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리 Apr 30. 2020

제주 #3

설렘 그리고 동행

04월20일 0737



기름이 타는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비행기가 힘을 내기 위해 기름을 태우나 보다. 다행히 비행기가 너무 지연되지는 않았다. 42분이 되었고 예정된 시간보다 7분 늦게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언제나 이 순간은 설렌다.



솔직히 왜 설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제주를 간다는 여행에 대한 즐거운 설렘일까? 날아가다가 떨어질 수도 있을까의 걱정의 설렘일까. 날 수 없는 인간이 날아오를 때 느끼는 오묘한 설렘일까. 확실한 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좋은 설렘이다. 파릇한 제주를 즐기러 간다는 설렘. 아직 한 번도 봄의 제주를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5월의 수학여행 때 제주를 왔지만 사실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곤 버스를 타고 도깨비도로를 지났다던지, 무한리필 돼지고기를 먹은 기억이다. 아 또, 까까머리를 하고 찍은 사진도 생각이 난다.


작년의 햇빛이 아주 강하게 내리쬔 한여름의 무더운 제주, 그리고 눈이 내려 비행기가 지연되고 연착될 만큼 추웠던 한겨울의 제주. 내가 느꼈던 제주는 보통 극한의 계절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 제주비행에 설렘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글을 쓰다 보니 내 설렘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건 분명 파릇한 제주를 즐기러 간다는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다.


한여름의 제주,
한겨울의 제주도 설렜지만
지금의 제주가

아주 적당하니 좋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비행기가 하늘로 오른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영화와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좁다란 길에 자연스레 움직이는 차들. 격자를 나눠 비닐이 쓰여있는 논과 밭들. 여러 색깔의 천장들. 공장들. 널찍한 김해평야를 빽빽이 채운 요소요소들이 내가 하늘에 있음을 알린다. 다행히 얕은 구름을 지나고 나니 날씨가 맑다. 제주는 날씨가 반 이상, 아니 4분의 3 이상이라 생각하는데 오늘 다행히 비 온 뒤 맑음이다. 진하게 젖어있는 아스팔트 위로 내리쬐는 햇살이 떠오른다. 그 햇살은 구름 사이에서 빛 내림이라는 이름으로 뿜어져 나온다. 아스팔트와 빛내림 사이에는 한국에서도 외국을 느낄 수 있는 에메랄드빛 제주 바다가 펼쳐진다. 곧 우리가 바라볼 풍경이다.

구름 위를 올라오니 날씨가 좋다.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장에 ‘오늘 왠지 재밌을 것 같다.’고 써본다. 옆에서 오늘 왠지 재밌을 것 같다고 같이 조잘대던 친구 A의 말수가 줄어든다. 내가 글에 집중했기 때문일까 친구는 잠깐 눈을 감으며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배려를 해준다. 다시 기내에서 흐르고 있는 주변의 것들에 집중해 본다. 수많은 엔진의 소음, 사람들의 이야깃소리, 기장님의 현재 제주 날씨와 안전에 대한 방송. 코로나를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 여러 종류의 소리들. 글을 쓰는 데에 그리고 다시 시작된 A와의 이야기 소리에 충분한 백색 공간을 만들어 준다.


A와 나는 우리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 이번 여행에 대한 계획이 아니라 내일이 지나고 나서의 계획들. 우린 항상 이런 것 따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왔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길을 달리다 가끔 원형 교차로에서 만났다. 우리는 함께 손을 맞잡고 그곳을 수 바퀴 돌며 밥도 먹고 커피와 맥주를 들이켰다. 원형교차로의 몇 시 방향 출구로 나가야 할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한 조언과 함께 각자의 꿈을 찾아 나섰다. 지금 우린 원형 교차로의 중심에서 돌고 있는 중이다. 사실 이번 여행은 A에게 확실한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의 가라앉은 기분을 전환시키는 것. 정말 하나도 몰랐던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 웬만하면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외국인이면 더 좋겠다고 한다. 난 A의 곁에 함께 붙어서 글로 남기려 한다.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하루를. 우리의 인생을.



무튼 우린 제주로 가고 있다.


이전 02화 제주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