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무음의 경험
[여행이 끝난 후 D+164일]
소리 없는 우아함. 익숙한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격렬한 내적 동요를 동반하는 요란하고 시끄러운 드라마일 것이라는 생각은 오류다.
이런 생각은 술 취한 저널리스트와 요란하게 눈길을 끌려는 영화제작자, 혹은 머리에 황색 기사 정도만 들어있는 작가들이 만들어낸 유치한 동화일 뿐이다.
인생을 결정하는 경험의 드라마는 사실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할 때가 많다. 이런 경험은 폭음이나 불꽃이나 화산 폭발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서 경험을 하는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빛과 멜로디를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이 아름다운 무음(無音)에 특별한 우아함이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Amadeu Prado의 '언어의 연금술사' 발췌)
지난 일 년을 돌아본다.
내 생에 가장 큰 기쁨과 가장 큰 시련이 있었고, 또 이 여행이 있었다.
여행을 할 때만 해도 나는 이 여행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잘 몰랐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고 그 잔향을 천천히 음미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이 여행이 나의 삶에 '새로운 빛과 멜로디를 부여하는 경험'이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경험이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분명한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부모님은 요즘 함께 고구마를 캐기도 하고 산에서 밤을 줍기도 하며 내게 편안한 웃음을 보여주신다. 작년 겨울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참으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나는 요즘 글 쓰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여전히 어설프고 서툰 글을 쓰고 있지만,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을 때 행복하다. 그리고 글을 쓸 때만큼은 내가 나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생각과 글은 오롯이 나의 것이고 지금 내게서 유일하게 자유한 것이기도 하니...
"너,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모아둔 돈이 없으면 학위라도 있어야 하잖아. 그런 식으로 어정쩡하게 세상 살아봐. 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거야. 네 속에서 나온 자식 한번 네 품에 품어보지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나는 언니의 말에 동의했다. 언니의 목소리에 실린 분노에 가까운 두려움은 나의 오래된 주인이었으니까. 그 두려움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나를 추동했고 겉보기에는 그다지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 어른으로 키워냈다. 두려움은 내게 생긴 대로 살아서는 안 되며 보다 나은 인간으로 변모하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었다. 달라지지 않는다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세계에서 소거되어버릴 것이었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한지와 영주] 편에서)
어쩌면 나는 먹고사니즘에 대한 두려움, 어정쩡하게 살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원동력 삼아 그동안 비교적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이십 대 때는 체 게바라의 '리얼리스트가 돼라!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져라!'라는 말을 종종 되뇌며 Dreamer일지라도 두 다리는 땅에 단단히 딛고 살아가는 Realist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 좋아 리얼리스트이지 삼십 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절대 질 것 같은 게임은 하지 않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만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험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스스로는 체념한 채 일상을 회색빛으로 만드는 사람 말이다.
모든 일탈과 모험이 답은 아니겠지만 이제 나는 적어도 두려움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으며 살지는 말자고 다짐해 본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니 괜찮을 거라는 믿음으로 좀 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내가 되기로 한다.
우리에게 엄청난 일탈이자 두 번 다시없을 모험과도 같았던 '그곳'에서의 여행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이 여행이 남긴 잔향을 간직 한채 '이곳'에서의 일상을 새로운 빛깔로 보려 한다. 천국은 '그곳' 뿐만 아니라 여기에도 있고, '이곳'에서의 지루하리 만큼 단조로운 일상이 기적임을 기억하며... 그날의 나를 이끌었던 내 안의 불꽃이 나의 갈 길을 인도할 것이라 믿으며...