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린 제주, 무엇보다 당신들

나를 들여다봐 주어서 고마워

by 이너위키InnerWeaki

나를 살린 당신들을 평생 기억할 겐


그들을 만난 건,

고통에 몸부림치던 제주에서의 어느 날이었다.


미국에서 다니던 NGO를 퇴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입도한 제주의 삶이,

이제 막 끓어 올라,

간을 보려던 찰나,

차디 찬 현실 같은 냉수가 훅 끼얹어졌다.


입사하고 2주도 안된 시점부터,

상사는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회사의 특성상,

상사들이 2년을 주기로 교체되었고,

유일하게 상사보다 늦게 입사한 이는,

오직 나뿐이었다.


그는 어쩌면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아니면 다른 직원들에게 보일 기강을 위해,

나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소외시켰다.


직원들은,

어떤 이는 나를 챙겼고,

대다수는 그저 안타까워했으며,

심지어 팀장조차도,

먼발치에서 나를 바라볼 뿐,

고개를 돌리는 시선이,

너무도 명확히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대개,

버티라고,

1년은 버텨보라고,

보이지 않는 선 너머에서,

선이 아닌 벽이 있는양,

발은 붙은 채로,

고개만 내밀고 위로했다.


새로운 삶을 위해,

그리고 제주라는 낙원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입도했던 나는,

압도하는 주상절리나,

이국적인 설렘을 풍기는 야자수조차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막 집계약까지 끝냈던 터라,

그만둘 수도,

그렇다고 갓 입사한 이로서,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매일을 울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도했다.


회사에서는 멀쩡이 있다가도,

오피스텔 복도에만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집안은 엉망이 되어갔고,

밥을 먹기조차 귀찮아졌고,

침대에 지쳐 쓰러져,

천장을 보며 내리 울었다.


어쩌면 이런 게 우울증일까,

덜컥 겁이 났다.


다르게 살아보자고 마음을 먹다가도,

꺼름직한 불안과 절망의 기운이,

발끝부터 잠식해 올 때면,

나는 도망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썩어 들어가는 발끝을 응시했다.


당시의 나는,

아무리 쫓으려 팔을 휘저어도,

자꾸만 덕지덕지 달라붙는 우울증이,

너무도 두려웠다.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상반신은 물 위로 숨을 쉬고,

하반신은 물아래 잠식해 가라앉는 채로,

정말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너무도 두려웠다.


이런 쓸모없는 딸에게,

그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쓴 부모님이,

얼마나 불쌍한가.

그 소모와 낭비가 안타까웠다.


내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그들의 노력과 시간 그 모든 것들이,

낭비가 되고 말 것을 걱정했다.

그랬기에 나는 감히 죽지도,

그렇다고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혼돈을 받아 들고,

어찌할 바 모른 채,

발을 동동 거리며,

울기만 했다.


그때,

혼돈 속에서,

불안과 처절한 외로움에 떨고 있던,

외로운 나의 손을 잡았던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재료.HEIC


#선임


팀장도, 직원도,

그 누구도 관심이 없던 내게,

처음 손을 내민 것은,

나보다 1년 먼저 입사한 선임이었다.


선임은 우울에 빠져 있는 나를 일으켜,

쌔근거리는 콧김에 밤이불을 들썩이는,

회사 앞바다에 데려갔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모래사장을 걷고 또 걸었다.


그녀는 혼자 시간을 보낼 나를 걱정하며,

나의 밤을 함께 채웠다.


그녀는 나를 먹이고,

하나부터 차근차근 일을 가르치고,

대표 앞에 서길 두려워하는 나를 위해,

보고할 때마다 나의 옆자리를 지키며,

대표의 짜증과 화를 함께 받아냈다.


그녀는 나의 회복의 첫 문을 열었다.


#행정직원


선임의 지극정성에도,

한번 무너져 내린 마음이 힘을 잃어,

채 다시 쌓이지 못하고 바스러지기를 반복해,

나는 결국 퇴사를 통보했다.


그때 행정직원이었던 언니는,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말이면 나를 불러내어,

차를 태우고는,

바다로, 산으로, 페스티벌로 데려갔다.


그녀는 나를 잡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너머에서 들려오는 재즈 공연을 베개 삼아,

고요히 흔들리는 파도 너울을 들었다.


어쩌면 그때였을지 모르겠다.

검게 잠식된 밤바다와 밤하늘의 심연,

그 경계를 응시하던 나는,

공허와 행복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선 채로,

내가 발 디딘 땅을 인식했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개처럼 가리어져 있던,

주변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고,

우울에 절어 있던 진창을,

나는 모래사장을 걷듯,

어느샌가 빠져나와 있었다.


#남자친구


그리고 나의 회복에 방점을 찍은 사람,

나보다 나를 사랑하는 그릇이 더 큰,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기꺼이 사랑하고 아끼기를 아까워하지 않는,

나의 남자친구가 나를 온전히 꺼냈다.


미련이 남았던 건지,

바라왔던 것과는 상반되게도,

나는 우울감을 온전히 떨치지 않았다.


어쩌면 우울이라는 알량한 도피처를 방패 삼아,

세상과 경계 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끝없이 도망치려 했는지도 모른다.


우울의 구덩이에 발을 담그고 있던 나를,

그는 꺼려한다거나,

저울에 달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오물이 묻은 나의 발을 정성스레 닦았다.


이쁘다, 사랑스럽다, 귀엽다는 말로,

먼지 구덩이에 구르던 나의 과거를 닦았고,

혼돈 속에서 나도 나를 어찌할 바 모른 채,

과거에 발목이 잡힌 지도 모르고 발악하던 나를,

함께 초조해하면서도,

나를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그는 아이가 부모를 대하듯,

내게 자신의 세상을 온전히 믿고 맡겼고,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내 손에 들린 혼돈을 내려놓고,

그의 마음을 받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우울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완성 확대.HEIC


우리는 함께 수많은 고난을 헤쳐갔다.

낯선 땅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마주했고,

서로의 부족함을 끌어안았다.


때로는 굳은 결심으로,

또 때로는 등에 떠밀려 타의로,

우리는 서로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부딪히는 와중에도,

서로를 처절하게 이해해보고자 했고,

이제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주기적으로 보지 않으면 어딘가 가려운,

가족이 되고야 말았다.


마침 이번 만찬 약속이,

그들 중 한 명의 생일이었고,

나는 부모님의 생일상을 차리듯,

나를 기꺼이 껴안아 주었던,

그들 모두를 위해,

만찬을 차려냈다.


고통에 몸부림칠 때,

그런 기도를 적은 적이 있다.


우리 회사에 천국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으며 미리 감사가 나왔다.
내게 이곳에서도 4141 같은 가족을 주실 것도,
삶의 의미를 찾게 하실 것도,
소명을 찾고 행복도 감사도 기쁨도 평안도 찾게 하실,
하나님께 미리 감사하니,
그제야 다시 사는 것 같았다.
아버지 안에서 비로소 다시 쉴 수 있었다.


디저트.HEIC


뒤를 돌아보니,

나의 기도는 이루어졌다.


끔찍했던 제주 회사에서,

나는 천국을 이루었고,

제주 가족이 생겼으며,

삶의 의미와 소명을 찾았고,

감사와 기쁨,

그리고 더 없는 평안을 누렸다.


삶은 끝까지 가보아야 안다.

처절한 고통은,

처절한 만큼,

처절한 행복을 안긴다.


삶은 끝이 날 때까지는,

결코, 그 누구도,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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