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진 우리를 너무도 사랑한다

힘이 빠진 모든 이들을 존경한다 말하고 싶다

by 이너위키InnerWeaki

우리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정도였다.


그러던 고3의 끝자락,

뚜렷한 기억은 없으나,

우리는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전주로 대학을 가게 된,

친구를 보러 간 것을 계기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져,

세 자매 체제를 구축했다.


우리는 서로의 연애사를 꿰뚫었고,

서로의 취업과 이직,

사업의 시작을 함께 했으며,

각자의 친구 관계마저 짚어나갔다.


그렇게 12년이 넘는 시간을,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한 친구가 전주에서 돌아올 때까지,

내가 미국과 제주에서 돌아오기까지,

묵묵히 일상으로 빈자리를 채우며,

서로를 기다리고 맞았다.


물론 우리에게도,

나름의 시련은 있었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그런 게 있었어?”라고 말할지 모를,

그런 사소한 순간일 수 있으나,

분명 서로가 강하던 시기가 있었다.




세 자매 중,

항상 밝고 발랄했던 친구와는 달리,

다른 한 친구는,

상처가 많았다.


그래서였는지,

그녀는 강인했다.

때로는 거친 말과 행동이,

오랜 시간 그녀를 지키는,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어릴 때 나는,

확고한 소신으로 포장된,

똥고집이었기에,

그녀의 강함과 나의 견고함이,

종종 부딪히고는 했다.


물론 그녀가 내게 상처를 준 적은,

돌이켜 보면 결코 없었다.

그저 같은 기류를 감지하듯,

우리는 되려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조심하고 멎쩍어했다.


그래서 때로는,

셋이 아니면 어색한,

그러나 셋이 있을 때는 완전했던,

모순적이면서도 설렜던,

이십 대 청춘의 곁에,

함께 머물렀다.


그러다 내가 미국에서,

바닥을 치고 완전히 무너졌고,

제주에서 상처가 막 아물어,

새살이 돋아나던 때였다.


나는 이십 대 전체를 쥐고 흔든,

견고했던 나의 자아를,

세월과 환경에 등이 떠밀려,

표면에서 심연까지 난 벽을,

스스로 부수고,

부서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무엇이든지 부순다는 것은,

아프고 괴로운 일이나,

나를 부수고,

심연에 외로이 벌거벗은,

나의 보잘것없음을 직면한다는 것은,

우울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끝없는 발버둥의 연속으로,

다른 괴로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처가 점점 아물고,

오랜 방황이 길을 찾아갈 즈음,

부서진 잔해 사이로,

새순이 돋아났다.


나는 예감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같을 수 없다는 걸.

과거의 강인하고 굳세고,

나를 믿던 견고함을,

더는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나의 자아는,

홀로 이 세상을 떠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이제 사랑을 먹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

누군가에게 기대어 어울리며 살아야 할,

연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나의 미래는 그렇게 흘러갈 것임을,

깊이 깨달았다.


그러나 간혹,

변해버린 나의 모습을,

낯설어하며,

여전히 강했던,

과거의 나의 모습을 기억하던 이들은,

나를 거칠게 대하고는 했다.


그럴 때면,

속은 연약해졌음에도,

나는 의식하지 못한 채,

나도 모르게 버려 놓은,

강했던 페르소나가,

툭 튀어나오고는 했고,

그런 나의 모습이,

이제는 내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서로의 강인했던,

때로는 거칠었던 시기를 이해한다는 듯,

그리고 그녀 자신도,

조금은 내려놓게 되었다는 듯,

돌아온 연약해진 나를,

옛 친구를 대하듯 거칠게 다루지 않고,

변한 모습을 변한 그대로,

나의 세월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녀의 변한 세월의 방식으로.


그것이 내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아마 그녀는 모를 것이다.


꾸며낼 필요 없이,

변해갔던 나의 세월을,

그 자리에서 함께 목격하지 않았어도,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나를 받아냈다.


그 마음이 내게는 넘쳐흘렀다.

그 속에서 어쩌면 나는,

또다시 채워졌는지 모른다.


앞으로 우리는 남은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또는 멀리,

그러나 언제나 함께,

걸어갈 것이다.


우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우리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모습 또한,

우리는 받아들일 것이다.


세월은 원래 그런 것이라면서,

서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그냥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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