의 원인인 듯합니다. 당최 이유를 말할 기회를 주지 않으니 말이죠.



산신령: “이 금도끼가 네 도끼냐?”

나무꾼: “아닙니다. 저…….”

산신령: (말을 끊는다) “그럼, 이 은도끼가 네 도끼냐?”

나무꾼: “아닙니다. 그러니까…….”
산신령: (또 말을끊는다) “이 쇠도끼가  도끼냐?”
나무꾼: “네,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산신령: (듣지도 않고 이제는 아예 자신이 결론을 내린다) “어허, 착한 성이로고. 내 너의 정직함이 기특해 금도끼와 은도끼도 다 주겠노라.”



그러곤 뭐라 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산신령은 피곤한지 집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나무꾼은 주는 거니 다 받아 왔을 겁니다. 돌아서서 이런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죠.


“제 도끼는 쇠도끼입니다. 저는 나무꾼이기 때문이죠.”


물건의 가치는 용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일이라도 철학이 있는 사람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그에 따라 일의 가치도 달라집니다. 나무꾼이 사용한 쇠도끼는 그에게 가장 적합한 도구였습니다. 자신에게 알맞은 적당한 무게에다 미끄러지지 않게 특별히 고안해서 만든 자루가 장착된 도끼였습니다. 특히 날카로운 날은 강철로 만들고, 그 위에 연철을 덧붙여 강도와 유연성을 동시에 높인 최적화된 도구였습니다. 그러니 제 할 말만 하는 우리 주변의 그분들과 너무나 닮은 산신령이 말을 끊지 않았다면, 금도끼를 받아든 나무꾼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

“제 도끼는 이렇게 무른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무딘 것으로는 나무를 찍어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좋아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것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좋은 것과 진짜 멋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그냥 보이는 대로 판단하면 되지만, 진짜는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뿐 아니라 나만의 철학이 스며든 것이어야 합니다. 회사생활에서도 생각이 깃든 나만의 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의 틀이 없는 사람은 항상 좋아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것만을 좇아갑니다. 그러다 생각지 못한 시련이 닥치면 곧바로 좌절하게 됩니다.
생각 없이 남이 좋다고 하니 따라 하기도 하고, 단순히 눈앞의 이익만을 좇기도 합니다. 좋아 보이는 그럴싸한 남의 말에 넘어가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막연히 좋다고 생각한 일이 화근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생각 없이 살다 보니 다른 사람의 생각대로 살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선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치열한 전투가 소강상태로 접어들 즈음, 전장의 한갓진 곳에 웬 지체 높은 분의 주검이 보입니다. 곧 전투가 재개될 찰나에 눈부시게 빛나는 그의 황금 갑옷과 진흙 속에 박힌 황금 칼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이럴 때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을까요? 낡아빠진 갑옷과 이빨 빠진 칼을 내동댕이치고 재빨리 그걸로 바꿔서 전투를 치르는 것이 현명할까요?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겁니다.  아무래도 지체 높은 분의 무장이 안전할 것이란 생각도 들겠디죠. 하지만 사려 깊은 사람의 생각은 다릅니다. 황금 갑옷은 적의 좋은 표적이 될 뿐더러 무른 황금 칼로는 강철 칼과 대적할 수 없음을 압니다. 한순간의 짧은 생각으로 스스로 사지로 내모는 상황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현실에서 우리는 사려 깊은 선택보다 생각 없는 선택을 할 때가 많습니다. 가장 값 나가는 금도끼에 마음이 쏠리고, 황금 갑옷과 황금 칼로 무장하고 싶듯, 연봉에 따라 좋은 일과 나쁜 일로 구분하고, 겉보기에 힘있는 부서만을 선망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리 좋아 보일지라도 그 결과가 다 좋은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것으로 치장하더라도 스스로 쌓은 실력과 자신감이 부족하면 결국은 내 자신에게 화(禍)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마음이 급하더라도 실력과 자신감이 충만할 때까지는 내 몸에 맞는, 나에게 어울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좋아 보이는 비싼 것을 사들여 조합하는 방식은, 실력과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들의 조급한 습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명품 쇠도끼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내 일에 대한 명확한 철학에서 나옵니다. 명확한 철학을 갖기 위해선 먼저 내가 처한 환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내 일에 대한‘생각의 틀’은 나에 대한 이해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너무 두리뭉실한가요?


이것을 조금 구체화하면, 

‘당신의 일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에 대한 답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 (구본형, 작가)

학문과 실무의 중간계를 만들어가는 사람. (신병철, 스핑클그룹 대표)

지식 소매상. (유시민, 작가)

세상을 좀 더 다채롭고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사소한 것에서 진정한 현실을 찾아내어 그 저변을 파헤치는 것이 내 직업이다. (얀 칩체이스)

최고 상상책임자. (로프 옌센, 드림 소사이어티 저자)

나는 허구라는 장치를 통해 늘 진실을 알리고자 애썼던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김진명, 소설가)


적어도 이 정도의 ‘틀’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철학이 있는 사람일 겁니다. 우리이들처럼 내 일에 대한 명확한 목적을 세운다면 내게 어울리는 명품 쇠도끼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습니까? 분명 연봉에 따라 좋고 나쁜 회사를 구분하고, 직급과 직책에 연연하는 그런 문제와는 조금 다른 접근방식일 겁니다. 변화관리 전문가였던 고故구본형 작가는 이런 방식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회사가 준 명함에 갇히면 안 된다. 명함은 나의 현재 상태의 일부이고 정체성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건 현재의 정체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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