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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Apr 15. 2024

혼자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혼자 여행을 하며 알게 된 것.

잠이 많은 편이지만 시간에 쫓기는 싫어 여유를 두고 아침을 시작한다. 그런데도 아침 시간은 어쩐지 정신이 없다. 아이들을 보내놓고 나면 나는 잠시 멍하니 앉아 숨을 달랜다.

짹깍짹깍, 고요한 집안엔 시계소리만 들려온다. 커피 한잔을 놓고 앉아 잠시 멍하니-. 그러고 나면 소란스럽던 마음도, 뭔지 모르게 붕 떠있던 집안의 공기도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아침을 조금 활기차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신나는 음악들이 선곡되는 라디오를 틀어놓곤 했는데 얼마 안 가서 나에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 마음이 들뜨는 걸 싫어한다는 것도.

정말 기쁜 순간도 조금은 차분하게 지나 보내야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는 종종 혼자인 시간을 필요로 했다. 대학시절 답답한 생각이 들 때면 지하철을 타고 아무 역에나 내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 가면 조금은 차분히 내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마음이 힘들수록 조금 멀리까지 가보곤 했는데, 그때 자주 갔던 곳이 의정부역이다. 승강장에 앉아 지하철 여러 대를 지나 보내고 나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조금은 정리되곤 했었다. 승강장야외에 있어서 눈이 오는 날엔 선로 위로 눈이 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혼을 한 후로는 지하철 역에 앉아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다.  내리던 의정부역은 하나의 사진처럼 여전히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다.


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아이들도 많이 자라 물리적인 육아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하루하루가 그저 정신없이 흘러갔던 것 같다. 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아 답답해지곤 했었다.

물론 그때가 그저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엔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 주어진다. 다만 나는 혼자인 시간도 필요한 사람이었다. 한 번씩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전철역이 필요했고, 하루는 무언가에 홀린 듯 강군에게 선언했다. 혼자 여행을 좀 다녀오겠노라고.


내가 여행을 가면 아이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강군의 몫이었다. 그러니 출근을 수도 없어 휴가를 내야 했는데, 강군은 선뜻 그러라며 휴가를 신청했다. 그렇게 정말 3박 4일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강군과 같이 적은 있지만, 혼자 해외여행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육아로 힘들었으니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애초의 결심은 얼마가지 못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일정표를 만들었는데, 간만에 거니 아깝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지고 말았다. 지금도 그때 일정표가 남아있는데, 다시 봐도 여유를 느끼기 위해 여행이라고 보기 어려운 일정이었다. 어쩌자고 비장하기까지 했을까.


아무튼 나는 A4 세 장이 넘는 일정표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지에선 빈틈없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숙소에 돌아오면 반신욕을 하며 몸을 풀었다. 잠자기 전 아픈 다리에 파스를 붙여야 했지만, 나에겐 더없이 호사스러운 여행이었다.


그런데 둘째 날부터 생각지도 못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꾸만 가족과 함께이면 좋겠다 싶어 졌던 것. 좋은 것을 봐도, 좋은 것을 먹어도 그랬다. 마냥 즐거울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허전한 마음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결국 이틀째 되던 날 강군과 통화를 하다 그 사실을 고백해 버렸다.

"혼자이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아."

남은 여행 내내 가족들 생각이 났다. 나는 혼자가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런 내 스스로가 제일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내 가방 안은 가족들을 위한 선물로 가득했다. 정작 내 것은 많지 않았는데, 선물을 줄 생각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때의 여행은 내가 어떻게 변해있었는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지만, 혼자인 것이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 철저히 혼자가 되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보였던 거다.


나는 아내이고 엄마여서 가족과 늘 함께였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혼자인 시간을 갈망해 왔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순간이 나의 선택이었다. 아내이기를 선택했고, 엄마이기를 선택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인생을 선택해 왔었다. 그런 선택을 했던 마음은 잊고, 마치 상황이 흘러 흘러 여기까지 온 것처럼 착각을 했던 거다.


나는 여전히 혼자인 시간좋아다. 다만 지금은 인정하기로 했다. 혼자인 시간이 좋은 것은 함께 할 시간이 곧 찾아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같이 식사를 하고 TV를 보고, 그저 그런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다.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함께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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