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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리 May 07. 2020

제주 #5

이야기 그리고 엔젤

04월20일 0841




제주에 왔다. 제주 공항에 심어져 있는 야자수가 보인다. 제주공항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다. 제주에 오면 항상 보이는 야자수가 반갑다. 광안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야자수이긴 하다. 그런데 제주의 야자수는 조금 다르다. 섬 동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럴까, 제주의 야자수는 괌이나 하와이 해변의 야자수 같고 그냥 평범한 야자수와는 달라 보인다. 생긴 모습은 같지만 육지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국적인 장면을 가진 곳이다.

무튼 제주에 왔다. 왠지 모르게 비행기가 더 빠르게 도착한 거 같다. 누가 그랬다. 같은 결, 같은 색을 가진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그래서 그런가, 비행기에서 친구 A와 난 많은 대화를 나눴고 금방 착륙을 한다는 방송을 들었다.

친구 A와 난 군대에서 만났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잘 연락 중이다. 사진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대화가 잘 통한다.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다 적적할 때쯤 연락을 해본다. 나는 요즘 이런 걸 하고 있다고, 지금까지 또 이런 걸 해왔었고 앞으로는 이걸 하고 싶다고. 그럼 나도 말한다. 나는 이렇게 산다. 이걸 했었고 앞으로는 이걸 하고 싶다고. 생각이 깊어질 때쯤 만나는 ‘인생메이트’다. 항상 그렇듯 우리의 이야기에는 답이 없다. 그 답이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도보여행을 했었고 전포의 카페에서 커피를 들이켰다. 때론 맥주와 피자였다.


우린 그렇게 우리의 인생이 담긴 이야기를 즐겼다.




커피템플, 창문에 그려진 격자가 조금은 눈을 아린다.




렌터카를 빌리는 곳으로 태워줄 셔틀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리의 버스는 ‘엔젤렌트카’가 적혀있는 버스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다. 나는 파란색보다는 조금 더 연한, 하늘색보다는 조금 더 진한 버스를 찾고 있다. 푸른빛의 버스가 우리를 태워갈 거라고 연신 말해댄다. 그러더니 친구 A가 말한다.


“엔젤이 하얗다는 편견은 버려야 해.”


엔젤은, 그러니까 우리말로 천사는 원래 하얗다. 천사는 어깻죽지 양 쪽으로 하얀 날개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천사를 본 적은 없을 거다. 천사는 실존하지 않으니깐. 그렇지만 보통 천사를 하얗다고 생각하고 있다. 본 적도 없는 천사를. 천사는 하얗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악마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도 있다. 천사의 날개는 없을 수 도 있으며, 가령 있다고 하더라도 모터가 달린 날개 일 수도 있다. 갑자기 경운기에 시동을 걸듯 줄을 잡아 끌어 날개에 시동을 걸지도.


결국 버스는 왔고 아주 일반적인 45인승 관광버스다. 하얀 에이포 용지에 ‘엔젤렌트카’, ‘카카렌트카’ ‘또무슨렌트카’가 가로로 읽혀지게끔 3줄로 정렬되어 차창 앞 유리 왼쪽 하단에 붙여져 있다. 우리는 일반적인 버스에 올라 달달 거리는 엔젤의 모터 소리를 들으며 색깔이 하얀지 파란 지, 날개가 있는지 없는지 확실치 않은 ‘엔젤’ 렌트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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