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을 기다리는 성숙

미성숙의 총량, 누구에게나 있을 그 시간을 기다리는 성숙함

by 이너위키InnerWeaki


어릴 적 나는,

윤리에 대한 기준이 꽤나 높았다.


무례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이들을 볼 때면,

그것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굉장히 날카로운 독침을 쏘았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남들은 기준을 지키며 살지 않나,

왜 다른 이들에게,

또는 나에게,

저리도 함부로 대하는 것인가.


상대가 느끼는 고통에,

이리도 무감할 수 있나,

의문이 들었다.


그 의아함과 분노를,

이타심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하기에는,

나라는 사람을 너무도 잘 알았다.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완벽주의 성향의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 감정은,

내가 맞다고 여긴,

나의 틀 안에,

나의 주변인들과,

세상 사람 모두를,

한 데 구겨 넣고 싶은,

통제 욕구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 틀 안에 맞지 않는,

때로는 튕겨나가는 이들을 볼 때면,

또는 틀 자체를,

인식조차 못하는 이들을 마주하면,

머릿속은 온통 난장판이 되어,

며칠을 앓아누웠다.


이해하고 싶었다.

저들은 왜 그러는지,

나는 또 왜 이러는지.


나의 친한 친구도 예외는 없었다.

어릴 적부터 개방적이고,

무서울 게 없어 보이던 친구.


평생 요행은 통하지 않았기에,

내기라는 말만 나오면,

긴장부터 하는 나와는 달리,

친구는 대담함을 넘어,

상대를 도발할 줄 아는,

그런 강심장을 가졌다.


밝고 귀여운 성격에,

사람들조차 친구의 곁으로 모여들었고,

나 또한 벌이 꽃에 이끌리듯,

친구에게로 날아가,

그녀의 곁에 맴돌았다.


우리는 참 잘 맞았고,

같이 있으면 세상이 떠나가라 신이 났고,

심지어는 그녀의 대담함이,

내게로도 물이 드는 것 같았다.


이런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즐거웠고 든든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엔,

우리는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어쩌면 이미 강 하나를 사이에 두지 않았나,

그런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재료.HEIC


처음 내 세상의 전부였던 그 친구가,

어쩌면 잘못된 세계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처음 들었던 것은,

이십 대의 어느 순간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날도 친구와 나는,

놀 생각에 여지없이 신이 나 있었다.


한창 수다를 떠는데,

친구가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마치 어제 시켜 먹은 배달 요리를 이야기하듯,

욕망의 이야기를 끼워 넣었다.


나는 당황했다.

내가 아는 친구는,

밝고, 눈물이 많고, 깊이 공감하고,

항상 다른 이들을 칭찬하며,

긍정적으로 말하고,

타인을 응원하는,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저 가볍게,

다른 이를 아프게 할 수 있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이런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나,

정죄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처음에 나는,

어릴 때의 냉정한 성격답게,

윤리적인 문제를 화두에 올렸고,

하나, 하나 짚으며,

화살을 쏘아댔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던 것인지,

친구는 수차례 반복했고,

나는 나의 냉정함에 친구를 잃을 뻔했던,

수많은 경험을 지나,

말을 삼키는 법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한쪽으로는 거부감과,

다른 쪽으로는 이해하려는 필사의 노력이,

끝없이 충돌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너무도 확실했다.

나는 활기차고 밝은 이 친구를,

그 아이와 함께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그 시간 속 우리를,

너무도 사랑했다.


그렇기에 나는,

친구가 상처를 낸 상대와 함께 아파하면서도,

친구의 곁에 남는 선택을 했다.


때로는 침묵으로 방관했고,

겉으로는 웃었으나,

잠시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저항했다.

나는 기다렸다.

다시 친구가 돌아오길 바라며.

부디 더 나아가지 않기를 기도하며.


그리고 만찬의 시간,

친구는 세월의 고통이 스며든,

붉어진 눈가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요리완1.JPG


친구는 벌게진 눈으로,

시간이 얹은 짐이 버거워,

빛이 바랜 얼굴을 한 채,

서두를 꺼냈다.


나도 내가 죄지은 걸 알아.


친구는 모든 것을 정리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내내,

친구의 시선은,

아래를 향했다.


갈 곳 잃은 시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

움츠러든 어깨.


오늘처럼 친구가 작아 보인 적이 있었나,

어쩐지 오늘이 오길 바랐음에도,

마음 한편에는,

서러움이 울컥 올라왔다.


엄격한 시간의 회초리에,

두 종아리 모두,

벌겋게 부풀어 올라,

더 나아갈 힘을 내지 못하고,

친구는 길 위에 주저앉았다.


풀리지 않는 일,

복잡한 인간관계,

반성과 뉘우침.


이전의 걱정 없이 대담했던 친구는,

온 데 간 데 없었고,

세월이 두려워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는,

연약한 생명체가,

내 눈앞에 떨고 있었다.


친구는 우울한 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밝은 빛의 잔상이 아른히 남아 있는 채로,

사이로 고통이 감출 힘조차 없이,

그대로 내비쳐 보내는,

친구의 지쳐 보이는 얼굴을 마주하니,

세월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나,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한편으로,

세월의 심판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내는 친구를 보며,

그녀의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아 주어야겠다,

나만큼은 그래야겠다,

꿀꺽 다짐을 삼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채,

타인을 상처 입히고,

그것이 잘못인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미성숙의 시기를 지난다.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나도 그랬고,

친구도 그랬고,

당신도 그랬다.


물론 미성숙함이,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누구나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적어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본인을 제외한 나는, 우리는,

나의 미성숙한 시기를 떠올리며,

너도 그럴 수 있다,

인내해 줄 수 있는 그런 여유가,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연약한 인간이고,

너도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미성숙, 그 본연의 모습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면,

그저 지켜보는 것이,

힘이 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때로 힘이 들면 뒤로 물러서 있겠으나,

당신을 영원히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그런 너그러운 인내가,

필요하지 않나,

지금의 나도,

앞으로의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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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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