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는 훌쩍 떠나는 것을 즐겼다. 지하철을 타고 훌쩍 오이도에 가기도 했고, 기차를 타고 훌쩍 춘천에 가기도 했다. 마음이 동하면 수업을 빠지고 훌쩍 떠났다. 한 번은 직장인이 된 선배 차를 타고 밤늦은 시간 강원도 어느 바다로 가서 일출을 보고 돌아온 날도 있었다. 다음 날 수업은 모두 자체 휴강. 하지만 이제 더는 ‘훌쩍’ 떠날 수 없는 직장인이 됐다.
훌쩍은 어렵지만, 차근차근 계획하고 미리 조율하면 떠날 수 있었다. 남의 돈을 번다는 것은 남에게 내 시간을 내어 준다는 의미이기에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돈이 남았다. 떠날 수 있는 시간은 줄었지만 떠날 때 쓸 수 있는 돈이 늘었다. 지하철, 기차, 선배 차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떠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갖게 됐다.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를 쓰려해도 일주일을 통으로 쉰다고 말하기는 눈치가 보였다. 휴가를 쓴다는 것은 내 몫의 일을 누군가 대신 떠안아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미안해서였다. 그렇다고 2일, 3일만 쉴 수는 없었다. 그저 합격했기에 들어온 회사는 내가 바라던 일이 아니었기에 돈에서 의미를 찾아야 했고, 그 돈이 나를 가장 즐겁게 해주는 것이 여행이었다. 멀리 떠날 돈이 있으니 멀리 떠나야지 않겠는가. 내가 멀리 떠나면 동료도 내게 일을 맡기고 멀리 떠나리라 믿으며 이번에는 호주로 떠났다. 일주일을 통으로 쉬는 7박 9일 일정이었다.
호주에서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나를 중국인으로 오해했다.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러했고 길에서 말을 걸어오는 사람, 상점의 점원들이 그러했다. 드물었지만 몇몇 한국인마저도 내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Are You Chinese?’ 대화의 첫 시작이었다.
시드니의 본다이 비치에서 브론테 비치까지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낯설지만 익숙한 말이 들렸다. ‘한국에서 오셨죠?’. Chinese가 아니고 한국?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용감해져 입 밖으로 작은 목소리를 꺼내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순간이었다.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인 아저씨 한 분이 서 계셨다. 나처럼 혼자인. '아저씨'이기에 망설이기는 했지만 사람 많은 산책길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함께 걷게 됐다.
아저씨는 정년퇴임 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한 달 일정으로 호주에 배낭여행을 오셨다고 했다. 이제까지 가족을 위해 헌신한 자신에게 주는 포상 휴가라고 하셨다. 게다가 숙소도 전부 유스호스텔을 예약하셨다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년퇴임 후의 여행이라면 패키지여행을 떠올리기만 했던 내게 아저씨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숙소도 호텔이 아닌 젊은이들을 위한 숙소, 그것도 6인실 또는 8인실에서 주무신다니! 배낭여행은 젊은이의 특권이라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와장창 깨졌다.
그즈음 나는 배낭여행은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퇴사 후 세계 일주를 고민하고 있었다. 읽는 책은 모두 세계 여행, 배낭여행에 관련된 책이었고 ONE WORLD 티켓을 알아보며 어떻게 퇴사를 선언할지 연습해보기도 했다. 그런 내게 아저씨는 충격 그 자체였다. 정년퇴임 후에 배낭여행을 할 수 있다니! 지금밖에 할 수 없다고 단정했던 건 아직 학생 때의 모습을 버리지 못해 책임에서 도망치려는 미성숙한 자세 또는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게 아저씨는 쐐기를 박았다.
“호주 여행을 해보니까 세계 일주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가족들이 보내만 준다면. 한 번에 세계를 다 도는 게 어려우면 지금처럼 반년에 한 번씩 한 달 여행을 할까도 싶고.”
아저씨와 나는 반나절을 함께 걸었다. 브론테 비치에서는 신발을 벗고 발을 바다에 적시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혼자였다면 수건이 없으니 바라보기만 했을 나였다. 언젠가 다시 와야겠다는 결심은 지켜지지 않더라며 최선을 다해 지금을 즐겨야 한다고 양말을 벗는 아저씨 영향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돌아온 뒤 아저씨는 저녁을 사주셨다. 바게트 샌드위치와 와인을 사서 잔디밭에 앉았다. 아저씨답게 젊은 저녁 식사였다.
한국이었다면 분명 60살의 낯선 아저씨와 함께 걸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여행에서는 가능했다. 아저씨에게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법을 배우고, 먼 미래에 아저씨처럼 여전히 걷고 있을 내 모습을 그려본 것만으로도 너무 귀한 시간이었다. 내가 서울로 돌아온 뒤 여전히 호주를 걷고 계시는 아저씨는 유스호스텔의 컴퓨터를 이용해 종종 내게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내가 가보지 못한 호주 곳곳의 사진과 함께.
한동안 잠잠했던 이메일은 반년 정도가 흐른 뒤 불쑥 도착했다. 멋진 아저씨답게 멋진 소식이었다. 한 사찰에서 안내자로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그리고 나는 답장을 보냈다. 아저씨 덕분에 무모했던 퇴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제목의 사진은 Unsplash의 berenice mel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