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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역 May 04. 2020

서른 기념 바디프로필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일반인 바디프로필 촬영이 요즘 유행 같기도 하다.
싫증을 잘 내는 성격에, 늘 새로운 이벤트를 찾는 내게 바디프로필이란 목표는 새로운 자극제였다. ‘서른살 기념’은 사실 거창한 이유고, 내 몸에 변화를 줄 계기가 필요했다.


나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라 눈에 보이는 목표나 디데이가 있으면 어제 오늘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바디프로필 또한 그랬다.

몸은 참 거짓이 없고 솔직하다. 내가 먹는 대로, 운동한 대로 몸은 정직하게 말한다.

너 어제 잘 먹었구나, 너 엊그제 운동 잘 했구나.

어떻게 생각하면, 엑셀 수식에 숫자 넣으면 바로 결과값이 나오는 것 마냥, 몸을 만드는 일은 인과관계가 정말 초 심플, 초 단순한 일이다. 인과관계는 심플하나 그 과정이 너무나도 어려울 뿐.

일상 속 사소한 의사결정들, 사람관계, 직장생활, 부동산 집값까지, 내가 인생을 살면서 뭐 하나 오롯이 내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는 일은 잘 없다. 외부환경에 따른 변수가 늘 존재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근데 내 몸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내 의지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냥 나만 노력하면 되는거다. ‘나’를 만드는 모든 요인 중 내가 100% 컨트롤 할 수 있는 오직 유일한 것.

웨이트, 유산소, 필라테스, 등산, 마라톤까지 다양한 운동을 꾸준히 해오긴 했지만 내 몸이 변할 만한 이렇다 할 계기가 없었다. 특별한 식단관리 없이 마구잡이로 먹으면서 내가 하고 싶을 때만 운동해서다.

바디프로필 결심을 한 이후 근력운동을 체계적으로, 효율적으로 하고 싶어 내 돈 들여 PT 수업을 받았다.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저 진짜 굴려주세요, 빡센거 좋아해요, 두 달 동안 약속 하나도 안잡고 운동만 하려구요’ 라고 말한 첫 날, 나는 봤다. 줄곧 무표정에 시큰둥하던 트레이너 선생님의 찐 웃음을. 제 발로 굴러 들어와서 제 발로 빡세게 운동 시켜달라 하고, 제 발로 바디프로필 찍겠다고 하는 횐님 = 나.
 
7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고 탄, 단, 지 중량과 비율을 맞춘 타이트한 식단을 지켰다. 내 몸에 꼭 필요한 영양분만으로 구성된 최소한의 음식만 먹고, 거기서 나오는 제한된 에너지로, 고강도의 운동을 하루 2~3시간씩 매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참아내며 격한 운동을 매일 하니 몸은 빠른 시간 안에 변했다. 매일 조금씩 변하는 몸을 보면서 재밌기도 했지만 동시에 스트레스도 받고 몸의 대사도, 면역력도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항상 추웠고 힘이 없었고 밥 먹고 뒤돌아 서면 배가 고팠고 자주 예민해졌다.

음식이 제한되니 음식을 향한 갈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생전 보지도 않던 ‘먹방’을 열심히 찾고 남이 먹는 걸 보며 대리만족 하고 있는 내 모습은 30년 동안 처음 보는 내 또 다른 모습이었다. 먹고 싶은 과자들을 편의점에서 신나게 쇼핑하고 방 한구석에 높이 쌓아 두고 구경하기도 했다. 동생은 이런 나를 보면서 변태 같다고 했다. 나도 나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삼시세끼 식단은 닭고야(닭가슴살 고구마 야채) 닭단야(닭가슴살 단호박 야채) 소고야(소고기 고구마 야채) 연고야(연어 고구마 야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내가 이 식단들을 굉장히 맛있게 먹고 나름대로 즐기며 먹는다는 거다. 내 인생에 이렇게 한끼 한끼가 소중하고, 밥 먹는 시간을 애타게 기다려온 때가 있었는지.

식단관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그동안 내가 내 몸에 불필요한 것들을 생각 없이 많이 넣고 있었다는 거다. 그리고 꽤 오랜 기간을 ‘영양과잉’ 상태로 살아왔다는 것도.

바디프로필 일주일 남기고서는, 끝나고 나면 현타가 크게 올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이틀 수분을 완전히 뺀 상태에서 근육이 더 도드라진 내 몸을 보면서 어차피 사진 찍고 물 마시고 음식 먹으면 다시 돌아올 몸인데, 사진 한 장 남기자고 이 짓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순간을 위한 거짓된 몸 같기도 하고.

근데 생각보다 촬영이 끝난 뒤의 성취감이 너무나도 큰 거다. 거의 성인이 되고 난 후 처음 느껴보는 감정. 오로지 내가 컨트롤 해서 내가 이뤄낸 일. 이 자극이 내 생각보다 훨씬 짜릿하게 다가와서 내게 새로운 시작점과 도전의 계기가 됐다. 내가 내 몸을 조금 더 잘 알고 이해하게 되는 소중한 기회도 됐고. 다시는 이 짓 안 할 거라고 했었는데, 어느새 내년에 바디프로필을 또 찍겠다고 입방정을 떨고 있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바디프로필 끝났는데 식단 왜 하냐고 물었다. 나는 주저 없이 ‘운동 더 잘하려고’ 라는 답변을 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몸이 가벼워야 운동이 더 잘되고, 체지방 감량이 돼야 그동안 보이지 않던 애기 근육들도 조금씩 드러날 거고 그래야 웨이트가 더 재밌어지고 웨이트가 재밌으니 식단관리도 운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될 거라고. 가만히 듣던 친구가 ‘나는 다이어트를 어떤 시즌에만 반짝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 말 들으니 생각이 바뀐다.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맞다. 다이어트는 어떤 시즌에만 하는게 아니라 그냥 계속 하는 거다.

나는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것’ 이라는 말에 부정적이던 사람이었다. 아니 감량기도 있고 살 찌는 시즌도 있고 한 거지 뭐 인생을 그렇게 피곤하게 사나 싶었는데. ‘다이어트=식단’으로만 생각해 와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다이어트는 평생 못한다. 근데 다이어트를 생활습관의 변화라고 인식하기 시작하면 다이어트는 평생 할 수 있는 것, 평생 해야 하는 것 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실천 가능하다. 운동 전 후로 잘 챙겨 먹는 것까지 운동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운동, 식단, 이 모든 과정이 내 몸과 정신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늘 생각을 하고 그 선순환의 사이클을 기억하게 된다.

사진 하나 찍으면 끝나는 단기 이벤트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좋은 변화를 가져다 주다니. 돈 들여서 찍기 참 잘 했다. 아직 원본 사진 밖에 못 받았지만, 보정본은 더더욱 기대 된다.

운동을 잘 할 수 있는 가벼운 몸 상태에서의 체지방 수준을 유지하면서 근육량 꾸준히 늘리기.
내가 앞으로 오래, 꾸준히, 평생 가지고 갈 목표다.

그리고 남은 올해는 또 다른 도전과 시작을 이어가려 한다.
맨몸으로 바닥에서 푸쉬업 하기, 맨몸 풀업 1개라도 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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