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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Mar 29. 2024

언젠가 책방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책방 주인이 되는 거예요.

나는 책이 많은 집에 살고 있다.

덕분에 지금 사는 주택으로 이사오던 날, 이사를 도와주시는 분들께 죄송했던 기억이 있다.

계약을 서재를 미리 보긴 했지만, 책이 겹겹이 쌓여있는 것을 몰라 당황스럽다고 하셨다.

책이 제일 무거운 건데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다며 불만을 나타내셨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불만이라 우리는 추가금액을 지했고, 다행히 이사는 더 이상의 잡음 없이 마무리되었다.


이사를 위해 인테리어를 하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높이의 책장을 설치했다. 꽤 많은 책을 정리했지만 우리가 가진 책은 책장을 다 채우고도 남을 양이었다. 결국 곳곳에 책을 쌓아두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미리 해둔 인테리어도 소용없게 되었다.

다른 짐은 많지 않지만, 책 때문에라도 우리는 영락없는 맥시멀리스트다.


오래전부터 나는 책방 주인이 되고 싶었다.

요즘은 음반만 파는 가게가 잘 없지만, 예전엔 음반 가게 주인도 좋다 생각했다.
SNS 상의 글들도 책이 되곤 하는 시대지만, 어찌 됐든, 책으로 엮어지는 이야기들은 여러 번 정제된 이야기일 거라 믿는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음반을 들으면, 누군가가 신중하고도 조금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것만 같다. 책을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이유다.(물론 개중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렇게 출판과정까지 거치며 번거롭고 정성 들여 하나 싶은 글들이 한 편씩은 있다. 음.)

학창 시절 나는 서태지를 좋아했었다. 학교 앞에 작은 음반 가게가 있었는데,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어서, 앨범이 발매되고도 며칠이 지나야 겨우 받아볼 수 있었다. 요즘은 특정 시간이 되면 전 세계에서 동시에 클릭 하나로 음원을 받아볼 수 있지만, 그때는 감히 상상조차 해 볼 수 없었다. 태지오빠와 나의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오빠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은 멀고도 험했다. (의도하지 않은 신비주의라고나 할까.)
음반 발매 후 며칠은 음반가게에 들러 "태지오빠 앨범 들어왔어요?"하고 묻는 것이 일과였는데, 친오빠의 안부도 궁금해 않던 내가, 매일같이 '우리'오빠를 찾아대며 출석 도장을 찍어댔으니. 얼마 후 주인아저씨는 내 얼굴만 봐도 "아직!" 하고 선수를 치셨다. 그러다 급기야, 자신이 무능해서 미안하다는 심심한 사과의 말을 하기에 이르셨다는. 죄송하게도.
하지만, 태지오빠의 앨범을 제일 먼저 받아볼 수 있는 사람, 그것만으로도 음반 가게 아저씨는 내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때는 집전화와 공중전화의 시대였다. 그러니 '들어오면 연락 줄게.' 같은 약속은 쉽지 않았다. 집전화번호를 남기는 것은, 앨범뿐 아니라 엄마의 야단도 예약해 두는 일이었으니까. 엄마는 책이나 음반에 돈을 쓰는 것에 인하셨는데, 학교 공부를 위한 문제집류를 제외하곤 "왜 아까운데 돈을 쓰냐." 하셨다. 소설이나 시집 같은 책은 공부 아닌 '딴생각'의 영역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렇다고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분은 아니셨다. 엄마에게 인생의 힘든 순간은 언제나 의식주를 중심으로 찾아왔으니, 그런 생각은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요즘은 휴대폰을 벗 삼는 아이들 때문에 소설이든 시든 뭐라도 읽어라 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그 시절엔 마음의 양식보다는 몸의 양식부터 해결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엄마를 원망해 본 적은 없다.

오빠의 중학교 졸업식 즈음이었지 싶은데, 엄마가 나를 데리고 서점에 간 적이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봐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순간이 비교적 뚜렷이 생각난다. 서점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이라던가, 사다리를 꺼내어 책을 정리하던 모습, 서점의 구조와 책들의 배치, 엄마가 나를 기다리며 서 있던 위치까지, 360도 파노라마 기능으로 찍은 사진처럼 그 시간의 풍경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기억이 선명한 것을 보면, 꽤나 특별한 경험이었나 보다.
그리고, 자주 오지 않는 그런 특별한 경험에서 인생의 책 한 권을 만났다 - 라고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나는 어이없게도 엄마 눈치를 보다 영어 문제집 한 권을 골라 들었다.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겨우 고른 책이 영어 문제집이었다니, 정말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불리한 기억은 빨리 잊히는 건지, 왜 그런 선택을 했던가는 기억이 흐리다.
내 선택에 적잖이 실망을 하고도 무슨 오기였던지, 집에 오자마자 마루에 앉아 한글 독음을 크게 따라 읽으며 "디스 이즈 마이 파더, 디스 이즈 마이 시스터!"를 외쳐댔다. 가장 특별한 경험이자, 어이없는 경험이었다.

요즘도 나는 책방 주인을 꿈꾼다.
이런저런 커피가게를 찾아다니는 나지만, 커피 때문에 설렌 적은 없다. 어떤 커피를 마시게 될까, 그런 상상을 하며 가게를 찾을 만큼 커피를 좋아하는 건 아닌가 보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그 시간이 나를 설레게 한다. 커피 한 잔 이면,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말이다. 결국 내가 읽을 책을 기대하며 커피가게를 찾았던 거다.

하물며 책방은 어떨까.
신중에 신중을 기해 정리했을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려고 하는 이들이 저렇게도 많다니, 나는 책방을 갈 때마다 그것이 설레고, 그래서 고맙다.
설렘을 느끼며 갈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것도 매 번.
그러니, 꿈꿀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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