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괴로운 선택과 결정의 연속

남은 선택지가 나쁜 것, 덜 나쁜 것만 남았을지라도

by 이너위키InnerWeaki

최근 나는 새로운 보직으로 이동했다.

그 과정이 정말 기적과도 같았고,

순전한 나의 능력과 의지는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감사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잠깐의 축하와 감사는,

인생이 늘 그렇듯,

잠시 곁을 내주기가 무섭게 떠나갔고,

남은 것은 냉정한 현실이었다.




나는 평생을 사랑을 갈구하며 살았다.

비단 연인 간의 사랑만이 아닌,

나를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

나아가 내가 발 디딘 사회와,

그렇지 못한 머나먼 세계까지도,

나는 모든 곳에서 사랑이 흘러넘치기를 바랐다.


그러나 세상은 비정했다.

사람들은 인정을 받는 것에 혈안이 되어,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고 느끼면,

그것이 사실에 기반했건 아니건 관계없이,

분노를 쏘아대고 문을 닫아걸었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은 옳다고 여기면서,

나와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비난하고 무시하고 저주했다.


일이라는 프로정신을 방패 삼아,

다른 이에게 친절하지 않았으며,

너무나도 쉽게 다른 이를 무리에서 내쫓았다.


또 그들은,

나와 관련 있는 일, 사람이 아니면,

같은 인간이라는 종(種)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죽어나가든, 굶든, 고통을 받든,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일하고 싶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도울 수 있는,

꿈꾸던 분야로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보수적인 집단과 냉정한 사람들을 보며,

절망하고 분노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면,

보수적인 사회가 문제다,

사람들의 굳어버린 마음이 문제다,

이 사회는 더 이상 바뀌지 않는다,

결국 세상은 이렇게 망해버릴 것이다,

절망이라는 체념을 꿀떡 삼켰다.


그러나 결국,

내가 욕하던 그들 가운데에는,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은 채,

손을 놓은 내가 있었다.




그러나 어른으로서,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면,

우리의 선택은 거의 무한하다.


선택이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빈번히,

두 가지 나쁜 것 중에서,

덜 나쁜 것을 선택해야 하지만,

여전히 선택할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

나는 친구의 말에 동의한다.

세상에는 진정 억압적인 세력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매 순간,

이러한 세력들에 대응하고,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 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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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 대로 해야만 한다는 자괴감과,

나의 마음을 감추고 동조해야 한다는 절망에,

우울한 토요일을 보내고,

나는 나를 먹이기로 했다.


다른 이들을 먹이는 것처럼,

화려한 만찬을 사전에 계획하지는 못했더라도,

나에게 내올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기꺼이 양보했다.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고,

나는 갈증에 허덕이는 나에게 줄,

또 다른 만찬을 찾아냈다.


나는 내게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믿었다.

나는 선한 대의를 위해 달렸고,

인류애를 갈망했으며,

그러니 이런 갖은 노력에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일 거라고,

오만하게도 도망하려 했다.


나의 고질적인 도피에 대한 의존이,

또다시 꿈틀대고 있었다.


지금 일하는 곳은,

나의 다섯 번째 직장으로,

나는 매번 회사를 다니거나 일을 할 때면,

불만이 생겨났고,

이직할 곳을 검색하며,

도피처를 찾아 헤맸다.


나의 불만은 대략 이러했다.

일이 대의(大義)와는 거리가 멀다,

너무 재미가 없다,

일이 단조롭고 지루해 6시만 보게 된다,

회사에 비전이 없다,

상사들의 인성과 실력에 배울 점이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회사가 너무도 반인류애적이다,

나의 능력에 비해 월급이 적다, 등.


나는 더 나은 곳을 위해,

현재를 불평했다.


나의 삶은, 언제나,

무언가의 지망생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 당시 내가 살아 내기 위한,

숨구멍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희망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지금 발 디딘 현실을 견뎌낼 자신이,

내게는 없었다.


그러나 결국엔,

나는 모든 문제로부터 도피하고 있다는,

그 짤막하고도 단호한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음을,

시인해야 했다.


매번 압도하는 현실에 뒷걸음질 치며,

나는 할 수 없다고,

세상은 원래가 악하고,

인간은 구제불능이며,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라고,

또다시 나는 도망갈 문을 찾아 나섰다.


신앙이 있는 나는,

하나님이 시켜서 할 수밖에 없었다는,

유일한 나의 원망의 대상을,

늘어지게 붙잡고는,

그가 내게 준 자유의지를 포기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세상은 악하다. 진정 그렇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여전히 악한 것들 중에서도,

선에 근접한 선택지들은 항상 있었다.


상사를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기,

일로 짜증을 내기보다 친절하기,

피드백을 받고 분노하기보다 감사하기,

왕따 당하는 이를 모른 체하기보다 다가가기,

부조리에 포기하기보다 기도라도 해보기,

무심하기보다 환하게 웃기.


결국 한 인간의 일생은,

그의 선택들의 발현이었고,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 모른다.


나의 선택이,

곧 나라는 사람이었다.


나는 평생을 도망했다.

먼저 다가가 사랑하면 상처 입을까,

내가 먼저 사람을 내쳤고,

바꿀 수 없는 조직이라면 도망갔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옆에서 타이르고 설득하기보다,

서서히 멀어지기를 선택했다.

그것이 쉬웠고, 덜 고통스러웠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뚫고 나가야 하는 때라는 걸,

불평은 접어두고,

내게 주어진 자유의지의,

무한한 가능성과 힘을,

인지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느낀다.




제주에서,

오랜 공백을 깨고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이 내게 선물해 주신 책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였다.


당시에는,

인간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

이것저것 열심히 도전해 보고 즐겨라,

대강 이런 내용이겠거니 싶었다.

그래서 솔직히 감동도 덜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문득 그 책이 생각났다.


어쩌면 하나님은 내게,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라는 것은,

어떤 상황이 주어졌든 간에,

내가 꿈꾸는 선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도피하기보다는 선택함으로,

꿈꾸는 세상에 가까이 갈 수 있음을,

단순하지만 멀리 돌아와 만나게 된,

그 자명한 진실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물론,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여간 귀찮고 고통스러운 게 아닐 것이다.

환하게 웃다가 고통을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하고,

남을 돕다가 떠넘기는 일에 깔리기도 하고,

모두를 이해하다 고립되기도 하고,

정의를 추구하지만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의 연속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내가 믿는 희망의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비록,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친 땅을 홀로 걸어갈지라도,

나의 뒤에서,

비바람을 막아주고,

어둠이 내린 밤을 밝히는,

호위무사이자 나의 친구인 그가 있다는 걸.


결코 나는 그 길을,

홀로 걷지는 않을 것이라는,

허무맹랑해 보이는 진실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아무도 믿지 않는 희망을,

심지어 나조차도 잃어버리곤 하는 그 희망을,

결국엔 다시 붙잡게 되는,

나의 비밀이다.


아직도 내게는,

수십 년의 가야 할 길이 있다.

선택은 괴롭고,

결과는 두렵지만,

그와 함께라면,

나는 분명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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